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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RollingTea 구르다

아는 것이 아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보듬이의 여행 05 : 기본에 관하여









하나이레花入는 일본의 차법에서 매우 중요한 의식 중 하나다. 차실 밖의 어딘가에 피어 있던 꽃을 꺾어 차실에 걸고 오늘 하루 이곳을 의미 있게 만들어 줄 손님을 맞이하는 역할을 한다. 꽃은 언제나 훌륭한 오브제의 역할을 해 왔다. 무미건조하게 되풀이되는 일상에서 화사함은 두드러진다. 선물로도 좋고 장식으로도 훌륭하다. 하지만 차에 있어 꽃은 단순히 그 정도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여러 의미가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꽃은 차를 다루는 나의 얼굴이라는 점이다. 자연에서 태어나 자유롭게 살던 영혼이 특정한 목적에 묶여 차실로 초대되었다. 자연스러움을 모태로 삼아 인위의 행위를 펼치는 차와 주재자를 상징한다. 그렇기에 일본에서는 꽃의 모양과 방향, 무엇을 바닥에 받치느냐 빼느냐로 백 년이 넘도록 논쟁을 해 왔다. 꽃은 차에서 나와 상대를 모두 굽어 살피고 말과 행동을 다스리는 감시자였던 셈이다.


천안의 차선생 전재분씨는 이름 높은 집안에서 태어나 자라며 꽃을 배웠다. 당시 이름 있는 집안의 여식이라면 으레 교양처럼 배우고 했다는 꽃꽂이였을 수도 있지만 전재분씨에게 꽃은 조금 의미가 달랐다. 그녀는 꽃을 통해 차의 길을 눈여겨보았기 때문이다. 자유분방하고 사람 좋아 보이지만 빈틈없고 뚝심이 깊었던 그녀는 남편이 지어준 다림茶林이라는 글자를 들고 천안역전에 사무실을 얻어 88년도에 꽃과 차를 배우고 가르치는 공간을 열었다. 차로서는 천안에서 최초의 일이었다.


전재분씨는 30년이 훌쩍 넘는 차생활에도 여전히 배움에 대한 열망을 놓지 않는다. 초창기였던 당시에는 오죽 했겠는가. 그녀는 이름 높은 스승들을 수없이 찾아다녔다. 배움의 끈은 짧은 듯해도 그 끝은 다른 끈과 매듭지어져 또 다시 새로운 배움터로 그녀를 이끌어갔다. 그녀는 사찰도, 명사의 공간도 가리지 않고 배움터가 있다면 찾아 지식을 찾고 의미를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아가는 삶을 이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의 공간을 찾고 당시 스승이었던 행원 杏園선생에게서 다림이라는 이름에 헌軒 자를 붙이도록 도움 받아 본격적인 차실을 완성했다. 아래층에는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맛볼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차의 얼굴을 보여주는 공간을, 위층에는 이를 시간을 들여 정성스레 공부하고 익힐 수 있는 교육장을 만들었다. 차의 불모지와 같았던 천안의 본격적인 첫 번째 차 공간이었다.


전재분씨는 사업가가 아니었다. 지금도 아니고 앞으로도 아닐 것이다. 으레 이러한 공간을 만들었다면 차를 팔고 지식을 소매하는 일을 생각 했겠지만 그녀는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곳에 공간의 안의 공간을 만들었다. 만시당晩時堂은 불모지였던 천안에 차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기여한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나의 아버지이신 평강선생은 처음 보는 이들 앞에서 하는 첫 강의에 종종 이러한 말씀을 하곤 하셨다. “차를 배우러 오신 여러분은 많은 수가 중년이거나 중년에 접어들 무렵의 여성들이다. 어느 정도 아이를 기르고, 정성으로 가정이 뿌리 내리도록 십 수 년을 노력한 끝에 얻은 이 배움의 길을 헛되거나 삿된 방향으로 이끌어 일신의 욕심을 채우는데 이용한다면 큰 죄를 짓는 것이다. 차를 가르치는 일을 정신 차려야 하는 몇 가지 이유 중 하나다. 나는 이러한 점에 대해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라고 말이다. 모두에게 배움의 기회란 중요하지만 그 기회의 무게가 똑같은 것은 아니다. 나이가 어려 이것도 저것도 선택하며 배울 수 있을 때와 그녀들의 입장은 같지 않다. 전재분씨는 훨씬 더 많은 햇수가 지나고서야 아버지를 만났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만시晩時란 시간이 늦어버렸다는 뜻이다. 배우기에는 늦은 나이라고 생각하는 여성들을 모아 그녀가 스승으로 모셨던 행운선생을 초청해 한자와 한문을 가르쳤다.


차를 곧 행다行茶라 가르치는 선생들과 그녀가 다른 점이다. 전재분씨는 스스로를 늦게 배우고 늦게 깨우치는 사람이라 말한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녀는 자신이 먼저 배워보고 중요하다 여기는 것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제공하고 그들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려 했다는 점이다. 나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며 이 따듯한 이야기가 가슴에 오래 남았다. 누군가에게 배워 그것을 온전히 나의 것인 양 남들에게 가르치는 지식 소매상이 아니라 좋은 것이 있다면 같이 나누고 베풀 줄 아는 이는 드문 법이다. 늦은 나이에 차를 배워보겠다며 자신을 찾은 이들에게 그녀가 한문을 배울 기회를 열어준 것은 당시 차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고전문헌을 읽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원전을 배워 다시 이를 풀어 가르치기도 했지만 원전 그 자체를 함께 읽고 배우게 하겠다는 자세가 멋지지 아니한가.


사람들은 꽃을 보며 그 화려함에 반한다. 때문에 으레 찻자리에 꽂힌 꽃을 보며 이를 자리를 빛내는 장식 혹은 오브제로 받아들이곤 한다. 어떻게 생각할지는 각자의 마음이지만 차에서 꽃은 언제나 장식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꽃은 자연에서 비롯하여 인위를 다루는 경지를 상징한다. 근본, 뿌리, 원칙 등 여러 가지 수식어로 꾸밀 수 있지만 모두 기본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차의 기본은 무엇을 하는가, 왜 하는가, 어디로부터 비롯하였는가, 그리고 누구와 어떻게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잊지 않는 것이다. 전재분씨는 기본에 충실한 사람이다. 인간관계도 일도 차에서도 그 자세는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녀가 몇 해에 걸쳐 몇 번이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전재분씨는 평강 선생의 강의를 수 년 간 들으며 가장 많은 질문을 던졌던 학생 중 하나였다. 이미 누군가의 큰 차선생이고 품 品과 평評을 한지 오랜 차인이지만 그녀는 언제나 묻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거리끼지 않았다. 그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는 것이 아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항상 합니다.” 겸손함 혹은 굳건한 자존감 혹은 둘 다 일지도 모르겠다. 이를 뒷받침해 주는 증거는 많다. 그녀와 그녀의 일을 돕는 독지가篤志家가 많다는 사실도 한 몫 할 것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전재분씨와 마주 앉아 수 분간 얘기 나눠보면 당신도 알게 될 것이다. 실천에 관한 굳은 의지, 함께 라는 가치에 대한 확신, 존경과 존중의 미덕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자연스레 이해하도록 이끌어주는 힘이 그 단단한 눈빛과 입술 사이에 맺혀 있다.





천안의 차공간, 다림헌



2층 수련관에서 전재분씨의 은사들이 그녀에게 남긴 흔적들을 엿볼 수 있었다.





글, 사진 정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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