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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RollingTea 구르다

치밀하고 폭력적이며 아름다운 : 대파산화문천목다완(玳玻散花文天目茶碗)

시대를 담다 : 한국·중국·일본의 차 마시는 그릇 12 - 소한에서 대한으로 (上)













나는 이 그릇을 처음 보았을 때의 기분을 기억한다. 달과 별, 밤하늘의 구름과, 즐비한 삼나무 능선이 하늘과 접하는 산, 그 속에 얼룩 같은 달그림자와 번쩍이며 스스로 빛을 내는 돌멩이, 이러한 것들 속에서 투명할 정도로 맑은 빛깔이 나를 도취시켰다. 평범한 듯 미끄러지는 직선들이 서로 만나 흔들리는 듯 흔들리지 않는 곡선을 이루고, 바로선 듯 아래로 흐르는 옆구리 선들은 묘하게 기울어진 곡예를 펼친다. 투명하게 반짝이는 푸른 빛깔 안에 무수히 많은 점들이 골고루 펼쳐진 모양새에서 황금의 물결도 엿보이고, 은하수도 보이는 듯하다. 더 높거나 조금 낮았으면 싶다가도 결국에는 튼튼하고 안정감 있는 높이와 두께감이 안도감을 준다. 마치 선사시대의 유물처럼 높고 좁게 떨어지는 외형이 투박한 듯 호탕하면서도 찻물이 담기는 안의 세계는 드넓고 광활한 우주 같으니 그 아이러니함도 재밌다. 이런 찻그릇은 쉽게 보기 어렵다. 안과 밖에 다르고, 선과 면의 맛이 서로 다르며, 투박한 듯 정교하다. 우아하면서도 기괴하고, 정돈된 듯 혼란스럽고, 온전하면서도 일그러져 있다. 단단하고 짐승 같이 원초적인 외형에 섬세하고 무시무시한 정교함을 내면에 갖추었으니 그야말로 쇼군의 그릇이다. 금각의 주인은 이 그릇이라면 무척 아꼈을 것이다. 이 그릇이 기요미즈데라(淸水寺)나 긴가쿠지(銀閣寺)에 어울리겠는가. 오직 금각사(金閣寺)의 주인 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義満)만이 이 그릇의 주인으로 어울린다. 일본의 국보 대파산화문천목다완(玳玻散花文天目茶碗)이 오늘의 주인공이다.



“내 가슴은 이제부터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보게 된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고, 산들은 뿌연 안개로 덮여있었다 … 나는 가느다란 난간에 기대어 멍하니 연못 위를 내려다보았다. 연못은 석양을 받아, 녹슨 고대의 구리거울과도 같은 표면에, 금각의 그림자를 단정하게 드리우고 있었다. 물풀보다도 훨씬 밑에 저녁 하늘이 비치고 있었다. 그 저녁 하늘은 우리들의 머리 위에 있는 하늘과는 달랐다. 그것은 청명하며, 석양을 가득 받아, 아래로부터, 내부로부터, 이 지상의 세계를 통째로 삼키고 있었기에, 금각은 그 속에 검게 녹슨 거대한 순금의 닻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 『금각사』



교토로 여행을 다녀왔던 당신은 저 눈부신 금각의 풍경이 기억나는가.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금각사』 초반 대목이다. 작품에서 주인공은 말더듬이에 못생긴 인물이다. 그는 광적으로 아름다움에 집착한다. 가질 수 없음이 그를 더욱 간절하게 만들어 간다. 인기 있는 사관생도의 아름다운 칼집에 흠집을 내는 것으로 질투를 드러낸다. 자신감 없음이 이성 앞에서 주눅 들게 한다. 그가 집착할수록 질투할수록 아름다움은 그에게서 조금씩 더 멀어져 간다. 하지만 늘 ‘그보다 더 아름다울 수는 없다’고 그의 아버지가 누누이 말해왔던 금각은 아이러니하게도 손 뻗으면 닿을 곳에 있다. 그가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이란 생각보다 형태가 아름다웠던 적이 없다. 현상으로서의 아름다움과 본질로서의 아름다움이란 생각보다 괴리가 크고 서로 멀었다. 하지만 금각의 주인의 삶은 그와는 완전히 달랐다.



