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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어느 정취로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 고려 청자흑소락모란문완

시대를 담다 : 한국·중국·일본의 차 마시는 그릇 08  











청자흑소락모란문완, 고려, 4.7cm*10.9cm, 개인 소장







캔버스나 종이에 그린 그림이었다면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 마치 드넓은 땅 위에 작물을 깎거나 땅을 파서 그린 그림처럼 간결하고 복잡하지 않다. 이는 모란꽃 한 가지 외에는 아무것도 첨가되지 않은 주제의 선명함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마치 화폭이 좁은 그림 안에 넣고 싶은 것들을 다 넣으려 애쓴 것처럼 모란의 꽃과 줄기 선이 비좁게 채워졌다. 그래도 괜찮아 보인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평면이 아니라서 그렇다. 가득 채워도 전부가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이는 캔버스와 달라 버겁지 않다. 나머지 하나는 이 그릇이 색을 극단적으로 자제했기 때문이다. 검정에 가까운 청자의 바탕에 흰 실선만이 그릇 꾸밈의 전부다. 마치 공산품인 것처럼 단순해 보이지만 검게 입힌 안료 바깥에 흰 붓으로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서 질감도 무디지 않다. 그렇기에 보통이라면 잃어버렸을지도 모를 안정감이나 우아함도 놓치지 않았다. 물레를 안정감 있게 찼다는 생각이 든다. 전은 안정되어 있고 가슴에서 배로 떨어지는 곡선도 도전적이지 않다. 좌우로 돌려가며 바라보아도 균형감을 잃지 않은 채 그저 그렇게 떨어진 선들이 모여 또한 균형 잡힌 높이로 굽에 안착한다. 언뜻 허술하고 언뜻 기묘한 이 그릇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오늘의 주인공 고려청자흑소락모란문완(高麗靑瓷黑搔落牡丹文枕)이다.



높이 4.7cm, 입지름 10.9cm의 크기를 보면 과연 이것은 술잔인가 찻그릇인가. 크기로 보아하니 술잔에 가깝다. 사실 예로부터 찻그릇과 술잔을 나누는 기준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찻그릇은 도자기 중 으뜸으로 취급했다. 사람의 삶에서도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 가운데를 지키기 어려운 것처럼 찻그릇은 크기에서부터 크지도 작지도 않아야 했다. 깔끔하고 단정하게 마무리된 그릇이어야 하고, 너무 튀거나 너무 수수해서 눈길을 벗어나게 해서도 안 되었다.



북송 후기 자주요는 흑소락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도자기 유행을 탄생시켰다. 쉽게 설명하자면 태토 위에 백토를 입히고 이를 긁어내거나 색을 칠해 문양을 돋보이게 한 그릇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흑소락의 대부분은 앞에 ‘백지(白地)’라는 이름을 붙여 흰 바탕에 검은색이 두드러지며 마무리 선은 다시 흰색인 경우였다. 하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특이하게도 흰 바탕은 어디로 갔는지 찾아볼 수도 없고 온통 검은 바탕에 흰 실선만 보일 뿐이다. 송나라에서부터 시작된 중국도자의 전통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으려는 고려의 노력이었는지 아니면 저 그릇을 만든 이들의 뒤틀린 심사 때문이었는지는 연구된 바 없어 알 수 없으나 흥미로운 것은 사실이다. 단순함이 돋보여서 오늘날 우리의 취향에 더 맞아 보이기도 하고, 동시에 그래서 찻그릇으로 쓰일 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해가 저문다. 노을도 가라앉고 땅 위의 먼지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에 유달리 달만 밝아 세상 만물의 정취가 흑과 백으로만 보이는 때에 모란을 바라보는 한 남자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손에 저 주인공이 들려있었을 것만 같다. 그의 이름은 임춘(林椿), 고려 중기를 짧게 살다 간 천재 문인이다. 그는 열 살쯤 시를 지어 일대에 그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었고 이미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전국에 그 이름을 모르는 유생이 없을 정도로 문장이 뛰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채 성인이 되기도 전에 정중부의 무신의 난에 휘말려 가문 전체가 화를 입었고 그는 겨우 피하여 목숨만 부지하였다. 조상 대대로 물려오던 공음전도 탈취당하고 전국을 유랑하며 궁핍하게 살다 서른이 넘어 후반에 접어들 무렵 요절하였다. 그는 이인로 등과 함께 죽림고회(竹林高會)의 구성원으로 유명했는데 뛰어난 글솜씨와 더불어 군자로 살다 죽을지언정 뜻을 굽히지 않는 도리를 지키려는 심성으로도 유명했다. 임춘은 자신의 가문이 멸문에 가까운 화를 당해 홀로 목숨을 건진 것에 대해 생각한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현실에 대해 고민한다. 가슴이 답답하고 머릿속이 캄캄해지는 날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임춘은 술을 마셨다. 그의 손에 들린 흑소락모란완은 자신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그릇이었다. 백지흑소락문이 밝고 하얀 세상 속 어두운 그림자에 관한 이야기라면 그에 손에 들린 청자흑소락은 온통 깜깜한 암흑천지를 말하는 것 같았다. 그는 술 몇 모금에 가슴 한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울음을 삼켰다.



