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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듬이에 담은 것, 하나


동장윤다 차살림법 : 찻자리 위로 이야기를 펼치다 : 2부_31장













그릇은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다. 저 먼 옛날에는 물리적으로 상황에 맞는 그릇이 필요한 때가 있었다. 움푹한 그릇, 넓적한 그릇, 편평한 그릇, 큰 그릇, 작은 그릇 등이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필요해졌다. 우리의 삶의 영역이 확장할수록 그릇의 종류가 다양해졌다. 하지만 삶이 넓이로만 확장한 것은 아니었다. 가로로 넓어진 만큼 사람들은 세로로 생기는 차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기는 깊이의 차이에 따라 그릇은 단순히 물리적 필요성을 넘어 상상과 감정, 미감이 필요로 하는 영역으로 나아갔다. 이제는 단순히 조금 더 넓적한 밥그릇이 필요해서 만드는 것뿐 아니라 마음에 드는 그릇을 원하게 되었다.



마음에 드는 그릇이란 설명하기에 간단하지 않다. 마치 저렇게 말하는 연인을 앞에 두고 무엇을 골라 선물해야 할지 막막해지는 지난날의 내 기억이 떠오를 것만 같다. 마음에 들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환경과 경험을 알아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지고 사라지고 다시 바뀌는 취향을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그날의 기분도 중요하다. 누군가는 왜 이리 변덕스럽고 깐깐하냐고 말하겠지만 사실 우리는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지 못하면 살 수 없는 세상에 이미 살고 있지 않은가. 우리에게 당연한 일이 저 옛날에는 당연하지 않았다.



옛사람 중에는 그릇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콩도 담고, 물도 담고, 씨앗도 담고, 차도 담았지만 마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듯이 곰곰이 생각하고 요구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릇에 보이지 않는 삶의 흔적과 시대의 맥락이 담기길 원했다. 그래서 마치 그릇만 보아도 이 집 안주인의 취향과 식습관이 보이는 것처럼, 먼 훗날 그들의 자손들이 이 시대를 이해하고 기억해 주길 원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을 소망하고, 무엇을 탐구하고, 어떠한 삶의 요구들이 씨줄과 날줄로 얽혀 살아갔는지를 그릇에 담아 보여주고자 했다.



찻그릇은 그를 위한 좋은 도구다. 차는 현실적으로 아무나 쉽게 다룰 수 없는 물건이었다. 오늘만 버겁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 차와 기물을 구할 수 없기도 하거니와 돈이 충분해도 삶을 응시하고 이해해 보려는 태도는 다소 지루했다. 그들에게 차와 찻그릇은 현실의 놀이였다. 그들의 눈에는 과거와 미래를 잇는 현실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 그릇에 차 이외의 다른 것이 담길 수 있다고 생각해 보지 못했다. 그래서 돈이 있어도, 돈이 없어도 아무나 쉽게 다룰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던 셈이다.



시대를 대표하는 찻그릇은 그렇게 태어났다. 북방에서 밝은 그릇들이 태어나고, 남방에서 어두운 그릇들이 태어났다. 그러더니 무늬가 화려한 그릇들이 세상을 뒤덮더니, 다채로운 색깔 그릇들이 시대를 설명하기도 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붉은 점토처럼 이질적인 흙으로 완전히 다른 시대를 증명하는 찻그릇이 나오기도 했다. 찻그릇은 태어난 그 시절, 그때 사람들의 생각과 소망을 담고 있다.









정 다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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