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듬이의 여행 06 : 약속, 믿음, 실천
달마가 인도에서 중국땅으로 건너와 숭산 소림사 정상 아래의 좁고 어두운 동굴에서 면벽하며 9년간 수련을 했다. 그는 이곳에서 돈오頓悟를 이루었는데 그 와중 네 명의 이름난 제자를 두었다. 후에 숭산을 떠나며 평하기로 도부道副, 총지(總持), 도육(道育) 세 명을 일러 각각 자신의 가죽과 살과 뼈를 얻은 제자라 평하였다. 오직 혜가慧可를 더러 달마는 자신의 골수를 얻은 것으로 인정하였다. 그렇게 혜가는 달마의 죽음 이후 중국 선불교를 잇는 두 번째 종사이자 본토 출신의 첫 번째 큰 스승이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혜가가 달마에게 스스로 제자가 되기 위해 찾아간 어느 겨울의 풍경이다. 마흔을 갓 넘긴 스님 신광은 가파른 숭산을 타고 달마가 거처한다는 동굴을 찾았다. 그는 이미 유교와 도교를 오래 공부하여 나름의 기준을 세울 만 한 위인이었으나 자신의 밑바닥에 깔린 보이지 않는 불안함과 초조, 위태로움을 다스릴 방도를 찾지 못하였다. 그는 기침을 하였으나 달마는 기척도 없었다. 수 시간을 기다렸으나 달마는 일어날 줄 몰랐다. 소림사에서 공양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달마는 커다란 가사에 발우를 들고 일어나 가볍게 눈인사만 건넨 채 유유히 곁을 스쳐 지나갔다. 신광은 이에 큰 감명을 받아 그날로 소림사에 행장을 풀고 달마를 쫓아다니기를 반복했다. 해가 뜨면 굴로 올라가 답 없는 인사를 올리고, 주변을 청소하고, 때맞춰 따듯한 물을 올리고, 그림자처럼 소림사를 왕래했다. 그렇게 열흘을 정성으로 따랐지만 달마는 벽만 쳐다볼 뿐 한 마디 말도 걸어주지 않았다. 그 해 12월 9일, 큰 눈이 내린 날 신광은 밤에도 소림사로 내려가지 않고 새벽을 맞았다. 눈이 무릎 높이로 쌓이고 여광이 세상을 비추었을 때 달마가 비로소 돌아앉았다. 그는 연민이 어린 눈으로 신광을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을 무엇을 원하십니까?” 신광이 울며 대답했다. “부디 자비로 감로의 문을 열어 뭇 중생을 구원해 주십시오.” 그러자 달마가 대답했다. “부처님들의 도는 오랜 세월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실천하기 힘든 일을 능히 실천하고, 참기 힘든 일을 능히 참아내야만 합니다. 어찌 공덕도 쌓지 않고 작은 지혜와 경솔한 마음과 교만한 마음으로 참된 가르침을 바라십니까? 괜한 헛수고일 뿐입니다. 만일 이곳에 붉은 눈이 내린다면 제가 그대를 제자로 삼겠습니다.” 이 말에 신광은 품고 있던 칼을 꺼내 왼팔을 잘랐다. 피가 사방에 흩뿌리며 붉게 적셨고, 신광은 팔을 조심스레 달마에게 바쳤다. 달마가 대답했다. “모든 부처님도 처음에 도를 구할 때는 법을 위해 몸을 잊었습니다. 그대가 이제 내 앞에서 팔을 자르는 걸 보니 법을 구할 만 하군요.” 그렇게 달마는 혜가를 자신의 제자로 삼았다.
달마와 혜가라는 큰 위인의 이야기가 범상치 않아 보이지만 사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구하기 위해 무언가를 포기하며 산다. 포기라는 단어가 평상시 애꿎은 의미로 쓰이곤 하지만 간절한 무언가를 얻고자 할 때 지불해야 하는 가치라는 점을 생각하면 포기도 꽤 괜찮은 말이다. 혜가의 경우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왼팔을 포기했다. 그만큼의 크기와 깊이가 아닐지라도 당신도 무언가 소중한 것을 지키거나 얻기 위해 포기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떠한 물건을 위해 시간과 돈을 포기하는 것은 비교하기에 많이 작아 보인다. 연인을 얻기 위해 친구를 포기하거나, 반대로 우정을 위해 사랑을 포기한 경우는 그보다는 조금 커 보이지만 그래도 부족하다. 그렇다면 이건 어떠한가? 가르침을 얻기 위해 그동안 쌓아 온 명성과 지위를 포기한다. 어떤 협회의 임원직을 내려놓고, 수많은 회원들을 이끄는 회장직에서 물러나야만 한 가지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사실 동화 같은 이야기다. 초등학생 시절 우리는 꿈과 뜻을 위해 현실의 멋진 환경에서 미련없이 등 돌릴 줄 아는 영웅의 이야기를 동경했지만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에서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일인 줄 잘 안다.