그때 그의 눈에 모란꽃이 들어왔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어두운 밤하늘 아래 핀 모란의 형상이 선명하다. 색도 보이지 않고 주변의 경치도 보이지 않지만 겹겹이 쌓여 하나의 절정을 이루는 모란꽃을 바라보며 그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야 할 길의 고단함을 생각한다. 한 번에 모든 것을 이루려는 마음은 저 무신들과 같은 무뢰배들이나 택할 일이다. 하나의 마음을 먹고 그다음의 마음을 먹어 어제를 오늘처럼, 오늘을 내일처럼 살아가면 군자의 뜻을 이루리라. 그는 완에 넘치던 술을 땅에 쏟아버린다. 그리고 자세를 곧게 펴고 옷자락을 매무시한 뒤 그 그릇에 차를 달여 담는다. 곧게 편 허리에서 전과 다른 기운이 솟아오른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잘 이해할 수 없지만, 어느 지인에게 이런 멋진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떤 근심은 술로 해결할 수 있지만 어떤 근심은 차로 해결할 수 있다’고. 그날 그 밤, 임춘의 근심은 차를 필요로 하였으리라.



매년 이맘때 즈음 동다헌 앞마당에는 모란꽃이 핀다. 수십 겹으로 서로 어깨를 빗겨 기대며 피어나는 모란은 우아하고 화려해 과연 이 계절의 여왕이라는 생각을 한다. 줄기와 잎사귀는 넉넉하면서도 날카로움을 잊지 않는 기개가 느껴진다. 이 봄에, 모두가 낱낱이 피어나며 태어나기 바쁜 이 시기에, 드물게도 하나의 완성을 보여주는 모란꽃은 분명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불어 넣었을 것이다. 문양으로 오래도록 사랑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임춘은 흑소락완의 문양에서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생각했다. 색은 또 어떤가. 청자는 무릇 푸른빛에서 출발한다. 푸르름은 맑고 선명함을 뜻하며 청백리로 살아가야 할 유생의 심성을 상징한다. 그 푸르름이 또한 겹치고 겹치고 또 겹쳐지면 짙고 짙은 흑과 같아지는 법이다. 그러니 이 흑소락완의 흑은 어둠이나 밤이 아니고 선비의 굳은 결심과 고단함을 이겨내고 성장하려는 인간의 마음인 셈이다. 임춘은 마흔이 되기 전에 요절했지만, 그 마음가짐을 잊지 않고 큰아들들은 모두 재상의 반열에 올랐다.




평상에 비스듬히 누워 문득 나를 잊어버렸네

베갯머리에 바람 불어와 낮잠 절로 깨어나네

꿈속에서도 이 몸은 머물 데가 없었네

하늘과 땅이 모두 한 채의 큰 정亭이니

빈 누각에서 꿈을 깨니 해는 지려고 하는데

흐릿한 두 눈으로 먼 산봉우리를 바라본다

누가 알까 숨어 사는 사람의 한가한 멋을

봄에 자는 잠은 고관이 받는 봉급과 맞먹는다


「다점주수茶店晝睡, 다점에서 낮잠을 자다가」




청자흑소락모란문완은 언뜻 보기에 수수한 맛이 도드라져 수집의 가치가 커 보이지 않는다. 미적으로 완벽한 것도 아니고 실험정신이 눈에 띄지도 않는다. 크기는 손바닥 안에 올려놓고 감상할 만하니 박물관에서 마주친다면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스쳐 지나가 버릴 법도 하다. 하지만 이 묘한 색과 문양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정취를 떠올려보라. 달밤에 은은하게 빛나는 모란을 상상하면 왠지 그 주변을 서성이는 그리운 어느 한 사람 떠오르지 않으려나. 예술이란 수치와 기록에서 모든 가치가 판가름 나지 않는다. 좋은 예술이란 감상하고자 하는 이를 끌어당길 그만의 상상력을 품고 있어야 한다. 매력적인 찻그릇이라면 단지 외형의 아름다움이나 맛을 돋우어 주는 것 이상의 자질이 있어야 한다. 우리를 꿈꾸게 해야 하고, 더 멋진 것을 상상하도록 우리를 특정한 어느 곳, 어느 시간의 정취로 이끌어 주어야 한다. 당신은 그렇다면 이 그릇에 무엇을 담아 마시고자 하는가. 이 그릇에서 무엇을 떠올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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