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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RollingTea 구르다

꽃잎 모양 다완, 당나라 백자와 탐미주의자 육우


시대를 담다 : 한국·중국·일본의 차 마시는 그릇 03 _ 꽃잎 모양 다완, 당나라 백자와 탐미주의자 육우(陸羽)


 

꽃잎 모양 백자 다완, 이 글의 주인공. 마이클 설리번의 『중국미술사』 138페이지 수록.




마이클 설리번의 『중국미술사』에는 당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백자 그릇 한 점이 등장한다. 은은한 유백색의 몸통 아래로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적당한 높이의 굽이 넉넉하고, 완만한 경사의 면은 솟아오르기보다는 흘러 떨어지는 듯 우아하다. 꼭대기의 전은 그저 편평하게 둘러치지 않고 연꽃잎 다섯 장이 서로 모인 듯 벌어진 듯 아리송하게 붙어서 심심함을 달래준다. 이 그릇에는 아무런 문양도 무늬도 없다. 그래서 연꽃무늬백자완이 아니라 연꽃백자완이라 부르면 좋겠다. 무엇보다 이 그릇은 음식을 담던 것도, 술을 따르던 그릇도 아니다. 면이 너무 납작하지도, 벽이 너무 솟아오르지도 않은 이 그릇은 찻그릇이었다.  

설리번은 이 그릇 사진에 ‘꽃잎 모양의 대접(碗). 월주요(越州窯). 회녹유(灰綠釉)를 입힌 석기. 당대. 지름 19cm. 런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이라고 설명을 달아놓았다. 월주요는 중국 절강성(浙江省)의 상우(上虞), 여요(余姚), 영파(寧波) 등지에 있는 도요지(陶窯地)이다. 그 지역이 옛 월주(越州)에 속해 월주요라 부른다. 동한 대(東漢代)부터 남송 대(南宋代)까지 청자 제작지로 유명했고, 당나라 중기부터 북송 대까지 가장 번성했다. 당나라 시인 육우는 월주요의 청자와 형주요(邢州窯)의 백자를 차 마시는 그릇의 으뜸으로 꼽았다. 월주요의 그릇을 옥과 얼음에 비유하고, 형주요의 그릇을 눈과 은에 비유하며 월주요의 그릇을 조금 더 나은 것으로 평가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백자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당 대 훨씬 이전부터지만, 찻그릇으로 사용했을 법한 형태의 백자는 당나라 때부터 나타난다. 당 대에 만들어졌고, 유물로 남아 있어 오늘날 확인할 수 있는 백자 다완 대부분은 민무늬에 원형의 단순한 형태다. 회녹유를 입혀 구운 이 월주요 백자 다완의 독특한 외형은 같은 시기의 여느 백자와도 다르다. 설리번은 『중국미술사』를 1973년에 처음 출간했고, 그에 따르면 이 그릇은 영국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그 박물관의 소장목록에는 이 독특한 꽃잎 모양 백자 다완은 없고, 당대 많이 생산되었던 민무늬 백자 다완만 남아있다.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소장. 당나라 때 만들어진 백자 다완. 주인공과 비슷한 우유빛을 띄는 백자지만, 외형은 단순한 원형이다.


오늘의 주인공, 꽃잎 모양 백자완을 바라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납작한 형태를 더욱 굳건하고 안정감 있게 지지해주는 넓은 바닥이다. 그릇의 전이 넓게 벌어졌는데도 불안해 뵈지 않는 것은 전체 크기에 비교해 넓은 바닥 덕분이다. 넓은 바닥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높이로 일어선 굽은 현대 도자에 비교하면 높아 보일 수 있지만, 이전 시대에 비교해서는 낮아졌다. 일반적으로 굽의 넓이와 높이, 모양은 시대상을 반영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넓은 바닥은 시대의 넉넉함과 평화로움을 말해준다.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긴장감을 잃지 않았고, 너그러우면서도 위엄이 서린 듯한 선이 동시대 제일의 세계국가였던 당나라의 풍요와 생동감을 설명한다.  

