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장윤다 차살림법 : 찻자리 위로 이야기를 펼치다 : 2부_21장
차살림 준비
_향香 下
센 가문 중 우라센케 13대 원능제 철중(元能齊 鐵中)은 19세기와 20세기를 함께 살았던 인물이다. 그가 3개의 센 가문 중 막내인 우라센케의 수장이 되었을 때가 고작 열세 살이었다. 그러나 대게 뛰어난 인물들이 십 대 때 두각을 나타내듯 그 역시 비범한 면이 두드러졌는데, 시대를 읽는 눈이 그러했다. 그는 다도의 중심은 교토가 아니라 도쿄로 옮겨 갈 것임을 짐작하고 14세에 결혼하여 신혼 초부터 도쿄로 살림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의 대범한 결정에 대해 많은 이들이 우려하였지만 결국 1868년 이래로 도쿄로 거주지를 옮긴 천황 일가의 차 선생이 되면서 우라센케는 센 가문 3대 중에서 가장 큰 규모로 성장했다. 원능제는 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분략다법(盆略茶法)을 보급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학교 교육식 다법이다. 이전까지의 차는 마치 장인을 길러내는 것처럼 오로지 일대일의 도제식 교육이었다. 시대가 변하고 있었고, 차는 소수 독점에서 다수 보편의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음을 읽었던 셈이다. 소수 독점은 백 명의 부자가 큰돈을 들여 차를 해나갔다면, 다수 보편은 만 명의 중산층이 나름의 소비를 통해 차를 배우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것은 더 큰 돈, 더 큰 영향력을 의미했다.
그때 등장한 새로운 다법으로 사우지식(四友之識)이 있었다. 차와 꽃, 향과 화로를 다루는 기술을 명인이 되기 위한 칠사식(七事識)의 바탕으로 삼았다. 일곱 가지 식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어야 하는데, 각 식에 최소 3년을 공들여야 한다고 했으니, 명인이 되기란 참으로 어려웠나 보다. 칠사식이나 사우지식은 이름만 새롭게 등장했을 뿐 에도시대에 널리 퍼져 있던 여러 이름난 타인의 차법에서 골고루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다. 아니 그보다 더 이전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도, 무로마치 막부 시대에도,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 고려시대나 송나라, 당나라 시대에도 있던 것들이다. 아회(雅會)에서 당송의 도련님들은 한데 모여 글과 시를 지으며 차를 마시고, 향을 사르고, 꽃꽂이하며 놀았다. 그것이 오늘날의 이른바 교양이었고, 잘났든 잘난 척하는 것이든 필요했던 소양이었다. 일본은 이를 떠올려 차좌(且座)라는 놀이를 만들었다. 다섯 명이 모여 하는 놀이다. 주인은 보조와 함께 각기 차를 하고, 손은 순서대로 꽃, 숯, 향을 다룬다. 저 옛날 당나라 도련님들의 놀이와 무어 다를까. 향은 그때부터 이미 차와 함께 했다. 그러니 굳이 차문화 속에서 향을 찾기 위해 일본만을 떠올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유학(儒學)에서 향은 사람의 덕행을 상징했다. 정진하는 자에게서는 향기가 나고, 악한 이에게서는 잡스러운 냄새가 난다고 했다. 도교에서는 향으로 수련을 삼았는데, 향기는 곧 선약을 의미했다. 송나라 시절에는 향이 사치를 의미하기도 했다. 월남에서 가져온 침향이나 유향을 최고급으로 쳤는데 1155년 한 해에만 63,334근을 수입한 기록이 있다. 어느 기록에는 재상이었던 채경이 집에서 고관대작들을 대상으로 연회를 베풀었는데 2~300냥(무게)의 향을 썼다고 한다. 《송사직관기》의 기록을 기준으로 삼은 학자들의 계산에 따르면 무게 1냥은 약 50그램이고, 가치로는 20만 전(화폐) 정도이다. 당시 은화 1냥이 1,000전 정도였다고 하니, 무게 1냥은 화폐 200냥 정도인 셈이다. 은화 1냥이 현재로 20만 원 언저리라고 하니, 300냥의 향이라면 15,000그램, 약 15킬로그램을 하룻밤에 썼다는 것이고, 금액으로 치면 최대 약 1,200억 원 정도일 것이다. 하룻밤 파티에 향 값으로 천억을 쓴다니 상상할 수 없는 사치다. 에도시대에 다이묘들은 찻그릇 하나로 성을 거래하기도 했으니 저 옛날 봉건시대는 우리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향은 누군가에게는 자기 수행을 위한 도구였고, 누군가에게는 신을 만나기 위한 염원을 담은 도구였으며, 누군가에게는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도구이기도 했던 셈이다.
당신은 향을 어떻게 받아들일 셈인가. 우리의 찻자리에서 향은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걸까. 차를 즐기는 행위를 더러 오랜 세월 다도(茶道)라고 부른 것은 그만큼 더 적합한 다른 말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각자의 인생에서 목표를 추구하고, 그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삶을 수행한다. 도(道)란 길이고, 길은 한 점과 다른 한 점을 잇는 여러 생김새의 선이다. 그러니 우리의 삶은 도를 추구하는 여러 갈래의 모양새를 띄고 있고, 다도를 추구한다면 그 길을 차라는 도구를 통해 가겠다는 마음가짐이라 보아도 좋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의 삶을 수행해 가는 길에 향은 꽤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향은 눈에 보이는 냄새다. 게다가 호흡을 관찰하기도 좋다. 향을 통해 우리는 호흡이 몸속에서 퍼져나가는 모양새를 감각으로 더욱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향도(香道)에서 말하는 비관(鼻觀)이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코로 우리의 육체를 낱낱이 살피는 경험이니까.
그렇게 자기 육체를 살펴보는 경험은 곧 내면을 마주하기 위한 열쇠가 된다. 마치 인도의 요기(yogi)들이 아사나(Asana)를 통해 삼매를 경험하듯 향기에 주목하는 경험은 차에 있어 필수적이고 동시에 온건하면서도 강렬한 과정이다. 첫 잔에서 일어나는 감탄스러운 향기가 두 잔, 석 잔, 네 잔 이어지면서 연해지듯이 사람들이 서로 모여 차를 나누면 감동이 담소가 되고, 이윽고 수다가 되어 이윽고 사라지고 만다. 누군가 그랬다. 차에 향을 더하지 않고서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향은 옅어지고 희미해지는 집중력을 돌려놓는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찾는 진실이 음료 속에 있지 않고, 나 자신 속에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음료는 내 몸속에서 진실을 눈뜨게 했다. 모든 것이 형태를 갖추고 뿌리를 내려, 마을과 정원과 더불어 나의 찻잔에서 나왔다.” 향에 집중한다는 것은 머릿속의 잡념을 지우고, 주변을 정리하고, 이윽고 새롭고 정갈한 나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운동 같은 것이다. 그렇게 맞이한 좋은 향을 어찌 거부할 수 있겠는가. 센 리큐는 자신이 사랑하여 오래 곁에 두고 썼던 화로에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 이름은 ‘고노요(此世)’. 이번 생애, 지금, 이 세상이라는 뜻이다. 그 화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있기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이 세상에서의 인연으로 다시 한번 더 우리 만납시다.”
정 다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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