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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불담이가 불과 함께 담은 것들 (上)


동장윤다 차살림법 : 찻자리 위로 이야기를 펼치다 : 2부_28장













요즘 세상에 차 끓이려고 풍로를 쓸 일은 좀처럼 없지만 그래도 모처럼 기분을 내려거나, 귀한 손님에게 좋은 구경시켜 드리려는 마음을 쓰려거든 차불담이를 꺼내 보시는 것은 어떠할는지. 풍로를 우리 방식으로 일컫는 차불담이는 말 그대로 차를 위해 사용할 불을 담는 도구라는 뜻이다. 현대 중국이나 대만에서는 다예로(茶藝爐)라고 부르는 이것은 당나라 육우 시절부터 시작하여 첫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과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차를 마시고 시 좀 쓴다는 이들 치고 풍로를 자신의 시 구절에 좋은 동료이자 스승으로 표현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저 옛날에는 이 차불담이가 차를 위한 필수적인 도구였지만 요즘 들어서는 인테리어 소품에 더욱 가깝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필요한 일만 해내는 사람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쓰임이 덜한 물건이라면 한 번의 사용에 더 많은 의미를 찾아내고 부여하고, 꺼내 쓰면 될 일이다.



대부분의 차도구가 그러하듯이 차불담이 역시 중국에서 우리에게로 왔다. 우리에게서 일본으로 갔는지, 중국에서 바로 일본으로 갔는지 아무도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일본 사람들은 우리를 거치지 않고 바로 중국에서 일본으로 직수입 되었다고 말한다. 일본 사람들은 좋은 버릇이 하나 있는데, 중국에서 수입한 물건에 가능하다면 자신에게 익숙한 이름을 붙여 다시 불러주었다. 가령 그들은 중국에서 건너온 당송시대의 이른바 명품 카라모노(唐物) 풍로를 ‘당동풍로(唐銅風爐)’라 불렀는데, 그 안에 넣는 삼발이를 오덕(五德)이라 불렀다. 일본식으로는 ‘고토쿠’가 되는 식이다. 고려시대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에서 건너온 풍로를 이리도 써보고 저리도 써보다가 심심해서 이렇게도 바꿔보고 저렇게도 바꿔보면서도 딱히 그 다름을 구별하여 이름 붙이는데 관심이 없었다면 일본 사람들은 반대였다. 아마 우리네 조상들은 그런 세심함에 대해 사소한 것에 대한 집착 혹은 대수롭지 않은 방식으로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오늘을 사는 후배들에게는 다소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본 사람들은 당동풍로 안에서 조선풍로(朝鮮風爐)와 류큐풍로(琉球風爐)를 구분했는데, 이름처럼 전자는 우리쪽에서 후자는 에도시대 그들쪽에서 비롯한 것이다. 



13세기 고려시대 사람들이 너도나도 일상처럼 차불담이를 쓰던 시절, 일본은 승려 남포소명이 남송 유학길 끝에 귀국하며 가져온 이런저런 불구(佛具) 중에 차불담이가 있었다. 이후에 유명한 차인이자 승려인 무라타 주코가 즐겨 사용하였고, 그의 차에 관한 정신적인 문맥을 계승했다 자처한 다케노 조오에 의해 너도나도 즐겨 이용하게 되었다. 다케노 조오는 제자 센 리큐 이전부터 차도구가 지닌 변화의 가능성에 주목한 통찰력 있는 인간이었다. 그는 몇 가지 차도구의 개혁을 이끌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차불담이였다. 차불담이는 금속이나 돌로 된 재질의 것이 대부분이었다. 비싸고 만들기 어렵지만 변형되지 않고, 유지보수가 비교적 쉬운 편이기 때문이다. 조오는 반대로 저렴하고 만들기 쉬운 것에 주목했다. 그래서 흙으로 차불담이를 만들었다. 물론 그는 도공이 아니었기에 나라의 유명한 신사의 제기를 납품하는 기술자를 섭외해 주문 제작에 들어갔다. 도공(陶工)의 절반은 차인이 만든다는 말처럼 그는 몇 번의 실험을 거쳐 세상에 없던 토풍로(土風爐, 토후로)를 만들었다. 토기로 연성하고 유약이나 옻칠로 마무리한 이 참신한 물건은 500년이 지난 오늘 봐도 세련되었다 할 만큼 유행을 타지 않는 모양새다. 이를 나라풍로(奈良風爐)라고 부른다. 조오의 제자 리큐에 이르러 나라풍로는 몇 가지 실험을 더 거쳐 매우 다양한 시도와 결과물을 내게 되었다. 그리고 차인들은 이른바른바 주문 제작의 시대를 살게 되었다. 



조오의 미적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두 군데 있다. 하나는 계절을 구분하는 형식미에 있다. 무라타 주코 시절에는 하나의 차불담이로 사계절을 썼지만 조오는 여름용과 겨울용을 따로 만들었다. 가운데 있는 큰 바람구멍을 기준으로 상부를 연결하는 위가 덮여 있으면 ‘눈썹이 있다’라고 불렀고, 위가 열려 있으면 ‘눈썹이 없다’라고 불렀다. 그래서 눈썹이 있으면 ‘참(眞)’이고, 없으면 ‘행(行)’이다. 여름에는 더우니 손님에게 열기가 덜 가도록 참을 썼고, 겨울에는 화기가 더 가고 빨갛게 익은 숯이 더 잘 보이도록 행을 썼다. 왜 ‘행’이라는 단어를 썼는지를 상상해 보면 더욱 즐겁다. 한쪽이 참이니 나머지가 거짓이라 쓰면 운은 맞을지 몰라도 뜻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눈썹이 없다고 차불담이가 차불담이가 아닌 것은 아니니까. 行은 움직이고 나아간다는 뜻이니 돌려 말하면 완전하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모자라니 더욱 노력하고 힘써서 움직여야 한다. 동시에 겨울은 추운 계절이니 온기가 손님에게 한 발짝이라도 더 곁으로 다가가기를 바란다는 뜻도 있다. 여러모로 시적이라 맛이 있다. 이러한 형식미뿐 아니라 조금 더 크게 바라보면 아름다운 구석이 하나 더 있다. 하나로 사계를 사용하지 않고 하계와 동계로 나누었다는 것은 그만큼 경제적이라는 뜻이다.



풍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품이기도 해서 값이 비싸다. 금속과 돌을 성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흙은 이야기가 다르다. 차인들은 수십 가지  차도구를 갖추어야 하는데 그 하나하나가 값이 비싸니 평생에 걸쳐 수집한다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차를 무엇을 위해 배우는가에 도달하기 전에 물건을 모으느라 늙어 죽을지도 모를 일이다. 굳이 하계와 동계를 다 갖추지 않더라도 하나만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그래서 ‘참’이 있는 것이다. 흙이 가진 따스한 질감과 이를 따르듯 유연하게 흐르는 곡선의 단순함, 그리고 구하고 쓰는 이의 마음마저 보살피는 차도구니 이를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정 다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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