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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RollingTea 구르다

“간곡한 마음으로 차를 우립니다. 마치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처럼, 오늘이 마지막 만남인 것처럼.”

보듬이의 여행 : 봄, 천둥번개보듬이의 여행 1 


천둥번개보듬이, 평단 선생을 만나다.

2월은 여러모로 분주한 달이다. 절기상으로 입춘과 우수가 있어 봄의 시작을 알리는 듯하지만 실상 계절은 여전히 춥고 혹독해서 봄이 오는 소리를 듣기 어렵다. 학교에 다니던 학생들은 졸업을 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를 한다. 시작과 끝, 이것과 저것이 뒤섞인 시기이다. 천둥과 번개는 비구름에서 비롯하고, 비구름은 땅 위의 수증기에서 시작한다. 수증기는 강과 바다의 물에서 비롯하지만, 물은 언젠가는 얼음이었다. 언 얼음이 녹아 물이 되는 이 오묘한 절기에 천둥번개보듬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 길을 나선다. 처음 만난 이는 대구의 차살림 큰 시자(侍者) 평단 장태연 선생이다.  그녀의 젊고 단아해 보이는 외모 뒤에는 사실 오랜 연륜과 경험이 감추어져 있다. 젊은 시절 아이를 키우느라 바쁜 와중 길 가다 우연히 본 도자기에 끌림을 느껴 공방으로 들어섰던 일로 인해 차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선생은 이곳저곳에서 이런저런 차 공부를 하고 자격을 얻었지만 언제나 무언가가 비어 있는 듯 아쉬웠다고 한다. 그녀가 배운 차는 언제나 실습과 행위에 국한되어 있었다. 아쉬움을 채우기 위해 대학원을 진학했지만, 그곳에서조차 같은 이야기만 반복되었다. 벙어리 차법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만나게 된 평강 정동주 선생의 첫 수업에서 그녀는 칠판에 커다랗게 적힌 ‘차란 무엇인가’라는 문장을 마주하게 되었다. 차란 대체 무엇일까? 차는 마시지만, 진심으로 차를 궁금해하지는 않는 많은 이들이 흘려버리곤 하는 이 질문. 여기에는 관계의 문제, 미감에 관한 문제, 역사에 관한 문제 등이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그날 이후 이제까지의 차 생활을 청산하고 본격적인 차살림 공부에 돌입했다. 그렇게 다시 십수 년이 넘는 공부가 이어졌고 수십 권의 노트가 차곡차곡 쌓였다. 이제 그녀는 차살림 큰 시자로서 사람들에게 차살림법을 가르치고, 차살림으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일에 큰 기쁨을 느끼고 있다.  평단 선생은 모두살림을 통해 차살림을 세상에 선보이는 활동도 하고 있다. 모두살림은 많은 사람에게 차를 대접할 때 행하는 차살림법인데, 그녀는 여러 나라 여러 장소에서 모두살림을 진행한 경험 많은 베테랑이다. 하나의 퍼포먼스로서 모두살림은 약 오십분 정도 진행되는데, 그 시간 동안 차살림을 주재하는 평단 선생은 주위 풍경과 소리, 차살림 그릇과 도구, 흐르는 시간과 한 몸이 된 듯 보인다. 더 재미있는 점은 그녀가 이런 행사를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에 있다. 많은 사람을 상대하는 행사가 어려운 이유는 거기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목적을 가지고 그곳에 모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누군가는 스펙을 쌓기 위해, 또 누군가는 공명심, 혹은 단순한 호기심을 가지고 한 장소에 모여 있다. 그만큼 마음을 열고 다가가기 어렵다.


"처음부터 담담해질 수는 없었지만, 차살림을 해 나가면서 깨닫게 된 점 중 하나는 외적으로 이곳이 어디고 무엇을 위한 행사장인지는 진짜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차살림을 보여주고 대접을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건 봉사이면서 동시에 나 스스로 아집을 내려놓을 좋은 기회입니다.”

