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茶事茶難)한 하루 3화.
시인 강세화는 입춘에 관해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겨울 가뭄이 너무 오래다
오늘이 하마 입춘절(立春節)인데
어린 가지에는 단물이나 오르는지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고
전하는 소문마다 살만한 건 그예 없고
속앓이 풀릴 기미는 감감하고
바람도 가뭄 타서 뒷길로 분다
오늘이 하마 입춘절(立春節)인데
겨울 가뭄이 너무 오래다
-강세화 <입춘>
입춘에 관한 시를 찾아보면 고금(古今)을 막론하고 대부분 두어 가지 종류로 나뉜다. 추위가 누그러지고 새순이 돋아나기를 바라는 희망을 노래하거나, 반대로 아직은 때가 덜 익었으되 멀리 있는 것은 아니니 조금만 더 참고 견디자는 인내에 관한 이야기거나. 하지만 이 시는 조금 달라 인상에 남았던 기억이 있다. 시의 후위를 보면 가뭄이 길어져 걱정이 태산인 듯 해 보여도 사실 화자는 근심 보다 지루함과 싸우는 중이다. 지루함이 길어지면 도사가 아닌 이상 초조해지는 법이다. 만사가 편하고 일상이 도담스러우려면 올 것은 제때에 오고, 보내야 할 것은 때에 맞춰 보내주어야 한다. 다 알면서 우리가 못하는 것들 아닌가. 때가 입춘이면 무엇하나. 내가 봄 맞을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말이다. 사실 우리들 일상은 희망과 절망 그 사이 무엇도 아닌 애매하고 어정쩡한 것들로 뒤범벅 아니었던가. 되면 좋고, 아니라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라고.
아침 차를 마시다가 툭 하는 소리에 돌아보니 동백 몽우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손바닥 만 한 조그만 화분에 재작년 옮겨 심은 동백나무였다. 이 녀석은 두 해 연속으로 몽우리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새끼손가락 보다 얇은 몸뚱이로 제 두께의 서너 배는 될 법 한 뭉툭하고 둥그런 몽우리를 기어이 매달아 내곤 했다. 우리 내외는 그 모습이 기특하고 안쓰러워 따듯한 곳으로 옮겨 빨리 꽃을 틔워내기를 응원했다. 그러나 웬걸. 몽우리 볼록한 입을 여는가 싶더니 결국 두 해간 연이어 꽃 피워내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키 작은 동백의 두 해 간 처절했던 자기와의 싸움의 흔적이다. 그러나 웬걸. 잎이라면 고개가 푹 하고 꺾이는 모습이 안쓰러웠을 텐데 나는 오히려 동백의 기개는 만만치가 않구나 생각했다. 다소 웃기는 얘기지만 나는 이 조그만 식물을 보며 백정의 가랑이 사이를 기던 한신韓信을 생각했다. 오기로 가득 찬 녀석이라 동백은 아마 내년이면 몽우리를 틔우려 또 안간힘을 쓸테니 그 모습은 또 오기吳起를 생각나게도 한다. 물론 이들의 이야기는 이 작은 식물이 이루어내고자 하는 순수함을 설명해낼 수 없다. 달마의 제자가 되기 위해 설산에서 스스로 한 팔을 자른 혜가慧可의 이야기라면 어떨까 싶지만 오히려 이쪽은 부담스러우니 그만 하도록 하자.
사실 거창한 옛 이야기로 포장할 필요 없다. 스스로 모자람을 깨달았을 때 과감하게 포기할 줄 아는 결단의 힘이 내겐 없다. 빨리 털어내고 내일 다시 해보자는 행동의 힘이 내겐 없다. 누가 뭐라 하던 내 갈길은 내가 알아서 가겠다는 용기의 힘이 우리에겐 없다. 마치 그리스비극의 주인공처럼, 운명을 온몸으로 저항하되 그럼에도 피할 수 없는 현실에 고통받는 이 순수하고 비극적이며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옛 고사나 떠올릴 것이 아니라 열심히 차 마시고 내 주변의 일상을 돌보고 응원해야 옳다. 내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이 계절답지 못한 계절에, 계획과는 많이 다른 우리 오늘에, 잡아야 할 것은 놓치고 보내야 할 것은 부여잡기만 하는 미련함에, 작별을 고하자.
글. 정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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