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담다 : 한국·중국·일본의 차 마시는 그릇 _ 특별편
높이 8-8.5센티, 입지름 10~11센티의 묘한 물건이 세상에 등장하기 전까지 나는 어떤 질문에 무어라 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차가 무엇인지, 누가 만들었는지 같은 질문에 선문답하는 이들이 많아 그와 같지 않은 답을 드리기 위해 노력해 왔다. 언제인가 누군가에게 차는 누가 만들었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수 만 년 전 구석기 시대 원주민들이 먹다 쓰러져 버려졌던 이파리를 신석기 사람이 약물로 재해석한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종교적 의식으로 이용했던 도구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춘추시대 중국인들이 나물로 해 먹었던 것을 출발로 삼는 의견도 있는데 더러는 신화를 그 기원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나는 대학시절 신화를 문학적으로 이해하는 방법론에 대해 배운 적은 있으나 곰이 정말로 내 생물학적 조상이라는 견해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는 처지라 마지막은 웃어넘기는 일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사실 나는 여기에 더해 몇 가지를 덧붙여 답할 수도 있다. 문화나 종교적 입장에서 차는 다르고, 역사적으로도 몇몇 시점에서 차는 제각기 다른 의미로 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답할 수 있는 위의 질문과는 달리 이 질문에 대해서는 답하기 어려웠다. “그럼 우리나라는요?” 하지만 이제는 가능하다. 보듬이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차를 구성하는 것은 세 가지다. 찻잎과 그것을 담아내는 그릇, 그리고 이들을 한데 아울러 다스리는 방법. 각각을 줄여 우리는 차, 찻그릇, 차법이라 부른다. 그릇은 나머지 것들과 마찬가지로 홀로 설 수 없으면서 동시에 빠질 수도 없는 존재다. 하지만 그릇은 조금 다르다. 찻그릇은 독립된 세 가지의 요소 중 하나이며 동시에 나머지를 더 높은 경지로 끌어올린 위대한 정신세계의 밑바탕이 되었다. 차가 지금의 차가 되기까지, 또한 차법이 지금의 차법이 되기까지 찻그릇은 끊임없는 진화의 주인공으로서 차의 세계를 이끌었다. 위대한 탐미주의자 육우의 시대부터 천하통일의 주역 센노리큐의 시대를 거쳐 문화 독립운동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찻그릇의 사회적 상징 변화는 곧 차문화의 흐름을 대변했다. 무라타 주코의 명언처럼 우리 인간의 비상한 근심은 비상한 물건으로만 해결될 뿐이다. 그러니까 오늘 이 시간에, 이 위치에서, 그리고 이 상황에서 우리의 차문화에 간절히 필요한 것은 시대를 담을 새로운 그릇의 탄생이다.
보듬이가 태어나기 전 우리는 이 그릇을 동다완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하지만 수년이 지나지 않아 이름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동다東茶라는 이름은 최소한 두 가지의 뜻이 있다. 하나는 우리 ‘한반도의 차’라는 뜻이고 두 번째는 ‘새로운 차’라는 뜻이다. 그릇은 시대를 담아내는 문화적 지표라는 창안자의 입장에 따라 두 의미 모두 충분히 좋은 뜻을 담고 있지만 한 가지 이유에서 더는 쓰지 못하게 되었다. 이름이 우리말이 아니고서는 아무리 좋은 의미를 가져다 붙여도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에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차와 문화》 잡지에 실린 연재의 첫 번째 편에서 나는 보듬이라는 이름의 탄생에 관해 짤막하게 말한 적이 있다. 그저 바라만 보는 것과 꽉 껴안는 완전히 다른 두 감수성의 중간에 위치한 이 따듯한 이름이 탄생하면서 동다완은 이름 뿐 아니라 자신의 몸뚱이 중 한 부위를 과감히 떼어냈다. 완성된 보듬이에는 굽이 없다.
모든 찻그릇에는 굽이 있다. 아니 이제는 ‘있었다’라고 바꿔 말해야 할 것이다. 인류학적 시각에서 굽은 더러움으로 대변되는 불편함과 나쁜 것들과의 결별에서 탄생했다. 오물, 세균으로부터 곡식과 식수를 떨어뜨려 놓기 위한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여기에 더해 더 많이 담을 수 있고 더 편하게 만들어 보급하기 위해 둥그렇게 만들어진 형태를 땅 위에 굳건히 서 있을 수 있게 했다. 보관의 혁명이었다. 찻그릇 역시 그릇이었기에 굽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에 발맞추어 그 근본 목적보다 다소 추상적인 의미가 부여되기 시작했다. 더러움과의 결별은 오물이라는 직접적인 위생상의 목적보다 나보다 더 천한 존재들과의 구분이라는 일종의 차별화 목적으로 바뀌었다. 물은 아래로 흐르지만, 그 물을 담는 그릇은 땅으로부터 위로 향했다. 그릇은 귀한 것이어서 천한 사람들이 생활용으로 쓸 수 없었다. 찻그릇은 필수품도 아니었기에 그릇 안에서도 더 귀한 그릇이었다. 굽이 상징한 위계의 수직화는 차문화에서 크게 유행했다. 굽 아래 놓는 받침과 구조물이 등장하고 좌탁은 더 높아지고 화려해졌다. 수직성이 정점에 다다르자 영향은 옆으로 퍼져 공간의 화려함에 영향을 주고 이윽고 필요 없는 것들이 쓸데없이 쌓여만 가는 사치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아오키 모쿠베이가 중국의 거대한 차문화 그리고 그것이 상징하는 기존의 부패한 차문화와의 결별을 선언하기 위해 규스를 창안한 것처럼, 센 리큐가 일본의 차문화 독립운동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며 디자인 한 라쿠처럼, 여러 설화와 주인공들의 혼란 속에서도 다시 한번 되찾은 중국 한족의 자리매김과 문화적 우월성을 상징한 자사호처럼 보듬이의 진정한 시작은 굽을 떼어 내는 것에서 출발한다.
차는 세 가지 것들이 한데 모여 만들어진 무형의 생명체다. 찻잎과 이를 우려 담는 그릇, 그리고 이들을 다루는 방식 세 가지가 모두 갖추어져야 ‘차를 안다’ 혹은 ‘차가 있다’라는 답을 내놓을 수 있다. 이 중 가운데에 놓인 그릇이란 역사적으로 언제나 시대를 담는 역할을 해 왔기에 그 어느 때보다 기괴하고 빠르며 종잡을 수 없는 이 시대 또한 해석하고 담아낼 의무가 있다. 고민하는 인간은 많되 결과로 보여주지는 못하고, 어떠한 결과든 내놓는 사회가 있되 고민의 과정이 없어 이도 저도 아닌 것에 그치는 일이 허다하다. 보듬이의 탄생은 이 모든 걱정과 우려의 과정을 밟고 건너왔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은 많다. 하지만 그 많은 것들이 모두 우리와 가까운 것은 아니다. 옆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다. 내가 나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이 얼마나 지난하고 의미 있는 일인지 고민해 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다. 고정관념에 못 박혀 분별을 흐리게 하는 무리를 떠나 아름다움을 고민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세계로 당신을 초대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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