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원청규 차법의 미학 55
若通方商量旣是借寮與人煎點自合託故廻避
약통방상량기시차료여인전점자급탁고회피
不可自居主位令前人拜禮諸事不便
불가자거주위영전인배례제사불편
만일 서로 의논하여 요사를 빌려주고 찻자리를 펴도록 했으면, (요사 주인은) 스스로 (요사의 사용을) 맡긴 것이므로 주인 자리를 비워두어야 한다. 스스로 주인 자리에 앉아서, 요사를 빌리고 차를 끓이는 사람이 (존경하는 어른에 대해) 예배드리고 차회 진행하는 일을 불편하게 하면 안 된다.
通方 세상 이치에 밝다. 융통성이 있다.
商量 일을 논의하다. 잘 생각하여 헤아리다.
通方商量 서로 의논하여 결정하다.
한 칸짜리 흙집이라도 마련할 수 있다면 그곳에서 문중 어른을 예배하고 싶지만, 참선 수행하는 젊은 수행자는 수행에만도 시간이 모자라니 달리 무슨 거처를 마련할 수 있을까. 이런 수행자의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요사 관리인은 차마 해서는 안 되는 짓으로 찻자리의 신성함을 욕되게 한다.
참으로 딱한 경우다. 문중 어른을 찻자리에 모시고 이승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존경의 마음을 전하려 하는 아랫사람이 겪는 아픔이 짐작된다. 어차피 그 관리인도 요사에 잠시 머무르는 나그네일 뿐인데, 잠시 손에 쥔 권리로 으스댄다. 무려 천이백여 년 전 절집에서 일어나곤 하던 일이 낯설지 않다.
무소유의 법문을 따르기보다는, 서푼도 안 되는 소유의 탐욕을 함부로 휘두르는 이의 모습에서 지금의 우리를 본다. 더 많이 가지려 하고, 가진 것을 으스대려 하며, 손에 쥔 것이 사실은 찰나 흩어지고 마는 허상임을 알지 못하는 이는 가까이든 멀리든, 수행자 무리에마저도 섞여 있다. 달리 보면, 누구라도 쉬이 욕심에 물들고 옹졸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선원청규 차법은 작은 찻자리를 준비하는 동안 맞닥뜨릴 수 있는 세세한 일에서조차 이 모든 과정이 수행의 일부임을 엄중히 일깨운다. 찻자리는 수행자의 내면을 청정히 돌보고 무소유의 이치를 깨우치는 주옥의 소우주다.
정 동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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