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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RollingTea 구르다

죽어서도 다시 만나자 우리, 연꽃 下


동장윤다 차살림법 : 찻자리 위로 이야기를 펼치다 : 2부_19장


차살림 준비

_꽃











잉카 사람들은 조금 특이한 오카리나를 만들어 썼다. 다소 무섭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사람의 뼈를 깎고 구멍을 뚫어 악기를 만들었다. 저 북쪽의 아스테카 사람들은 전쟁 포로의 가죽을 벗겨 뒤집어쓰거나 머리를 베어 해골을 만들어 허리춤에 차고 다녔으니 비슷한 경향인가 싶겠지만 잉카 사람들은 그런 면에서 감수성이 조금 달랐다. 그들은 원수나 적의 시체가 아닌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의 뼈를 추슬렀다. 그리고 뼈를 가다듬고 구멍을 뚫어 그 속으로 세상에 살아남아 있는 나의 숨을 불어 넣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아름다운 소리는 안데스산맥의 숲과 들판 구석구석으로 스며든다고 믿었다. 죽은 자와 산 자의 협주곡인 셈인가.


고구려 사람들은 죽으면 바로 장례 치르지 않았다. 그들은 이차장(二次葬)이라는 풍습을 따랐다. 가족의 죽으면 식구가 모두 모여 슬픔에 잠기고, 시체는 곱게 천으로 감싸 집안의 한쪽에 고이 모셔두었다. 그렇게 3년여가 지난 뒤에 본격적으로 장례를 치러주었는데, 이 기록이 《수서(隋書)》 중 <고구려 편>에 나온다.


“죽은 자는 집안 빈소에 모셔 두었다가 3년이 지난 뒤에 길일을 잡아서 장례를 치러준다. 부모나 남편이 죽었을 때는 모두 3년 동안 상복을 입고, 형제간에는 석 달 동안 입는다. 처음에 시신을 빈소에 모실 때는 곡을 하고 눈물을 흘리지만, 장례를 치를 때는 북을 치고 춤을 추며 가무로써 보낸다.”


그들은 마치 흑인들이 장례처럼 서로 모여 북을 치고 노래하며 춤을 추었는데, 이때 개와 말을 앞세우고 그들에게 차례로 고기를 던져준 뒤, 장례가 막바지에 이르면 이들을 죽여 죽은 이의 혼령과 함께하도록 했다. 이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 무용총의 ‘무용도’나 ‘가무배송도’다. 그리고 그 그림의 왼쪽 위편에는 죽은 이의 집이 있고 지붕 위에 연꽃이 세 송이 피어 있다. 예로부터 죽은 자의 무덤에 장식된 연꽃은 재생과 환생을 의미했다. 저 먼 이집트에서부터 건너온 태양신의 재생과 환생의 연꽃 신앙이 동아시아의 끝에서도 2천 년이 훌쩍 지나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저 그림의 아래에는 혼령이 된 주인공이 말을 타고 개를 앞세워 저승길로 떠나고 있다. 그리고 그에게 필요했던 시간은 3년이었는데, 그때가 무르익었음을 알려준 것이 바로 집 위에 핀 연꽃이다. 말 그대로 천정(天井)에 피는 연꽃인 셈이다.


집안에 모셔두었던 시체가 삼 년이 지나면 완전히 분해되어 뼈만 남게 된다. 정확하게는 뼈와 그 주변에 눌어붙은 약간의 거죽이겠지만. 가족은 인간 세계의 증거인 육신이 완전히 정화기를 기다렸다가 남은 뼈를 깨끗하게 씻었다. 그래서 이차장을 다른 말로 ‘세골장(洗骨葬)’이라고 한다. 그들은 깨끗하게 씻은 뼈를 추려 항아리나 석실 등에 다시 안치하거나 후에 가면 묻어주기도 했는데, 이 모든 일은 불교가 들어오기 전 일이다. 그러니까 이 독특한 장례문화는 불교나 유교의 영향이 아니라 토속 신앙인 셈이다. 불교가 들어온 이후에는 화장과 납골의 개념이 생겼다. 그렇게 추스른 뼈로 남은 죽은 이는 비로소 깨끗하게 정화되어 마치 연꽃이 하늘에서 천둥과 번개를 타고 비와 함께 인간 세계로 내려왔듯 가벼이 하늘나라로 올라가 연꽃의 본래 세상에서 살아가게 된다고 믿었다.


시골에 살았던 나는 아주 어렸을 적에 동네 상여꾼들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대단히 큰 상여 가마를 여럿이서 둘러메고 마을을 빙빙 돌았다. 그 위에서 누구는 종을 울리며 곡을 하고, 누구는 북을 쳤는데 거대한 상여의 네 모퉁이에는 영롱하게 피어 있는 네 송이의 연봉우리가 선명하게 기억난다. 죽은 이와 한껏 가까운 존재였던 연꽃은 고구려 시대로부터 이천 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여전히 하늘 세계와 우리 세계를 이어주는 차원 문 역할을 한 셈이다. 죽은 이를 좋은 곳으로 보내주려는 그 축제가 후에 무당들이 장례 때 펼쳤던 지노귀 굿판이 되었고 그곳에서 화려하게 피어 있는 종이로 만든 꽃들은 끝없는 영화와 불멸을 상징했다. 다만 꽃은 곧 시들고 말기에 종이로 만들었다. 연, 모란, 매, 난, 동백, 다리, 도라지, 단풍 총 여덟 종류의 서로 다른 꽃들을 한데 섞어 만든 이세(異世)의 꽃을 수팔연(水波蓮)이라 했다. 이 또한 결국 연꽃이었으니, 연꽃은 저승과 이승을 잇는 포탈 같은 존재였던 셈이다. 해리포터 세계에서 장롱문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연꽃문이 있는 셈인가.


오직 한 송이만이 피는 연꽃이지만 더러운 진흙 속에 여럿의 씨앗을 뿌리고, 그 씨앗은 서둘러 피려 하지 않고 때를 기다린다. 그래서 오랜 세월 간 연꽃은 좋은 인연을 상징했다. 더러운 곳에 머물면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기회가 주어졌다 해서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피는 어리석음을 경계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들은 모든 힘을 비축했다가 오로지 한 송이의 꽃으로 발화한다. 세계일화(世界一花)란 그것이 별것인가. 한 송이의 꽃이란 곧 우리 개개인의 생명과 삶과 다를 바 없으니 주어진 기회를 참되게 살면 좋지 않은가. 그리고 그렇게 사는 삶이 모여 곧 세상을 조금 더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니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정 다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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