평라 심말순 선생은 그를 수식할 수 있는 수많은 표현과 문장이 있지만 저 물음에 대한 대답 하나로 모두 설명할 수 있다. 정력적인 활동가, 자애로운 선생님, 곧은 심지에 관철력 뛰어난 행동가, 결단력 있는 리더, 빠른 이해력의 소유자 등등 많은 말들이 있겠지만 내 눈에는 이 모든 것들은 사소해 보인다. 그녀는 교육기관을 운영했던 선생이자 원장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기르는 일에 반평생을 쏟았다. 자타가 공인하기로 손주보다 가르치는 아이들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심말순씨는 아이들에게 더 효과적이고 더 좋은 체험을 선물하기 위해 여러 예술 분과에 관심을 가지고 직접 배워 가르쳤는데 차도 그 중 하나였다. 외부강사는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춰줄 수 없어 스스로 배워 응용한 후 가르쳤다. 그렇게 바쁘게 산 세월이 십 수 년, 그녀는 큰 병을 얻어 모든 일을 내려놓았다.
심말순씨는 쉬고 요양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와중 요양 차 통도사를 들렀다가 선차와 명상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었다. 그녀는 차와 명상이라는 조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적극적으로 삶에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시작하면 빠르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까닭으로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통도사를 주축으로 차명상을 가르치는 지위를 얻었다. 그녀는 부산, 경남, 경북 일대의 차명상회 조직의 기틀을 잡고 협회와 단체를 일구는 데 큰 역할을 맡았다. 자신의 삶에서 차명상은 큰 의미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중요한 인사였고, 그만큼 그 스스로도 열정과 애정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 마음속에는 언제나 배움에 관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차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내놓을 수 있기는커녕 지금 내가 하는 이 모든 것이 이 삶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조차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기 어려운 상황에서 심말순씨는 정동주선생을 만났다. 《차인》지에 실린 정동주선생의 부산 강의를 보고 그는 곧바로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심말순씨는 정동주선생과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문제는 현실이란 전래동화처럼 ‘그렇게 두 사람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와 같은 해피엔딩으로 쉽게 마무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저 흔한 오늘날의 스승과 제자라면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졌겠지만 심말순씨의 경우는 달랐다. 자신의 그간의 고민과 과정을 묵묵히 듣고 있던 정동주선생은 이렇게 답하고 홀연히 자리를 떠났다. “고생이 많았습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당신이 그간 일구고 발 딛고 지냈던 그 모든 직책과 자리를 내 던지고 온다면 당신을 나의 제자로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심말순씨는 그 당황스러움을 잊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해본 가장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왜 이러한 조건을 내 거신 걸까. 혹 나에게만 이렇게 혹독하게 대하신 것은 아닐까. 이렇게까지 해서 나는 무엇을 얻으려 하는 걸까. 그간의 모든 것들을 떠나보내고 참된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 해도 후회하지는 않을까. 우리 모두가 선택의 기로에서 항상 하는 고민들이다. 새로운 인연을 만나거나 떠나보낼 때도, 정들었던 물건 하나와 이별해야 할 때도 우리는 주저한다. 심말순씨는 결국 그 해 여름을 지나 가을에 접어들었을 때 모두 내려놓기를 마음 먹었다. 그리고 마음을 먹자마자 바로 실행에 옮겼다. 선생님과의 약속은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름 없는 그저 평범한 제자로 다시 배움을 시작했다.
사실 이것 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정동주선생은 달마가 아니고, 심말순씨 역시 혜가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동시에 그 두 사람 사이에 맺어진 가르침의 믿음과 약속의 크기가 결코 작다 함부로 말할 수도 없다. 심말순씨는 그 어떤 제자보다도 현실의 삶 안에서 자신이 배운 가르침은 실천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 같아 보인다. 배움을 시작한 지 어느덧 수년이 흘러 시자侍者가 되었음에도 매일 아침 온 가족이 마시는 찻자리를 모든 격식과 순서를 지켜 차살림으로 펼치고 손짓과 행동 한 가지 한 가지 모두 의미를 담으려 노력한다. 차살림이 권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를 잘 이해하고, 또한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를 얻지 못한다는 사실 또한 잘 이해하고 있다. 큰 염원을 세우고 이에 도달하기 위해 그 누가, 그 어떤 사건이 있어도 매일 기도하는 마음으로 차를 마신다. 귀찮음을 벗으로 삼아야 함을 잊지 않는다. 왜냐하면 귀찮다고 무언가를 한 가지씩 줄이기 시작하면 정작 남아 있어야 할 중요한 것들마저 결국 필요한 순간에 곁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차를 시작하며 정리할 때까지, 이를 넘어서 차를 시작하기 위해 먼저 준비해야 하는 자질구레한 일들까지 참고 인내하며 매일 반복한다. 자신과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 매일의 찻자리를 잊지 않는다. 차를 평생도록 했다는 차인들 중 과연 몇 명이나 이렇게 살고 있겠는가. 선생과 약속을 했기 때문에. 자기 자신과 약속을 했기 때문에 말이다.
심말순씨는 오늘도 차를 마신다. 정확하게는 차로 나와 가족과 그녀를 스쳐 지나갔던 사랑하는 모든 아이들의 삶이 의미 있음을 잊지 않기 위해 차로 인생을 살림한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차를 시작하기 이전 그녀가 선생으로 오랜 세월을 살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선생인 자기 스스로 배우고 더 나아지려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귀찮아도 참고 견디며 항상 제자리를 지키는 본보기의 삶을 정동주선생과 그의 삶 주변에서 발견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본래 자리를 찾아 돌아오기 위해 심말순씨는 그저 잠깐 주변을 떠돌다 온 것 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참으로 다행이며, 반갑고, 감사한다.
글, 사진 정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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