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茶事茶難)한 하루 10화
얼마 전 첫째 아이와 함께 영화관에 다녀왔다. 딸은 엄마와 함께 공연이나 영화를 보러 다니곤 해서인지 능숙하게 팝콘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쉿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조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럴 때는 똑 부러지는 아이다. 영화는 여아들 사이에서 인기 절정 만화 시리즈 <티니핑>의 프리퀄 <사랑의 하츄핑>이었다. 티니핑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하여 잠깐 설명을 하자면 티니핑은 일종의 요정과 같은 존재들인데 각자 세상의 작은 요소나 특징을 하나씩 주특기로 다룬다. 사물에서 감정까지 다양하다. 이런 티니핑들은 열 살이 된 인간 세상의 공주와 왕자와 한 명씩 영혼의 단짝을 이루게 되는데, 시리즈의 주인공인 로미공주가 어떻게 그녀의 단짝 티니핑 ‘하츄핑’을 만나게 되었는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하츄핑은 마음을 뜻하는 ‘하트’와 일본어로 뽀뽀를 뜻하는 ‘츄’의 합성어인데, 사랑하는 마음을 다룬다. 그래서인지 시리즈에서 시종일관 따듯하고 긍정적이면서 동시에 성숙한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그려지는데 놀랍게도 영화는 어떻게 이 아이들이 서로에게 끌리는지 아무런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 나는 아이와 합쳐서 2만 원이 넘는 돈을 내고 한 시간 반 동안, 이 영화를 보면서 아무런 이해도 할 수 없었다. 사필귀정, 권선징악, 운칠기삼 등등 뭐 여러 가지 설명을 가져다 붙일 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시종일관 핑크 머리칼의 여주인공과 핑크로 도배한 하츄핑의 아가페적인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고, 흩날리는 백만 송이의 꽃잎과 산들거리는 레이스로 수놓은 예쁜 원피스의 핑크핑크한 힘으로 나쁜 마음은 정화되었고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이 전개와 결말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 이것이 아이들의 세계인가. 여기에서 나는 왜 이해할 수 있는 이유를 찾고 있는 걸까. 나는 아이의 영역에 스며들지 못하는 어리석은 아빠라는 아쉬움, 후회, 미련 따위를 잔뜩 묻혀서 상영관 문을 열고 나오고 있었다. 저 앞에 핑크 자매가 서로를 마주 보며 미소 짓는 포스터가 한 장 붙어 있었다. 나는 그냥 가기 아쉬워할 딸을 위해서 사진을 찍자고 말했다. 그녀는 이 할도 채 먹지 못한 팝콘을 한 손에 들고 이빨 빠진 입을 한껏 치켜올리며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나는 기분이 썩 나아지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 씻기고, 먹이고, 놀아주고, 동화책을 읽고, 재운 뒤 <사랑의 하츄핑>을 보고 왔다는 학부모들의 후기를 검색해 보았다. 다양한 반응들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나와 비슷해 보였다. 생각보다 시각적으로 볼만했다는 의견에는 나도 동의했는데, 그 아래에 어느 엄마가 이런 글을 남겨놓았다. 그리고 그 글에서 나는 더 이상, 이 영화를 보고 온 하루가 아깝지 않게 되었다.
“저도 이 만화를 보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로미공주가 이런저런 티니핑들을 다 거절하고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 마침 티니핑 도감이었고, 잡고 떨어지다 ‘우연히’ 펼친 책장이 ‘우연히’ 하츄핑 페이지였고 거기에서 로미는 운명을 발견했다는 강렬한 예감을 받게 됩니다. 그녀 앞에 대단한 우여곡절이 펼쳐지는데 여느 주인공과 달리 그녀는 모험을 위해서가 아니라 운명을 마주하기 위해 그곳으로 달려갑니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숲에서 ‘우연히’ 하츄핑을 만나게 되는데 그 둘은 강력한 방해 요소가 산재해 있음에도 정말 ‘당연하다는 듯이’ 첫눈에, 사랑에 빠집니다. 저는 이걸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아이들을 위한 만화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기로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딸아이에게 이런 얘기를 했더니 초등학교에 다니는 우리 딸이 그러더군요.”
“나는 너무 잘 이해되던데? 엄마가 나를 낳아줬을 때도 그랬을 거 아냐.”
정 다 인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