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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의 차, 동장윤다 2024









맑은 노란빛이다. 정성껏 우린 햇차를 보듬이에 따라 두 손 가득 쥐고 찻물에 비치는 물그림자를 본다. 잔잔한 듯 일렁인다. 가만히 아주 가만히 물결친다.



찻일 하던 어느 오후, 동장윤다가 만들어지는 한옥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연주곡에 분주한 마음이 잠시 멈췄다. 한 젊은 피아니스트가 라모, 라벨 그리고 알캉의 곡을 연주한다. 아는 곡을 모르는 듯한 기분으로 듣는다. 그는 앨범의 제목, <WAVES>처럼 한 곡, 한 곡을 물결처럼 연주한다. 빼어난 연주자의 연주에는 강약이 있고, 완급이 있다. 그의 연주에서 나는 강과 약 사이에 더 많은 강과 약이 있고, 느림과 빠름 사이에 또 다른 박자가 있는 것처럼 느낀다. 마치 흐르는 물을 가까이서 보면 물결의 높낮이가 확연하지만, 멀리서 보면 희미하게 반짝이고 마는 것처럼 말이다. 연주를 들으며 강이 흐르는 풍경을 자유자재로 줌인, 줌아웃하며 유려하게 그려가는 전경을 떠올린다.



생명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오월의 봄볕 아래 가만히 서서 산과 들판을 오 분만 가만히 바라보면, 세상이 얼마나 역동적이고 활기찬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마치 하교 종소리에 맞춰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처럼 생명력이 세상 밖으로 쏟아 흘러넘친다. 어느 것 하나 새롭지 않은 것이 없고, 어느 것 하나 푸르지 않은 것 없어 생생한 풍경 위로, 연파랑의 하늘과 만져질 듯 따사로운 볕이 내려앉아 포르티시모(매우 세게 연주하기)와 피아니시모(매우 여리게 연주하기)를 오가는 떠들썩한 흐름을 단정히 품는다. 저만치 풍경을 그저 바라보며 음악 없이도 생동감 넘치는 운율을 듣는다.



동장윤다는 이런 파랑波浪 계절에 세상에 나왔다. 돌을 채 맞지 않은 아기의 에너지 같은, 봄 들녘과 산과 바다와 강을 가득 에워싼 생명의 기운 같은 힘이 담겨 있다. 힘을 품되, 잠잠히, 마치 여러 해를 기다려 무르익은 듯 점잖다.



동장윤다, 동장윤다 2024
동장윤다 2024, _ 창안자 정동주 선생과 동장윤다와 제자 신경희 작가의 보듬이




햇차를 마시며, 가만히 앉은 내 마음으로 물결이 밀려들었다 흘러 나가는 걸 본다. 음악이 흐르는 한낮의 오늘도 머잖아 해를 좇아 기울고, 한 해도 높낮이를 바꿔가며 흐른다. 인생의 어디쯤인가를 덩어리로 묶어 보면 또한 마찬가지겠지. 어떤 때는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같이 마음의 힘도 작아져 아무것도 움켜쥐지도 못한 채로 시간만 보낸다. 어떤 때는 다른 모든 빛을 덮어버릴 듯 강렬한 색의 자신감에 도취하기도 한다. 내가 필요로 하는 때는 원하는 시간에 딱 맞춰 오지 않고, 가까이 왔어도 온 줄 모른 채 지나친다. 다만, 삶은 쉼 없이 흐를 테니 똑같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순간이, 혹은 인연이 내 나름에 따라 찾아오리라. 중요한 것은 내 나름이겠다.




파랑의 동장윤다. 찻잎은 검어 보일 정도로 짙은 흑청색이고, 차 끓일 샘물은 쪽빛으로 흐르는 개여울에서 긷는다. 해가 뜨기 전 동녘은 어스름히 푸르고, 새파란 하늘 가장 높은 곳에 한낮의 해는 빛난다. 물색이기도 하고 흑색이기도 한 파랑이 맑디맑은 노란빛을 풀어낸다. 파랑의 채도가 짙어지고 옅어지는 사이, 삶은 크고 작은 물결로 흐른다. 동장윤다를 벗 삼는 당신에게 이 파랑과 波浪의 진심을 담아 보낸다. 동장윤다와 함께 짧은 것들은 서로 한 데 이어 길게, 긴 것들은 잘라 서로 넉넉히 나눌 수 있기를. 나름의 고운 색과 소리를 세상에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동장윤다 2024 _ (오른쪽 아래) 심재용 작가의 물결보듬이, (왼쪽 위) 임만재 작가의 물빛보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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