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장윤다 차살림법 : 찻자리 위로 이야기를 펼치다 : 2부_시작하는 글 下
식물은 뿌리, 꽃, 열매로 생명의 고리를 잇는다. 열매가 뿌리가 되고, 뿌리가 꽃을 피우고, 잎이 열매를 맺고, 열매는 다시 뿌리가 된다. 차나무도 그렇다. 차나무의 뿌리는 옆으로 뻗어 나가는 것보다 땅속으로 파고 들어가기를 좋아한다. 넓이보다는 깊이인 셈이다. 그래서 함부로 옮겨 심으면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차나무는 땅 위로 드러난 키와 비등하게 아래로 자란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균형이 이 식물의 정체성인 셈이다. 상록수여서 겨울에도 푸른 빛을 잃지 않는다. 폭풍우에도 기울거나 뿌리 뽑히지 않고, 바위틈에서도 비스듬히 서서 꼿꼿함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 선비들은 일이관지(一以貫之)라고 표현했다. ‘하나로써 모든 것을 꿰뚫는다.’ 하지만 이 표현이 좀 더 마음에 든다. ‘가을 서리로 푸른빛을 씻어 겨울을 난다.’ 보다 문학적이다. 하지만 백미는 이것이다. 치청도화(致淸導和), ‘한 번 마음 주면 죽는 날까지 변하지 않는다.’ 옳다고 판단하면 의로운 것이고, 의롭다 믿으면 행동하고 굽히지 않는다. 주변에 이런 사람 있으면 행복해진다. 남의 눈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도 한결같은 사람은 늘 듬직하다. 옛사람들은 차나무를 더러 보이는 모습만큼 보이지 않는 곳도 스스로 내려볼 줄 아는 존재로 생각했던 것일까.
뿌리가 이러한데 꽃은 다를까. 하얀 꽃잎 가운데 가느다란 노란 꽃술이 매우 촘촘히 그리고 풍성하게 핀다. 재밌는 점은 이 꽃이 늦은 가을에 핀다는 것인데, 열매는 이 꽃이 진 바로 그 자리에 맺힌다. 차꽃이 피면 반드시 열매가 맺는다. 약속이다. 그리고 일 년을 기다린다. 여물지 않으면 떨어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태양을 직접 받기 위해 대놓고 위로, 잘 보이는 곳으로 머리를 내밀지 않는다. 차나무에는 꽤 많은 열매가 맺히는데, 그 말인즉 그만큼의 꽃들이 피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대부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얼마나 괜찮은 존재인가. 두고두고 곁에 두며 사귀기 좋은 친구다. 눈에 띄지 않게 자기 할 일을 묵묵하게 하는 존재는 쉽게 찾기 어렵다. 대개의 꽃은 드러내고 과시한다. 향을 진하게 피우거나, 색을 화려하게 하거나 해서 자신을 도드라지게 만든다. 차나무꽃은 그렇지 않다.
열매는 어떨까. 열매는 겨울을 버틴다. 봄이 와도 눈에 띄지 않고 숨어 지낸다. 봄이 왔다고 무턱대고 풍부해진 영양분을 마구 쓰지 않는다. 새잎이 자랄 힘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열매는 그냥 기다린다. 곯아서, 썩어서 떨어지지 않을 만큼만 먹는다. 순이 솟구치는 여름이 되면 그제야 열매도 커지기 시작한다. 장마를 거치면서 영양분이 남을 만큼 풍부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계절의 끝자락이 되면 이윽고 주렁주렁 매달린다. 가을이 되고 새로운 차꽃이 피기 시작할 무렵 드디어 열매는 땅으로 떨어진다. 꼬박 1년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미리 당겨서 익거나 떨어지는 법이 없다.
차나무가 그 본성을 굳세게 펼칠 수 있는 곳은 농사짓기 불편한 산비탈이나 계곡이다. 성격도 참 재밌다. 거칠고 힘든 곳에서 적응하려 애쓴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얼마나 이로울까. 몸에도 마음에도 훌륭한 친구다. 토질이 거칠고 나빠도 차나무는 본래의 품성을 유지한다. 환경이 힘들어도 자기다움을 잃지 않는다. 선비 한재 이목은 모진 고난 속에서 생긴 결과도 자기만의 덕이라 생각하며 이익으로 바라보지 않고, 다른 이들의 도움 덕분이라 믿으며 내어놓을 줄 아는 모습을 인(仁)의 실체라 생각했다. 인간은 서로 같이 살기 위해 인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고 했던가.
차를 즐겨 마신다고 이러한 바를 생각하게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수십 년 묵은 차인이랍시고 이런 성품에 대해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 보이지 않다. 이리저리 사람들과 두루 어울리고, 이런저런 물건들에 둘러싸여 있다 보면 바탕이 희미해져 자기다움이 무엇이었는지 곧잘 잊어버리곤 한다. 도리어 차를 여태 마셔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서 차의 품성을 더 많이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욕심과 욕망으로 차를 도구화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세상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눈에 담기는 세상 위아래로 숨은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면 모든 것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건 예술가들의 영역이라 예사로 생각하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생각해 보면 희한하다.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는 왠지 모르게 함부로 말하기 어렵다. 여기에는 생각을 거치지 않고 말하던 사람이 스스로 한 번 되짚어 보게 하는 요술 같은 힘이 있다. 쉬움, 편리함이 우리 생활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되었다고 누구나 떠들지만, 필요와 필수는 다르다. 도리어 그 반대의 경우는 절실하지 않던가? 차를 통해 무언가를 발견하는 경험, 우리와 함께 새해에도 천천히 알아가 보자.
정 다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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