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자리 위로 이야기를 펼치다 : 동장윤다 차살림법 04
그녀가 오늘 내게로 왔다. 서먹한 사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친하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도 어려운 관계였던 우리는 우연히 길거리에서 마주쳤다. 나는 그녀에게 차 한 잔 마시러 오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갑자기 밥을 먹으러 가자고 하거나, 영화를 보러 가자고 말하기에는 부담스러울까 싶어 던진 내 질문에 그녀는 흔쾌히 그리하겠노라 답했다. 우리는 날짜를 머지않은 주말 점심 전으로 잡았고 그렇게 오늘 그녀가 나에게로 왔다.
그녀를 맞아들이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나는 볕이 잘 드는 자리에 찻자리를 펴기로 한다. 엇비슷한 높이로 창가의 햇볕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했다. 그 가운데 다림질한 하얗고 깨끗한 자리수건을 살포시 놓는다. 편평하고 각 잡힌 사각의 흰 수건은 마치 캔버스와 같아서 그 위에 올라갈 동글동글한 찻그릇을 고르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인다. 화려한 것이 좋을까 아니면 담담한 것이 좋을까. 같은 색과 모양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세트라면 무난하겠다 싶어 수건 위에 올려보았다. 하지만 안정감 있는 배열 주변으로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내 색깔이 부족했다. 오늘 같은 자리에는 기성품이 주는 편한 맛보다 내 개성이 드러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그릇들을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두었다.
나는 조용히 그녀를 생각하며 한 모금 두 모금 마셨던 내 과거의 마음을 하나하나 꺼내었다. 즐거운 순간을 함께한 도구들이 하나씩 무대 위로 등장했다. 살구색 달팽이 같은 A 작가의 우림이 옆에는 폭우로 무너져 내린 산비탈의 짙은 황토 빛깔 같은 식힘이를 놓았다. B 작가는 언제나 편안함을 주니까. 얼마 전 실험에 성공했다는 C 작가의 보듬이는 손으로 빚어 쌓은 밝은 옹기 같다. 쥐면 쥘수록 자신감이 생겨 저번 주부터 자주 손에 들어오곤 했다. 그녀가 쓸 보듬이는 미정이다. 그녀가 오늘의 기분으로 고를 수 있도록 내버려 두고 싶으니까. 그 사이 화로에 물이 보글보글 끓었다. 뚜껑을 여니 쉬익 하며 김이 피어오른다. 그리고 그녀가 도착했다. 우리는 살짝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창가 찻자리로 갔다. 그녀는 나와 같이 C 작가의 보듬이를 손에 쥐었다.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빈 우림이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 마침 바흐의 골든베르그 변주곡이 흘렀다. 빙글빙글 쏟아지는 물줄기를 따라 피어나는 수증기의 움직임과 부딪히고 튀어 오르며 생기는 맑고 무게감 있는 물소리가 음악과 닮았다. 수증기는 우림이의 둥그런 몸체를 한 바퀴 돌아 밖으로 몽글몽글 흘러나온다. 어색함에 아무 말이 없던 그녀는 따뜻한 물줄기와 수증기가 우리 둘 사이 혹은 찻자리 위 공간으로 스며들어 가는 광경을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그녀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물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별로 없네요. 그녀의 긴장이 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홍조는 조금 더 부드러워졌고 우림이 안에 들어있던 따듯한 물줄기가 보듬이로 나누어지는 때에는 그녀의 무릎이, 발이, 허리가, 어깨가 한층 여유로워 보였다. 따스함이 도자기에서 피어나 우리를 감싸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이렇게 그릇을 먼저 데우면 첫 번째 잔부터 차가 맛있답니다. 그녀는 동그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이내 수긍했다. 하지만 이 따뜻함은 단지 우리의 미각을 만족시키는 것 이상으로 효과가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미지근했던 관계가 비로소 다음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을 했다. 온도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모든 관계는 예열을 위한 때와 순간이 필요했고, 나는 이 순간에 감사했다.
