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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를 넘어가는 한 가지 방법


다사다난(茶事茶難)한 하루 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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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olas de Staël, The Road, 1954











우리 동네에서 지금 뜨거운 소문이 한 가지 있다. 소문이 아니라 사실관계라고 해야 하나. 단지 내 태권도장을 다니던 초등학교 1학년 친구 둘이 치고받는 싸움을 했다. 사나이의 뜨거운 가슴으로 벌어진 이 결투는 생각보다 쉽게 한쪽의 승리로 끝이 났고 두 아이의 각자 무겁기도 하고 가볍기도 한마음으로 귀가했다. 둘 사이에 대해서 일방적인 괴롭힘이나 따돌림, 추행은 없었다는 이야기가 주지만 이 부분만큼은 어디까지나 소문이다. 하여튼 두 아이 중 더 많이 맞은 아이의 부모는 당연히 태권도장에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했다. CCTV에는 두 아이가 서로 치고받는 모습이 찍혔고, 한쪽이 조금 더 많이 맞는 모양새였지만 일방적이지는 않았다. 포식자가 사냥감을 가지고 노는 모양새라기보다 영역이 다투는 두 남자의 결투랄까. 이에 대수로이 생각하지 않았던 태권도장은 그리 우려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답했다. 그리고 두 아이는 만나서 사과하고, 화해했고 두 집의 엄마들은 웃으며 서로 미안함을 표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더 많이 맞은 아이의 아버지가 나섰다. 그는 자신의 아이가 심리적으로 불안한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며 국가에서 지원하는 심리상담 및 치료 프로그램의 아이를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미안했던 더 많이 때린 집의 엄마는 그러시라며 필요한 서류를 챙겨드리겠다고 했다. 남자는 문자를 요구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문자나 증거가 있어야 무료로 상담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값이 비싸므로 서로 불편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보상금을 따로 요구한 것도 아니기에 엄마 측은 그렇게 문자를 보내주었다.


  몇 달이 지나고 국가 기관에서 엄마 측으로 연락이 왔다. 자신의 아이가 학폭 가해자로 지정되었고, 이 때문에 몇 차례의 출석과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어느새 두 아이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어 있었고, 여자는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뒤늦게 남자에게 따졌다. 둘은 심지어 같은 회사의 동료기도 했다. 남자는 이미 모든 증거를 다 모아둔 뒤였다. 태권도장의 영상은 이미 삭제된 뒤였고 영상은 남자만 가지고 있었다. 문자 기록만 있을 뿐 정황을 설명할 수 있는 통화 내용은 녹음된 것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게 여자는 변호사를 찾아갔고 썩 유쾌하지 않은 상황을 마주한 채 회사를 잠시 쉬며 화를 다스리고 있다.


  무엇이 이 남자를 그토록 화나게 했을까. 사실관계를 왜곡하면서까지 그렇게 해야 했을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정말 학폭 가해자로 삼고 싶었다면 처음부터 왜 강경하게 나아가지 않았을까. 겉으로 보기에 무척 냉정하고 차분한 사람 같아 보이지만 그의 내면은 불길이 성나게 이글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정말 안타까운 부분은 어른들의 사정이 아니다. 두 아이의 처지를 생각해 보라. 가해자가 된 아이는 학폭생이 되어서 관리 대상이 될 것이고, 어쩌면 학생부에 영원히 기록으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피해자가 된 아이는 숯째 거세된 오메가남이 되어버렸다. 자신의 의도와는 아무 상관 없이 아이들 사이에서 지질하고 피해주는 아이가 되는 일은 사실 생각보다 쉽게 일어난다. 왜냐하면 그 나이대 아이들의 여론은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학부모들이 만들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제삼자의 학부모들 관점에서 자신의 아이를 그 피해자 아이랑 기꺼이 놀도록 내버려두겠는가. 혹시 둘이 놀다가 그 아이가 다치기라도 하면? 그 아이의 아버지가 떠오르고, 우리 아이는 큰 책임을 물어야 하겠지. 따돌림은 이런 식으로도 일어난다. 세상에.


  나는 내 강의에서 스스로 많은 교훈을 얻는 편인데, 성인들의 수많은 가르침 중에서 백미로 꼽는 한 문장이 있다. 더 심오하고, 더 훌륭한 가르침들도 있겠지만 나는 머리가 좋지 않아 이 정도 문장이 가장 인상 깊었다. 


“안회는 훌륭한 자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는다(不遷怒).”


공자가 자신의 제자 안회를 일러 직접 평한 글이다. 또 다른 제자 자공은 안회에 대해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아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는데 그가 얼마나 뛰어난 재능을 가졌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으레 똑똑하고 머리 좋은 사람을 대단하다, 훌륭하다고 추켜세우곤 하지만 정말로 그의 삶이 훌륭했는지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일과 인격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일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밖에서 대단한 일을 하며 존경받는 사람이 집에 들어와 스트레스를 푸는 일도 별나라의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차를 좋아하게 되어 시작하는 사람 중에는 예민한 사람들이 많다. 예민함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 중 하나는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행동을 하는’ 성향이라는 것이다. 심리학에서 예민함은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예민한 사람은 오히려 상대에게 맞춰주려고 노력하고, 갈등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애를 쓰는 사람을 뜻한다. 그들은 누구보다 따듯하고 배려심 넘치는 사람이며 타인의 감정이나 분위기를 살피는 사람들이다. 즉 예민함은 ‘나’를 초점 삼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초점 삼아서 일어나는 개념이다. 전자의 경우는 그럼 무엇인가? 그냥 성격이 나쁜 사람일 뿐이다. 문제는 이런 예민함은 감정적으로 막대한 소모를 일으킨다는 점이다. 결국 그러한 소모는 어디로 귀결하느냐?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자기 소모 혹은 엉뚱한 곳으로의 배출이다. 자기를 점점 갉아먹는 방식으로 감정을 소모하는 사람들은 결국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반대로 엉뚱한 곳으로 배출하려는 사람들은 결국 타인을 상처받게 만든다. 


  그 타인은 저 위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정말 말 그대로의 남일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 오히려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 되기도 한다. 가족이다. 정말 끔찍한 부분은 남을 배려하면서 얻은 스트레스를 내 사람에게 전가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내 사람은 아주 높은 확률로 나보다 권력이나 힘, 사회적 위치가 낮거나 약한 사람이다. 연인끼리, 부부뿐 아니라 아이에게도 해당한다. 그렇게 해서 얻은 존경이, 지위가 다 무어에 쓰려고 그러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내 가족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삶이 나는 그다지 존경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사회적으로 대성하거나 존경받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차를 하면서 점점 선명하게 알아가는 것 중 하나가 감정이라는 것의 지배력이다. 어릴 적에는 감정이 그저 이성의 졸개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사실 그렇지 않더라는 점이다. 이성을 돌보는 방법은 생각보다 꽤 많고, 체계적이고, 관심도 많은데 감정을 다스리거나 키우고, 아끼는 방법에 대해서는 의외로 사람들이 관심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차는 이를 위한 수련이고, 운동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는다. 감정을 잘 다스리면 결과도 꽤 괜찮다. 당신도 아마 8할은 동의할 것이다. 아침에 아내와 차를 마시며 들었던 저 비극적인 이야기에 나는 그 누구보다 피해자가 되어버린 저 사내아이가 걱정된다. 5년 뒤, 10년 뒤에 저 아이는 당당하게 그 어떤 것들을 선택하며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으려나.










정 다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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