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담다 : 한국·중국·일본의 차 마시는 그릇 07
어떻게 만들었는지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둥그렇게 물레를 돌렸다가 서서히 힘을 빼면서 비틀었을까. 아니다. 그러기에는 세 번에 걸쳐 난 층이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세 층을 각각 만들었다가 잘라 서로 이어 붙였을까. 아니다. 그러기에는 좌우로 규칙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멋대로 움직이는 선을 이어 붙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이것뿐이다. 물레로 빚어 올린 것을 중력이 내려 끌면 개의치 않고 주물러 꺾고 깎고 비튼 것이다. 전의 둘레를 따라 크게 네 번 둥그스름하게 꺾이고 두 어 번 더 미세하게 흔들린 선을 눈으로 좇다 보면 마치 자동차 경주 트랙 같아 보여 묘한 속도감과 생동감이 선다. 그릇의 전의 아래로 입술이 툭 튀어나와 어느 방향으로 돌려 잡아 차를 마셔도 괜찮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지만 반대로 어느 쪽을 잡아 마셔야 상대에게 기가 죽지 않을까 묘하게 신경 쓰이게 만드는 심술궂음이 있다. 가슴께에 가로로 길게 잡힌 넓은 주름이 두 번, 그리고 그 아래로 완만하게 내려앉은 중년 남자의 엉덩이나 뱃살 같은 푸짐함이 안정감을 준다. 겉면 가득 흐르는 물결무늬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고 안쪽 면으로는 짙은 검정과 초록의 중간색이 빈틈없이 채워졌다. 산과 들 어디에 앉아 마셔도 자연스러울 법한 것이 미덕이었던 시대에 단정함과 거리가 먼 새로운 그릇이 하나 탄생했다. 오늘의 주인공은 파격의 시대 그 한 가운데에서 태어난 탕아다.
사스케*는 불타오르는 혼노지(本能寺)의 불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렁이는 불꽃 아래서 자신의 주군이 불타 죽었음을 확신했다. 그리고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음을 직감했다. 천하는 혼노지에서 부하에게 배신당해 불타 죽은 주인의 복수전을 내세운 히데요시에게 넘어갔다. 사스케는 자신의 아명(兒名)을 버리고 시게나리라는 사무라이의 이름으로 히데요시의 곁에서 싸웠다. 허나 시게나리는 칼싸움보다는 말놀이를 좋아했다. 그는 히데요시의 곁에서 충실한 조언자의 역할을 맡았다. 그는 혼노지의 거친 불길이 거센 풍랑을 만나 서서히 꺼져 감을 느꼈다. 히데요시의 곁에는 센노 리큐가 있었고 세상의 존경과 민심이 히데요시를 향했다. 불꽃이 되살아날 걱정이 사라지자 히데요시는 천하를 통일했다. 시게나리는 그 공적을 인정받아 오리베노카미의 관위를 서임받았다. 그때부터 시게나리는 후루타 오리베(古田織部, ふるた おりべ)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오리베는 다시 한번 기회를 엿보았다. 바람이 거세다 한들 밀려오는 파도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동쪽에서 밀려오는 이에야스의 물길이 다시 한번 교토를 휩쓸었을 때 오리베는 그 파도에 올라 천하를 오시하는 다이묘가 되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권력자이자 세상에서 제일가는 차인이 되었을 때 오리베는 자결했다.
오리베는 센노 리큐의 일곱 제자(利休七哲) 중 으뜸이었다. 히데요시는 천하통일 이후 센노 리큐의 정치적 영향력을 걱정하여 자결을 명령했다. 그 이후 오리베는 스승의 지위를 이어 받아 제일의 차인이 되었다. 오리베는 스승을 존경해 마지않은 인물이었다. 그는 센노 리큐의 축출령이 떨어진 때에도 모든 이들이 히데요시의 분노를 무서워 몸 사릴 때 스승의 송별식을 열었다. 오리베는 스승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실천에 옮긴 사람으로 유명했다. 특히 스승으로부터 이어진 차인으로서의 역할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던 인물이었다. 스승과 마찬가지로 도공들을 직접 고용하고 가르치며 차인이 마실 찻그릇을 직접 디자인하고 연구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차인이 쓰는 모든 도구는 차인의 눈길과 손길이 직접 닿아야 하는 법이다.
여기까지가 충실하고 곧은 성미의 오리베에 관한 이야기라면, 다음으로는 재미있고 매력적인 오리베에 관한 이야기다.
