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자리 위로 이야기를 펼치다 : 동장윤다 차살림법 05
어머니는 요리사다. 정식으로 학위를 따거나 누군가를 가르친 적 없지만, 어머니의 요리는 특별하다. 평소 한두 끼니만으로도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는 무욕의 인간도 그녀의 접시 앞에서는 허리띠를 느슨하게 풀어놓게 된다. 준비한 음식의 색깔과 질감, 부피나 형태뿐만 아니라, 음식 담은 그릇 끼리의 차림새도 먹음직스러움을 더한다. 집으로 초대받은 손님들은 어머니가 차린 상 앞에서 누구나 할 것 없이 잠시 침묵에 빠진다. 탄성을 내뱉기 전 짧은 몇 초의 침묵은 작은 세상 안에서 스스로 수행자처럼 살아오신 어머니의 요리에 대한 드넓은 바깥세상의 평가를 말해준다. 하지만 그 식전의 고요는 그저 맛과 모양새에서 비롯한 것만은 아니다.
어머니의 음식에는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든 것이 가득하다. 요리에 대한 어머니의 자부심 중 하나는 곡물과 채소만으로도 풍성한 식탁을 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세상의 모든 채소를 갖은 방법으로 섞어 오묘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연금술사다. 어머니의 밥상은 신념을 쫓아 엄격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오미(五味)가 어우러져 입도 즐겁고 눈도 즐겁다. 고기 뼈와 말린 생선 없이도 국은 시원하고 깊은 맛을 낸다. 김장김치든 갓 무친 겉절이든 젓갈 없이도 맛깔 난다. 또한, 어머니는 늘 먹을 만큼만 푸성귀를 거둬들이고 딱 그만큼만 식탁에 올리신다. 잔뜩 만들어 쟁여두거나 버리는 법은 없다. 건강하고 맛있는 밥상을 차리되 늘 지나치게 먹지 않고 깊이 음미하게끔 이끄신다. 어머니에게 음식을 만들고 먹는 일은 단지 열량을 채우고 몸을 튼튼히 하는 일에 그치지 않는 탓이다.
어머니는 피가 맑다. 문자 그대로 너무나 깨끗하고 맑아서 세상에서 가장 약하다는 해열진통제 한 알만으로도 약효가 넘치기 일쑤다. 나는 여름철이면 모기나 벌레 따위에 유난히 시달리시는 어머니를 보며 속으로 피가 너무 깨끗해서 맛있기 때문일 거로 생각하곤 했다. 사실 어머니를 좋아하는 것은 모기뿐만은 아니다. 생전 처음 보는 고양이도 편안함을 느끼는지 선뜻 다가가고 어디선가 날아와 며칠을 쉬어가는 새들도 한참을 어머니와 눈을 맞추곤 한다. 어렸을 적 어머니는 뜨거운 물을 그대로 냅다 하수구에 쏟아버리려는 나를 꾸짖은 적이 있다. 어쩌면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작은 벌레 몇 마리가 안에 들어가는 것을 보셨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하수구 주변에 사는 수많은 미생물 왕국이 인간의 우발적인 행동 하나로 순식간에 사라져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누군가를 가르쳐 본 적 없었던 어머니는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으셨지만 나는 그 단호함이 무섭거나 불만이었던 적이 없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어머니의 말씀과 몸가짐에는 모두 이유가 있고 한결같아서 납득하기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어머니는 남에게 하지 말라는 것은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스스로 지키시는 분이었다. 특히 삶과 죽음과 관련한 문제에서는, 살아가는 생명에 관해서는 틀림이 없었다.
나는 그런 어머니가 내려주시는 차가 좋다. 말을 해도, 하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은 그 찻자리에서 나는 어머니가 내어주시는 식사 한 상과 다름없는 풍요로움을 느낀다. 차도 음식의 하나라 그런가. 이 차도 결국 어머니의 손끝에서 비롯한 것이기 때문일까. 하지만 차는 다른 요리와 달리 찻잎과 물만으로 완성하는 음식이다. 간을 맞추고 어울리는 접시에 담아내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남에게 자신의 원칙과 삶의 방식을 말로 가르치거나 설명해본 적 없는 사람이 상대방을 감화시키는 방법의 하나를 예술이라고 한다면 어머니의 요리는 예술일 것이다. 그것을 종교라고 한다면 또한 종교일 것이다. 무어라 부르든 간에 중요한 것은 신기하게도 그 어떤 설명 없이 그녀 앞에서 나와 당신은 모두 맛과 모양의 표면적인 정보를 넘어서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읽고 느끼고 감동한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애달프게 간직하며 한결같이 지키고 살아온 가치가 자연스레 묻어져 나오기 때문일까. 우리고 나눠 따르는 차 한 잔에 어머니의 품성이 흘러드는 것만 같다.
음악도 곁들이지 않은 고즈넉한 오후 찻자리. 찻자리에 앉은 화려한 경력의 번지르르한 수다쟁이들보다 더 선량하게 살아서 오히려 할 이야기가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의 곁에 있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에게 다른 누구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잠들어 있다고 믿는다. 나는 차에서 어머니의 생명에 대한 마음가짐을, 일관성이라는 단단함을, 너무 맑아서 예사로 다루면 망가지는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를 읽는다. 검어서 푸른빛마저 감도는 듯한 바싹 마른 찻잎사귀에서 황금빛 풍요로움이 쏟아진다. 어머니가 내려주신 차 한 모금은 그냥 음식이 아니다. 땅 위에 난 모든 것을 한 데 어울려 만든 요리와 그 모든 것을 빼고 잎사귀 하나로만 만든 차 모두를 아우르는 어머니의 세상을 이제야 나는 알겠다. 차 앞에서 내가 조용해지는 이유는 이것뿐이다.
차에는 우리를 고요하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다.
진솔하게 믿는다면 지나치지 말고 쉬이 내뱉지도 말고, 곰곰이 마음 들여다보는 날이 되기를. 이제, 여름의 문턱을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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