무로마치 막부를 창건한 초대 쇼군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尊氏)의 손자로 태어났을 때부터 그는 남북조간의 전쟁에 휘말려 있었다. 그 덕분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담대함과 세상을 대하는 그릇이 남달랐던 요시미츠는 네 살이 되던 해에 적군에 의해 교토가 함락되어 피난을 떠났다가 이듬해 수도를 회복하여 다시 돌아오는 길에 지금의 아마가사키(尼崎) 근처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는 주변의 경치가 마음에 들었다. 이에 따르던 무사들을 둘러보며 이곳 경치가 마음에 드니 교토에 옮겨 놓으라 명령했다고 한다. 네 살의 아이가 풍광을 느낄 줄 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세상에 대하는 태도가 남다르다는 것은 분명히 알 것 같다. 그는 열 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가 병사하여 제 3대 쇼군이 되었고 34살에 남조를 평정하여 전국을 통일했다. 남조의 가메야마 덴노(亀山天皇)의 삼신기를 모두 양도받아 천황의 혈통을 다시 하나로 합쳐지게 했다. 그는 태어나서부터 한결같이 오만했고, 매사에 철두철미 했으며, 옷차림와 행동거지에 집착했다. 그는 살아서 죽을 때까지 값지고 아름답고 귀한 것들에 둘러싸여 살았고, 가지지 못한 것은 기필코 쟁취하는 인물이었다. 1394년 통일 2년 뒤 자신의 아들에게 쇼군직을 넘겨주고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하지만 이는 겉치장에 불과할 뿐 모든 실권은 여전히 그에게 있었다. 그는 일본 최초로 명나라 황제에게 일본 국왕의 칭호를 수여 받았는데, 천황을 제치고 신하가 왕으로 책봉된 점을 두고 하극상이라며 분노하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막강한 권력에 아무도 드러내놓고 말하는 이가 없었다. 그는 서명을 할 때도 막부에서 쓰는 것과 조정에서 쓰는 것을 구분해서 사용했고, 자신의 두 번째 정실부인을 천황의 양어머니로 삼았다. 제사와 관리 인사권을 빼앗아 본인이 처리했고, 조정의 행사에서 천황만이 사용하는 다다미를 자신이 사용했으며, 아들의 공식적인 행사 의식을 천황의 아들과 똑같이 처리하기도 했다. 승려가 된 이후 흔히 금각사로 알려진 로쿠온지(鹿苑寺)가 있는 기타야마 산장을 건설했다. 무가, 선종, 귀족 문화가 서로 합쳐진 기타야마 문화(北山文化)가 이곳에서 출발한다. 금각사의 3층 구조는 이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세 개의 층에 세 개 차실을 두었는데, 1층에는 공경가(귀족)의 주거양식인 신덴즈쿠리(寢殿造)를, 2층에는 무가의 양식인 쇼인즈쿠리(書院造)를, 3층에는 선종양식의 차실을 만들었다. 이를 두고 귀족의 위에 무사, 무사 위에 출가한 요시미츠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소문이 돌았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라도 그가 무사로서, 귀족으로서, 그리고 승려로서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같은 시대를 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요시미츠가 오늘의 주인공을 만났더라면 아마도 무척 사랑했을 것이다. 자기를 닮은 그릇이기 때문이다. 그는 대국인 중국을 동경했고 언제나 패자로서의 자신을 중국이 인정해 주기를 바라마지 않았다. 송나라 길주요에서 구워 만든 이 천목이 요시미츠의 손에 들어왔다면 과연 그는 금각사의 몇 층에 앉아 차를 마셨을까. 시대는 바야흐로 중국의 것이 곧 최고였던 시절이었고 이를 당물(唐物)이라 하여 최우선의 값진 것으로 여겼다. 무사가 칼을 차고 차를 마시던 것도 가능했던 시절이었으며 값비싼 장신구와 온갖 화려한 잡기들이 사람과 차실을 가득 채우던 호사가들이 만연한 시절이었다. 가지지 못한 것이 없는 그에게 이 그릇은 어떠한 만족감을 주었을까. 아니면 애당초 그는 만족감이라는 것을 가져본 적은 있었을까.



이 그릇이 대명물(大名物)의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안쪽 면에 피어난 무수히 많은 별들의 균질함 때문이며, 피어난 꽃처럼 아득하게 펼쳐진 점들이 이질감 없이 서로 뭉치거나 흩뿌려져서 보는 이로 하여금 화려함의 정취를 저절로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겉면의 심심한 듯 흘러 찍힌 얼룩의 무늬들은 반대로 규칙성이 없고 혼란스러워 안과 겉이 크게 대비된다. 이 그릇의 아름다움은 두 가지다. 철저하게 규칙적이고 온전하며 수비(守備)적인 태도로 구현된 내면의 아름다움은 마치 정치가로서의 요시마사를 생각나게 한다. 반대로 검고 짙은 빛깔의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세계 안에서 피어나는 불규칙적이고 혼란스러운 무늬들의 이합집산은 무사로서의 요시마사를 떠오르게 한다. 아니다. 두 가지가 아니라 하나 더 있다. 무시무시할 정도로 치밀하게 계산된 전략의 아름다움이 있다. 안과 겉이 다르고, 허허실실(虛虛實實)의 모양새를 갖추었음에도 아름답다, 훌륭하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든 기물이든 결코 흔하지 않다. 평범할 수 없는 운명이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우리는 밝은 별빛이 벚꽃처럼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말하지만 사실 검은 밤하늘이 그보다 몇 배, 몇 십 배는 더 넓다. 무언가가 두드러져 보이기 위해서는 그것의 몇 배에 달하는 준비와 희생이 필요하다. 전인미답의 권위를 얻기 위해 귀족과 무사로서의 지위를 버리고 결국 정점에 올라섰던 요시미츠와 그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저 금각의 자태는 현실에서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란 얼마나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나는 3대 요시미츠와 대파산화문천목의 어울림에 관해 말하며 이로부터 백 여 년이 더 지난 뒤 정반대의 삶과 취향으로 살았던 8대 쇼군의 삶과 영혼의 짝에 관한 이야기를 생각한다. (후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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