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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하나


차와 사람과 이야기 01

: 잇큐소준一休宗純











내가 차문화사 강의하면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코 셋 중 하나는 일본의 무로마치 시대 승려 잇큐 소준(一休宗純, 1394~1481)이다. 파격적인 언행과 천재성이 돋보이는 글과 말솜씨로 세상을 떠돌았던 승려였지만 그는 나기로 귀한 황족이었다. 물론 편안한 궁궐 생활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어릴 적부터 어미와 함께 절에 보내어져 나고 자랐기 때문이다. 계승 서열과 관계없는 까닭으로 젊은 시절부터 자유로움을 허락받았지만, 그는 편한 길을 두고 스스로 걸어 산문 안의 삶을 택했다. 선종 불교의 승려로의 길을 닦는 그의 앞에 한 통의 편지가 당도했다.




"수행자가 된 나의 아들에게


나는 이제 사바세계 인연이 다하여 무위(無爲)의 부처님 나라로 돌아가려 한다. 바라건대 너는 열심히 공부해서 너의 불성(佛性)을 밝히도록 해라. 이와 같이 하면, 너는 장차 내가 지옥으로 갔는지, 아니면 영원히 너와 함께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네가 진정 대장부라면 부처와 모든 조사(佛祖)들이 모두 너의 심부름꾼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때 책을 내려놓고 나가 사람들을 위해 일하라. 세존(世尊)께서는 사십구 년 설법하고서는 한 글자도 말한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너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만약 네가 알아야 할 것을 마땅히 안다면 무익한 망상은 하지 않을 것이다.

어미가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몸으로’ 한마디 더 한다. 부처님 가르침은 중생(衆生)을 깨닫게 하고자 있는 것이다. 그런데 네가 어떤 방편(方便)에만 의지해 이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너는 한 마리 무지한 벌레와 다르지 않으리라. 모든 불경(佛經)을 다 읽어도 자성(自性)을 보지 못한다면 너는 내 글조차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유언(遺言)이다."





잇큐소쥰의 초상화, 무로마치 시대_분안 5년_1447, 나라국립박물관 소장

임제종(臨濟宗) 다이토쿠지파(大德寺派)의 선종 승려인 잇큐소쥰(一休宗純, 1394~1481) 의 초상화이다.

상부의 찬문은 54세 때 잇큐 스스로가 찬한 것으로 현존하는 그의 초상화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그가 옆에 둔 붉은 칼집의 긴 칼은 나무로 만들어진 것으로 겉모습 꾸미기에만 관심있는 부패한 세상을 비판한 것이다.





사실 그는 이전에도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여럿 있었다. 공부는 손에 잡히지 않고 망상에 빠져 유혹이 시달렸다. 세상일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항상 선택하고 나면 후회할 일이 꼭 찾아오더라. 출가하기 전에 이 마음이 찾아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순간 잇큐는 불타오르는 마음을 꺼뜨리려 호수에 몸을 던졌다. 지나가던 한 거사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그는 비참하고 부끄러웠다. 이 소식을 인편으로 전해 들은 어미는 다음과 같은 짧은 한 글귀를 보내왔다.




"깨달음을 향한 여정에는 유연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초조해하지 말고 천천히, 진득하게 수행하세요."




고려의 궁녀 출신이라느니, 몰락한 가문의 귀녀라느니 풍문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나에게는 오직 어머니는 홀로 먼저 깨달은 이라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바람이 부는 날에도 홀로 꺼지지 않은 촛불을 본 적이 있다. 불전에 놓인 백일곱 개의 여느 촛불이 매서운 바람에 그 운명을 다한 순간에도 그 촛불 하나는 홀로 꼿꼿이 서서 마치 바람이 자기의 일이라는 듯 초연하게 서 있었다. 그 촛불을 떠올릴 때마다 우리 어머니가 생각난다. 나는 그녀가 살아온 삶을 잘 모른다. 전해 들은 이야기 조각 몇 가지만이 알고 있는 그녀에 대한 내 모든 것이리라. 그녀는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다. 가르침도 내려주지 않았다. 어머니는 어릴 적에 항상 이렇게 말하셨다.




“내가 뭐 아는 게 있다고 남을 가르치나. 그저 해야 할 것은 하고 하면 안 되는 것만 하지 마라.”




그녀가 나에게 가르치는 모든 것은 행동이었다. 초등학교 때 수챗구멍에 뜨거운 물과 찬물을 섞어 버리는 그녀를 보고 나는 왜 그럴까 궁금했지만, 선뜻 물어보지 못했다. 훗날 머리에 피가 다 마를 나이가 되었을 때 그녀에게 이를 물었는데, 그녀는 그제야 ‘그냥 부으면 수챗구멍에 사는 벌레가 죽을 테니까.’라고 짧게 답했다. 그녀는 잡초는 왜 보일 때마다 뽑아야 하는지, 이 풀을 왜 뽑고 저 나무는 왜 살려야 하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계절이 바뀌고 절기가 돌아올 때마다 그녀는 무디게 삶을 꿋꿋하게 반복하면서 마치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는 듯 굴었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듯했다.


그녀에 대한 내 존경의 화룡점정은 우리 집 고양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을 때였다. 십오 년을 넘도록 그녀의 겨드랑이 사이에서 잠을 청하고, 새벽에 기도하러 어머니를 깨우던 고양이를 잃고 온 가족이 몇 날 간의 묵상에 잠겼을 때 나는 어머니가 걱정되어 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이는 나에게 “어머니는 아주 건강하고 꿋꿋하시다. 세상에서 제일 슬프실 텐데, 눈물도 흘리지 않으시니 너는 걱정 말거라.”고 했다. 상실의 고통과 슬픔은 참을 수 없는 것이라고 배웠다. 아마도 어머니는 참으시는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참을 필요가 없었던 게 아닐까. 흘려보내는 법을 깨우친 인간은 이다지도 강인하고 훌륭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놀라며 생각했다. 어머니는 그러셨다. “슬프지. 그런데 어쩔 거냐. 잘 갔으니까 나는 괜찮다.” 내 마음속에 촛불 하나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느꼈다.




잇큐의 가슴팍에 칼을 대고 부처가 거기에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며 한 떠돌이 스님이 그러면 꺼내보라고 다그쳤다. 이에 잇큐가 짧게 답했다.


“벚나무 가지를 부러뜨려 보아도 그 속엔 벚꽃이 없네

 그러나 보라, 봄이 되면 얼마나 많은 꽃이 피는가.”


잇큐는 제자들에게 마지막에 편지 한 통을 남기고 떠났다. 너무 힘들어서 어쩔 줄 모르겠을 때 열어보라고 했다. 그 안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걱정하지 마라. 어떻게든 된다.”


좋은 삶은 생각이 아니라 행동의 결과물인 것 같다.










정 다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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