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원청규차법의미학 16
令行者以箱複托之
행자는 겹 봉투에 넣어 밀봉한 초대장을 쟁반에 담아서 받든다.
선원청규 세 번째 차법은 수행자가 거처하는 건물에서 함께 사는 큰스님을 비롯한 대중을 초대하여 모시고 펴는 ‘승당내전점(僧堂內煎點)’이다.
“주지와 총무는 차회를 알리는 방(牓)을 쓰고, 수좌는 초대장(用狀)을 쓰는데, 그 초대장은 겹 봉투에 넣고 밀봉한다. 행자로 하여금 쟁반에다 초대장을 담아 받들게 하여 큰스님께 올린다. 큰스님 모시는 시자, 감원, 수좌는 큰스님께 초대장을 보여드린다. 승낙하시면 행자는 인사드린 뒤 돌아와서 알린다. 그런 다음 절 대문에 차회를 알리는 방을 내다 붙인다.”
‘箱複’은 ‘겹으로 밀봉하다, 겹 봉투에 넣는다’라는 뜻이다. 선원청규 차법에서 초대장을 겹 봉투에 넣어 어른께 올리는 일은 겸손, 존경, 귀의를 상징한다.
한 지붕 밑에서 같이 먹고 수행하고 잠자는 일상이 이뤄지지만, 차회에 모실 때만큼은 큰스님께 직접 말씀드리지 않는다. 초대장을 만들고 정중한 예의를 갖춰서 전한다. 이때 초대장을 넣는 봉투는 겹으로 만든다. 속 봉투는 엷고 연한 색의 종이로 하고, 겉봉은 속봉투보다 두껍고 밝은 색종이로 접어 만든다. 초대장이 든 속 봉투는 밀봉하지 않아도 되지만 겉봉은 반드시 밀봉해야 한다. 큰스님께서 초대장을 받아 보시고 참석한다는 뜻을 내비친 뒤에 대중에게 차회를 알리는 방을 내다 붙인다. ‘밀봉’은 큰스님 승낙이 있기 전까지는 비밀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초대장을 겹으로 된 봉투에 넣고 밀봉하는 일은 큰스님을 존경하는 마음을 작지만 섬세한 절차와 형식으로 표현한다. 살아있는 사람이지만 부처님처럼 믿고 따르겠다는 제자들의 경건한 수행 철학을 담은 것이다. 차는 곧 정신, 귀의를 뜻하기 때문이다.
겹 봉투의 미학은 일본 차 문화에도 그대로 전해졌다. 일본인이 이런저런 경조사에 사용하는 다양한 겹 봉투는 이러한 역사적 뿌리를 가지고 있다.
정동주
Mark Rothko, Untitled c.1950–2
Oil paint on canvas
1900 x 1011 x 35 mm
Tate
Presented by the Mark Rothko Foundation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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