그 말과 함께 차실에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차분해지고 분위기는 한층 따듯해졌다. 그녀는 서재 겸 차실 테이블에 차살림을 펼쳤다. 전체적으로 색감과 선이 부드럽게 통일된 집안 한켠 차실에는 조그만 책상 세 개가 서로의 어깨를 마주하고 있다. 그 위에 펼쳐 놓은 흰 자리수건만으로도 찻자리 주재하는 이의 평온함이 느껴졌다. 매일 하루를 시작하며 차 마시는 공간에는 그 사람의 생각과 생활이 자연스레 녹아들기 마련이다. 화려한 그림 액자와 값비싼 도구들로 치장된 정형화된 찻자리가 아니라, 평단 선생의 단정하고 소탈한 성품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아늑한 차실이다.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가족은 자고 일어나면 제일 먼저 물 끓여서 차를 마셔요. 그건 신앙 같은 거랍니다. 신기하게도 가르침대로 매일 반복하지만 한 번도 싫증 난 적이 없어요.” 그녀는 차가 손님을 대접하기 훌륭한 도구이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손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와 내 가족을 위한 것이 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가족은 그녀의 차생활의 한 부분이 되었고, 이제는 그녀 또한 가족 한 사람 하 사람의 차생활 중 일부분이 되었다. “언제나 남편이 차를 우려내 쥐여 줍니다. 차를 모르고, 줘도 마시기만 하던 사람이 이제는 둘이 있어도, 온 가족이 함께 있어도 직접 차를 우려서 가족들에게 대접합니다.” 나는 이 모습이 차를 생각하고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천둥번개보듬이가 올라간 그녀의 찻자리는 서로 다른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완성한 회화 같았다. 까만 우림이가 중심을 잡고 앉은 주변으로 무심한 듯 편안한 백자 식힘이, 마치 암석과 목각같이 다른 질감과 색감이지만 옹기종기 어울리는 우림이들. 그사이에 선 천둥번개보듬이는 그녀에게 어떤 느낌이었을까. 평단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들에 나가서 꽃도 보고 밭일도 하는 걸 좋아해요. 밭일하다 쉴 때, 차 한 잔 우려 마시면서 계절이 오고 가는 걸 발견하고 그 사이사이의 변화를 느끼는 게 재밌습니다. 천둥번개보듬이에는 봄이 오기 시작하는 들에 나갔을 때 보이는 풍경이 담겨있는 것 같아요. 황토밭 이랑 사이로 모래도 보이고, 돌도 있고요. 초목과 수풀도 보여요.”

아마도 선생은 차를 통해 흔히 알아채지 못하는 새 지나버리기 일쑤인 인생의 수많은 기회와 이야기들을 갈무리하고 받아들이는 힘을 얻으신 듯했다. 그것은 세상을 떠도는 의미들을 자기 안으로 들이는 작업이고, 나는 차살림을 펼치는 선생의 모습에서 그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스스로 깊이 집중하고 있으면서 상대를 편안하게 하는 차인은 흔치 않을 것이다. 감동이란 바로 그 지점에서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간곡한 마음으로 차를 우립니다. 평강 선생님께 배운 그대로. 마치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처럼, 마치 오늘이 마지막 만남인 것처럼.”




평단 선생님 차실에 도착한 천둥번개보듬이. 천둥번개보듬이가 입고 간 옷은 바느질 공예 작가 평비 선생님 작품.

인터뷰를 부탁드릴 때 말씀드렸던 대로, 평단 선생님은 평소에 차 드시는 공간 그대로를 허례허식 없이 보여주셨다.

까만 우림이와 하얀 나눔이. 색은 반대지만 어쩐지 서로 정답다.





간곡하다. 간절하고 정성스럽다는 뜻. 오늘은 간곡한 마음을 담아 누군가에게 차 한 잔 건네보자.





++ 평단 장태연 선생 차살림 배움터 대구 주소 및 연락처 대구 수성구 수성로 71, 113동 408호  · 010 3825 8380 

글_정 다 인

인터뷰와 사진_정 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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