여기에 한 가지 특징을 더할 수 있다. 세련미다. 박물관에 가서 전시물을 시대순으로 둘러보다 보면 정확히 어느 시대, 어느 지점인지는 전문가가 아니라면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분명 어느 진열대에서부터인가 고대의 원시성이 흠뻑 묻어나던 차례에서 완성도가 갖추어져 세련된 맛을 느끼게 하는 차례로 넘어왔다는 느낌을 받는다. 흔히 우리는 오늘의 관점과 기준에서 옛 작품을 보곤 한다. 그러다 보니 작품과 오늘 사이의 시간 거리와 기술 완성도의 거리가 반비례할수록 놀라게 된다. 백제 시대의 왕관에 찬사를 보내는 것도 동시대에 그 정도 완성도와 세련미를 갖춘 작품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이 백자완이 그러하다. 송나라 중기부터 원나라 즈음에서야 등장할 법한 매끈한 곡선의 면과 각 곡선의 면이 만나는 지점의 조그마한 계곡을 처리하는 솜씨가 놀랍다. 천 년이 훨씬 넘은 이 작품은 계곡면을 마치 복숭아 같은 아기의 엉덩이골처럼 매끈하고도 입체감 있게 연결했다. 송나라 시대의 다완처럼 연꽃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굽이치는 곡선이 아니라, 매끄럽게 둘러친 둥그런 원형의 선 위에 꽃잎이 하나씩 떨어져 살짝 가라앉은 듯 곡선이 가볍게 흘러가 다시 연결되기를 반복한다.



거기에 더해 이 그릇은 동시대에서 흔히 보이는 그릇 꾸미는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 당시에는 우리가 자연에서 볼 수 있거나 상상으로 존재하는 수많은 것들이 그대로 새겨지곤 했다. 용의 얼굴이 각인되고, 독수리의 눈매와 부리가 강조된 물병이 있었다. 황소의 뒷다리와 새의 깃털이 새겨진 항아리가 흔했다. 하지만 이 주인공을 만든 도공은 연꽃잎을 그릇의 면에 새기거나 그려 넣지 않았다. 그저 그릇을 보면 연꽃이 떠오르도록 만들었을 뿐이다. 이전까지의 사람들에게 예술품은 평범한 사람이 시도해 볼 생각도 못 할 만큼 특별한 기예로 장식된 것이었다. 반면 이 그릇을 만든 장인은 무늬도, 장식도, 형태도 단순화시켰으되 자신이 무엇을 만들었는지 모두가 알 수 있게 했다. 심지어 전자보다 더 세련되어 보이게끔 말이다. 세상에 흔한 것을 흔하지 않게 설명하는 예술의 또 다른 한 가지 방식이 아닐까.



이 그릇을 더욱 세련되게 만드는 데는 색깔도 한몫한다. 여러 색을 칠하는 대신 은은한 우윳빛을 띄는 흰색 한 가지만 사용했다. 실제로 백자의 색을 설명할 때 유백(乳白), 빙백(氷白), 설백(雪白) 등의 수식어를 사용한다. 이 그릇은 육우가 주장한 월주요의 특징인 옥과 얼음에 가깝기보다는 형주요의 은과 눈에 가까운 유백 혹은 설백에 가깝다. 사진 속 주인공을 실제로 볼 수는 없지만, 이 백자 다완의 색은 누가 보아도 얼음처럼 투명하고 맑은 빙백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당 대 월주요에서 만들어진 다완.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꽃잎을 연상시키는 외형. 청자와 올리브 색 황유 도자기는 월주요를 대표한다.