사실 나는 어렸을 적 찻그릇 데우는 과정을 귀찮아했다.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여전히 이 과정을 찻자리의 ‘필수과정’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차를 마시기 위해 물을 끓이는 것, 자리수건을 펴는 것, 그릇을 골라서 자리에 정렬하는 것 어느 하나 빠져서는 차를 마실 수가 없다. 하지만 이 과정은 스리슬쩍 빼더라도 차를 마시는 데 지장을 주지 않는다. 다만 첫 잔을 온전히 즐길 수 없을 뿐이다. 두 번째 잔부터는 실패할 리 없다. 물리적인 법칙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오늘 나는 그 생각을 고치기로 마음먹는다. 무엇을 선물해야 할지 몰라 꽃이 무난할 것 같았다는 그녀의 말에 빙그레 웃으며 꽃병에 꽃을 꽂는 순간에도, 화장실을 좀 쓰겠노라며 잠시 자리를 비운 순간에도, 마음에 드는 그릇을 골라 보시라는 권유에도, 막상 마주 앉아 처음 어색하게 웃었던 순간에도 그녀의 부자연스러움이 못내 신경 쓰였다.
아무 말 없이 떨어지는 물방울의 소리를 듣고 눈으로 스며드는 온기를 감상하는 사이 찻그릇이 적당한 온도로 데워지듯 어색함에 살짝 경계하던 그녀의 마음도 비로소 누그러졌다. 나는 이 데우기의 순간이 그녀에게 나의 마음 혹은 정성을 보여주는 과정이었음을 확신했다.
우리는 몇 시간이고 앉아서 몇 통의 물병을 비워냈다. 포근한 햇살과 따듯한 찻그릇의 온기의 힘을 빌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따스함을 받아들이기 위해 피부의 구멍 하나하나가 활짝 열리는 것처럼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마음을 열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음의 세계로 한 발짝 나아갔다.
다음날, 나는 똑같은 자리에 홀로 앉아 차를 마시며 곰곰이 생각을 더듬어보았다. 어제의 광경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마음이 전달되는 광경을 똑똑히 본 나는 이전까지 몰랐던 이 마법과 같은 순간이 이제야 찾아왔음에 반가웠고 동시에 낯설기도 했다. 분명히 혼자 마시는 이 순간의 나와 그녀와 마시는 어제의 나는 달랐기 때문이다.
내 앞에 나를 마주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던 걸까. 그래서 나는 그녀가 앉았던 그 자리에 내 마음을 앉혀보았다. 나는 정성을 다해,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듯 찻자리의 나 자신을 특별하게 대한 적이 있었던가.
낯선 내 마음을 마주하고서야 비로소 나는 피어오르는 물줄기의 변신을 목격한다. 뜨거운 물은 그릇을 덥히기 위해 기꺼이 그 안으로 쏟아져 들어갈 때 자신의 일부를 벗어내는 듯 보였다. 한 몸이었던 물줄기와 수증기는 그릇 안에서 둘로 나뉘고, 하나는 손바닥의 온기로, 또 하나는 눈으로 스며드는 온기로 모습을 바꾸고 있었다. 그리스의 한 시인이 말했다. 인간의 운명은 신에 의해 두 쪽으로 쪼개어진 알이 본디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서로를 끊임없이 찾아 헤매는 것과 같다고. 뜨거운 물줄기에서 갈라진 두 존재가 준비된 시간과 과정을 거쳐 온기라는 차원으로 재결합하듯, 오늘의 내가 낯설어했던 어제의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시간과 적절한 과정이 필요했다.
비로소 생각해 보니 어제의 나는 그녀와 마음을 맞추기 위해 서로에게 예열할 수 있는 시간과 과정을 준비했던 것이다. 그렇게 순간이나마 차 마시는 동안 하나 된 마음으로 행복했던 어제의 나를 오늘의 내가 보듬어 안기 위해 다시 한번 뜨거운 물줄기를 간밤 내내 차갑게 식어 있던 우림에 따른다. 당신을 이해하려고 시간과 정성을 들였듯 오늘 나는 나 자신의 낯설었던 생각과 귀찮았던 마음을 받아들여 보아야겠다. 그렇게 하면 이 순간이 비로소 온전한 하나의 나로 가득 채워지지 않을까.
롤링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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