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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RollingTea 구르다

새로운 차, 東茶


동장윤다 차살림법 : 찻자리 위로 이야기를 펼치다 : 2부_3장











옛날 옛적 먼 옛날부터 중국에는 차나무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도 차나무를 알았다. 그들은 이 식물을 식문화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였고, 지금의 광둥 지역 사람들은 차(cha)라고 불렀다. 복건 지역에서는 테(te)라고 불렀고, 운남지역은 레(re)라고 말했다. 윈난의 특산품인 보이차는 그들의 언어로 푸얼(Pu-er)이라 하는데, 본래 푸레(pu-re)에서 변한 것이다. 푸(Pu)란 떡을 의미하고, 레(re)란 차나무 잎을 의미했다. 차나무는 나물로 오랜 세월 사랑받았고, 찧어 그 즙을 약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를 음용하는 방식도 다양해져 우리가 아는 차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즈음에도 차(tea)는 차(cha)였다. 동다살림법을 말할 때처럼 차를 ‘다’라는 글자로도 부르기 시작한 것은 이보다도 조금 더 뒤의 일이다.


파니니(panini)가 고전 산스크리트어 문법을 만들고 그 알파벳을 데바나가리(devanagari) 문자라 칭했다. 두 단어의 합성어로 ‘영원히 사는 이’들이 사용하는 ‘도시의 문자’라는 이 글자에서 ‘다’의 기원이 등장한다. ‘다’는 두 가지 방식으로 부를 수 있다. 로마자 알파벳의 표기 구분 방식에 의하면 그렇다. 하나는 ‘dha’이고, 하나는 ‘da’이다. 이는 총 네 개다. 그중에서 차와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글자는 두 가지로 ‘ढ’와 ‘ड’다. 하지만 전자가 더 직접적이고 분명한 의미로 사용된다. 산스크리트어 사전에서 ‘ढ’는 알가를 의미한다. 이는 초기에 깨끗한 물을 의미했고, 조금 더 나아가 물에 향기 나는 식물을 우려 바치는 신성한 물을 상징하게 되었다. 현대에 와서는 영어의 tea를 직역하는 글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저 그런 평범한 글자와는 조금 달랐기 때문이었는지 이 글자는 인도에서 중국으로 본무대를 옮긴 불교의 영역에서 확고한 위치를 지키게 되었다. 중국에서 편찬된 온갖 경전에는 이 다(ढ)자의 위대함을 칭송하고 가지기를 소망하는 기록들이 남아 있다. 《대일경》, 《대지도론》, 《대품반야경》, 《화엄경》 등등 그 가짓수가 적지 않다. 중국 불교는 이 글자가 법의 마지막 글자 혹은 해탈을 위해 열어야 하는 문의 마지막 열쇠 정도로 해석한다. 물론 여기에서 법이란 석가모니가 윤회의 고리를 끊고 육신을 떠나기 전까지 제자들에게 남긴 말씀들을 의미한다. 그는 울며 슬퍼하는 제자들에게 울며 슬퍼할 일이 아니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실체가 없어져 무서울지라도 의지할 것은 스러지는 육신이 아니라 남긴 법과 율법이면 족하다고 위로했다. 그렇다면 저 글자란 몹시 무겁고 어려운 의미일 것이다. 깨달은 자에게는 이보다 더 쉽고 경쾌한 것이 아닐지 몰라도, 윤회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대중들에게 저 글자는 아득히 멀어서 닿기 어려운 곳에 있었다.


사람들은 부처에게 공양 올릴 때 향기 나는 물을 바쳤다. 하지만 사람들의 일이란 것이 늘 그렇듯 본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시간이 지나면서 물보다는 향기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화려한 꽃을 갈아서 넣거나, 통째로 띄우거나, 향을 통째로 넣기도 했다. 백장 선사는 그 고리를 끊어버리고 차 한 잔을 올리는 것으로 정리했다. 차는 그 자체로 다섯 가지 맛을 가지고 있고, 다른 어떤 것을 넣지 않아도 그 자체로 온전한 식물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으레 귀할수록 화려하고 복잡해서 쉬이 손댈 수 없어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곤 하지만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바꿈으로써 역설적으로 더 멋지고 온전하고 귀해질 수 있다는 가르침을 이때 배웠다. 물론 사람의 일이란 것이 늘 그렇듯이 다시 무너지고 헝클어졌지만 말이다. 차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이를 아름다움의 종교로 생각했던 일본의 탐미주의자들이 후에 이 부분을 재해석하며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중국 한자에서 ‘차’를 ‘다’로 받아들이게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불교의 심오한 의미와 부처에게 바치는 하나의 공양수, 그리고 많은 이들이 사랑해서 늘 곁에 두는 음료, 이 세 가지가 한데 뭉쳐 ‘다(茶)’가 만들어졌다. 《가산불교대사림》에서는 이 ‘다’자를 들어 ‘불교의 정신적 고양의 단계’를 의미한다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이 글자를 탐구하고 쫓다 보면 이것이 곧 멸예경계지음(滅穢境界之音)임을 알게 된다. ‘다’란 더럽고 힘든 예토인 이승의 경계를 벗어나게 해 주는 힘을 지닌 소리다. 그리고 선각자들은 이 소리 안에 차를 넣어 우려냈다. 그러니 차(tea)를 의미할 때 우리는 차(cha)와 다(dha)를 구분해 사용해야 한다.


즐기는 음료이며 취미로서의 즐거움이 차(cha)라면 이를 통해 정신적으로 혹은 미적으로 고양된 상태를 만족시킬 수 있도록 자신을 독려해 나아가는 수행의 차원이 다(dha)다. 그러니 보이차든 홍차든 우롱차든 즐겁게 마시는 음료 그 자체를 뜻하고자 한다면 차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하지만 차란 찻잎으로 만든 음료, 이를 가능하게 하는 도구,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는 방식 세 가지를 합한 뜻이기에 다(dha)란 일차원적인 형태와 즐거움을 넘어설 필요가 있는 이들에게 권하는 조금 다른 차원의 재미와 즐거움이 될 것이다. 동다(dha)살림법은 이러한 부분에서 당신에게 적합한 기준과 과정을 보여줄 것이다. 저 머나먼 경계의 지점까지 도착했을 때 이를 넘어설지 넘지 않을지는 오롯이 당신의 선택이겠지만 선각자들이 그러했고, 많은 탐미주의자가 그 길을 보여주었듯이 이 새로운(東) 길(dha-茶)은 꽤 든든한 당신 삶의 지지자가 되어 줄 것이다.











정 다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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