설리번에 의하면 형주요 터에서는 육우의 말과 달리 순백자 관련한 유물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그보다 북쪽에 있던 임성현의 네 가마터에서 육우가 형주요에 관해 서술하는 것과 일치하는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중국 전체로 놓고 보면 북방 지역인 것은 맞지만 형주요라고 특정하는 육우의 주장은 틀렸다는 말이 된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보면 월주요라고 해서 우수한 청자나 황색 자기만을 만들었다는 통념 또한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육우가 남긴 기록이 엄밀하게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어디까지나 우리는 그가 역사학자가 아닌 시인이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주목할 것은 차와 차를 담아 마시는 그릇에 관한 육우의 태도다.   당나라 때 차문화는 융성했던 불교문화에 힘입어 번성했다. 당연히 찻그릇의 수요도 증가했을 것이다. 당나라를 대표하는 그릇은 물론 당삼채다. 그런데 육우는 왜 시대를 대표하는 당삼채가 아닌 백자나 청자 찻그릇을 으뜸으로 평가했던 것일까. 화려한 색이 한 데 어우러진 당삼채의 매력은 차를 마실 때만큼은 빛을 발하지 못했던 것일까.  

이 시대 수도 장안에는 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살았다. 그로부터 오백 년은 더 지난 이후 유럽 최대의 도시였던 스페인 세비야의 인구가 채 이십만이 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해 보면 얼마나 놀라운 일이었는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그 화려함, 자유로움, 당당함, 분주함이 당삼채 안에 녹아 있다. 하지만 당삼채의 이러한 특징들은 차를 즐기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기 쉽다. 짙은 색 그릇에 담긴 차는 탕색을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청자나 백자는 우려낸 차의 색을 감상하는 데 적합하다. 은은한 바탕색의 청자나 백자는 단순히 입으로 마시는 차에서 눈으로 감상하는 차를 즐기게끔 돕는다.  

청자나 백자는 당시에 제작은 되었으되 만들기 까다로운 탓에 흔한 그릇은 아니었다. 따라서 일상에서 이러저러한 용도로 쓰이기는 어려웠다. 우리가 항상 특별한 손님에게 특별한 상을 준비하듯 백자나 청자 역시 특별한 역할을 맡았을 것이다.



육우는 백자나 청자야말로 차라는 특별한 음식에 어울릴 법한 그릇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차는 음식이긴 하지만, 그저 음식이기만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앙드레 지드는 책을 마음의 양식이라 표현했는데, 동양 문화권에서는 책뿐만이 아니라 차가 그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특히 당나라 선종 불교 승려들은 차를 참선에 활용했는데, 차는 들뜬 기분을 가라앉히고 내면을 찬찬히 바라보게끔 돕는 특별한 음료였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차를 제대로 마시려면, 아름답되 너무 화려하지 않은 그릇을 사용해야 한다고 육우는 말하고 있다.



모두가 좇는 것에서 벗어나 아름다움에 관한 자신의 새 기준을 세웠다는 점에서 연꽃백자완과 육우는 서로 닮았다. 당신은 어떠한가. 차가 단순히 갈증을 가라앉히는 음료 이상의 무언가라고 생각하는가. 차를 마시는 것이 유행, 혹은 있어 보이는 취미 생활에 그칠 리 없다고 믿는가. 당신도 저 탐미주의자 육우처럼 차는 아름다운 것이라 여기는가. 그렇다면 오늘의 찻자리를 위해 당신이 직접 고른 아름다운 것들을 나열해 보라.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감상하는 데 전문가의 평가나 역사적인 배경에 과하게 기대곤 한다. 누군가 정해준 기준을 공식처럼 대입하기 전에 우선 그릇 자체의 형태와 색과 조화로움을 찬찬히 바라보자. 스스로 감상하면서 역사적 사실들을 되짚어 보다 보면 그 감상의 깊이가 깊어질 것이고 그것이 곧바로 내가 손에 쥔 아름다움이 될 것이다. 그때 당신의 보드라운 손 위에 백자 찻그릇 하나 쥐어져 있다면 당신의 차 세계는 이미 소만(小滿: 점점 차오른다)에 접어든 것이 아닐까.








참고한 책
- 정동주, 『다관에 담긴 한중일의 차 문화사』, 한길사, 2008, pp. 89~108.
- 마이클 설리번 지음, 한성희, 최성은 옮김, 『중국미술사』, 1999, pp.136~140.
- 한정희 외 공저,  『동양미술사:상권/중국』, 2007, pp. 128~131. 
 



당나라 도자기를 두루 감상할 수 있는 곳 http://www.comuseum.com/ceramics/t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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