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然으로 가는 길의 안내문 07
보름 전 곡우더니 오늘 입하 날입니다.
입하 전 스무날 남짓 동안 우리나라 산에 들에 자라 핀 식물들 새순 거의 다가 사람 먹거리 되고, 들짐승 산짐승의 먹이도 됩니다.
살큼 데쳐 무치면 향기는 맑고, 맛은 부드러우며, 빛깔이 순하고 곱습니다.
그러다 문득 입하 지나면 독성이 짙어지는데, 세대를 이어갈 종을 번식시키기 위한 자위 수단이 식물 안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이 자위 수단은 애오라지 자신을 지키기 위함일 뿐 눈곱만큼도 이웃의 다른 것을 해치지 않습니다. 비겁하지도 용렬하지도 못 되지도 않았지요. 참으로 아름다운 방어 방법입니다.
식물들의 이와 같은 생태는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채우는 데만 생애를 써버리는 인간의 모습과 좋은 비교가 됩니다.
식물은 자연을 이루고 있는 모든 식구와 함께 살아가는 데 꼭 알맞게 정해져 있는 자신이 내놓아야 할 몫을 모두 내놓은 뒤에, 때가 오면 그제야 자신을 챙겨 자연에서의 제 자리를 겸손하게 지킵니다.
자연의 공존을 위한 저울 눈금이자 시곗바늘이 절기인데, 입하는 곧 공존을 위한 헌신이 먼저 있고 난 뒤에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식물의 생애 주기표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보고, 읽어서 함께 자연의 식구로 살아가자는 권선문이기도 하지요.
茶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올바른 기운을 생겨나게 합니다. 욕심의 무게 추가 中正에 멈추도록 곡우 무렵 빚은 차 한 잔 잘 달여 드십시오.
그렇게 맑아진 눈으로 저만치 짙어 오는 여름을 맞으십시오.
입하 날,
정 동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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