오리베는 스승 센노 리큐를 존경했지만 스승의 모든 것을 그대로 따르는 인물은 아니었다. 오리베의 눈은 세상의 변화를 읽었다. 센노 리큐의 세상은 전국시대의 혼란과 부패, 사치와 허영의 일그러짐을 균형과 자연스러움으로 다스릴 필요가 있었다. 오리베는 다음 이야기를 준비할 할 필요를 느꼈던 것인지도 모른다. 오리베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종종 이런 말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의 스승은 언제나 우리에게 사람들과 다른 것을 하라고 말하였다.” 그는 센노 리큐가 차숟가락茶匙을 차통의 바깥쪽에 둘 때 안쪽에 두었던 사람이다. 아무도 카고노하나이레(籠の花入れ)**를 할 때 바닥에 얇은 판자를 펴는 일에 의구심을 품지 않았는데, 홀로 판자를 없애고 바닥 위에 꽃병을 놓았던 사람이다. 오리베는 무사가 아님에 무사를 다스려야 했던 스승의 예술을 단아함과 절제, 진지함을 위주로 하는 무사의 예술이라 불렀고 이를 갑(코우)이라 했다. 유머와 일탈, 재미를 위주로 하는 본인의 예술은 을(오츠)이라 불렀다. 스승이 실용성(わたり)과 심미성(けい)의 비중을 6:4로 맞추었다면 오리베는 이를 4:6으로 추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아름다운 찻그릇은 도자기의 형식 안에서 가장 실험적이며 동시에 가장 완성도가 높은 것에 속했다. 변주는 규칙 안에서 허용되었다. 하지만 오리베는 그 미의식을 깨트렸다. 나는 그릇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는 사람 다섯에게 오늘의 주인공이 대체 어떤 그릇일까 물어보았다. 귀인의 용변을 담던 그릇 한 표, 손 씻는 그릇 한 표, 먹물그릇 한 표, 개밥그릇 두 표. 개밥그릇의 승리다. 찻그릇이라고는 상상할 줄 모르는 이들이니 그 크기도 가늠할 수 없었던 까닭이었을 것이다. 사실 이 결과에 대해 오리베의 입장을 들어볼 수는 없으나 그는 분명 좋아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새로운 것은 새로운 지평을 여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생소함이 불편함을 불러일으키고 불편함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오리베가 일으킨 바람은 거셌다. 센노 리큐 사후 오리베가 주도한 차의 세계에서 그는 삶에 녹아드는 산들바람 같은 미의식을 원치 않았다. 모든 것들이 응당 있어야 할 곳에 있고 그 가운데 어디에 놓아도 자연스러운 것이 차였다. 마치 잔잔히 일렁이며 반복되는 봄날의 파도 같았던 차의 세계에 오리베는 폭풍을 일으켰다. 바람은 파도를 크게 일렁이게 했고 이윽고 파도는 불규칙하게 그리고 큰 높낮이로 세상과 부딪혔다. 후대가 평가하는 하쵸노우츠쿠시사破調の美しさ라는 말은 이를 잘 설명한다. 일정하게 반복되는 리듬을 깬다는 것은 바다 위에 일렁이는 파도가 방파제에 부딪힐 때 일어나는 포말의 불규칙과 역동적인 힘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보며 멋지다 혹은 두렵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어느쪽이든 간에 멍하니 넋을 놓고 바라보기에 좋은 것은 분명하다.
오늘의 주인공을 바라보며 당신이 떠올릴 것들에 관해 과연 우리가 예측이나 가능할 것인가. 《차의 책》의 저자이자 새로운 낱말로 새로운 형식의 아름다움을 설명하려고 했던 차인 오카쿠라 덴신이 거창하게 불완전의 아름다움이라 표현한 것이 생각난다. 히사마쓰 신이치가 《차의 정신》에서 아름다움이란 완전에 대한 부정이라 말한 것도 떠오른다. 오리베의 파격은 인간사에 대한 염증에서 비롯한 소산이라 불러도 완전히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을 떠올리고 생각하던 간에 주인공의 옆구리에서부터 살살 불어나가는 저 바람 혹은 물결의 문양이 온 세상을 뒤집고 상식을 수정하고, 안목을 넓혔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놀랍지 않은가. 누군가에게는 개밥그릇이 누군가에게는 최고로 아름다운 찻그릇이 된다는 사실이.
*사스케는 후루타 오리베의 어렸을 적 이름. ** 카고노하나이레는 전점(点前, 말차를 다려내는 방식 중 하나)를 할 때 주변에 꽃을 화병에 꽂아 전시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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