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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불담이가 불과 함께 담은 것들 (下)


동장윤다 차살림법 : 찻자리 위로 이야기를 펼치다 : 2부_29장













차불담이(풍로)는 동아시아의 중세와 함께 크게 변화했다. 죠오의 토후로(土風爐)에 관한 이야기와 더불어 그의 제자 센리큐의 판풍로(板風爐)도 있다. 금속이나 돌로 만드는 고급스럽고 수준 높은 풍로의 세계를 아직 품기 어려웠던 까닭으로 일본이 선택한 일종의 차선(次善)이겠으나, 아름다움은 언제나 최선(最善)의 영역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센리큐는 그의 정치적 주인이자 차의 제자(정확하게는 제자라기보다는 그의 찻일을 도맡아 수준을 과시하여 면을 세우고 존경을 받았던 관계)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위해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센리큐는 그의 스승 죠오의 차에 관한 화두를 이어받아 평생에 걸쳐 실천했는데, 차도구의 개혁이 그중 하나다. 다도(茶道)를 행위의 영역으로 해석한 차노유(茶の湯)나 심상의 영역으로 해석한 와비차(侘び茶) 양쪽 모두에서 기물의 힘은 중요했다. 기물은 주변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는데, 그 변화의 최종점은 공간이었다. 국보 차실 대암(待庵)은 센리큐가 히데요시를 위해 준비한 주옥의 소우주였다. 히데요시는 이곳에서 차 명상을 하며 전국 통일의 마지막 한 걸음을 결심했다. 그렇게 나아간 전장에서 센리큐는 그의 주인을 위해 나무로 만든 풍로를 준비했다. 그것이 판풍로(板風爐)다.


센리큐가 좋아했다는 삼나무를 잘라 사각의 틀을 짜고, 진흙을 안에 꼼꼼하게 발라 만든 이 급조 차불담이는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도 차를 놓지 않는 집념 혹은 집착의 영역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사무라이는 평온의 시대에도 칼을 놓지 않기 위해 차선(茶筅)을 들고, 꽃꽂이를 배웠다. 반대로 전쟁의 시대에는 항상 칼을 들고 있어야 했기에 같은 맥락에서 차가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들에게 차는 분노 사이의 냉정이었고, 혼란 속의 집중이었다. 역설에서 큰 의미를 발견했던 당시의 차인들은 제대로 된 차 한 모금을 위해서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위험을 무릅썼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차불담이가 담으려는 혼돈에서 자연까지, 흙에서 문명까지를 아우르는 듯하다. 


나는 이즈음에서 공예(工藝)란 무언인지 생각해 본다. 서양에서 예술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아트(art)’는 라틴어 ‘아르스(ars)’에서 왔다. 지금은 기술을 의미하지만, 고대 그리스어에서는 예술을 ‘테크네(techne)’라고 불렀다. 두 단어 모두 공통점이 있는데, 당시에는 ‘연결한다’라는 의미로 썼다는 점이다. 라틴어 ‘아르스’는 조금 더 정확하게 ‘우주의 원칙에 맞추어 연결한다’라는 뜻이었다. 재미있게도 한자 역시 비슷한 결이 있다. ‘예(藝)’는 ‘예술’을 뜻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심는다’라는 뜻도 있다. 초기 고대 한자에서 이 글자는 저 먼 산언저리에 살던 식물을 내 집으로 가져와 옮겨 심고 죽이지 않는 기술을 뜻했다. 예나 지금이나 식물을 죽이지 않고 살리는 일은 꽤 고도의 기술이 필요했던 듯하다. 동물보다 식물 살리기가 더 어렵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생각해 보면 자연 그 자체로 자연스러움의 인위적 영역으로 표현하는  일이 곧 예술이었고, 이것은 저 ‘아르스’처럼 세계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고 연결해 내는 위대하고 까다로운 일이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공예를 예술의 영역에서 조금 동떨어진 것으로 낮추어 보는 경향이 없지 않다. 하지만 공예는 인류의 문명사와 함께 해왔다. 예술을 실용의 영역에 걸친 것으로 볼 것인지, 그 바깥의 영역에 국한 시킬 것인지에 따라 정의는 달라지겠지만 어느 쪽이든 삶을 이야기하고 담는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삶을 담기 위해서 공예는 물과 불이라는 서로 이질적이고 모순적인 두 세계를 한 데 이어 붙였다. 아래에서는 이글거리는 불을 담고, 위에는 찰랑거리는 물을 담아 그 둘이 서로를 잡아먹어 자신의 장점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중재하고, 연결한다. 그것이 ‘工’이지 않은가. 내가 가장 사랑하는 한자 중 하나인 이 글자는 차불담이의 역할과 세계관을 표현하는 가장 훌륭한 단어다.











정 다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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