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장윤다 차살림법 : 찻자리 위로 이야기를 펼치다 : 2부_33장
밝은 그릇은 그렇게 백자가 되고, 어두운 그릇은 청자가 되었다. ‘白’은 하얗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밝은 일체의 것을 상징하니 그 자체의 광명으로 주변의 두려움을 물리치는 힘이 있었다. ‘靑’은 푸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이 글자 안에는 무언가를 조용하고 잠잠하게 만드는 고요함의 힘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내 안에서 일어나는 두려움과 공포를 잠재우는 힘을 잠재울 수 있다고 믿었다. 우리는 그저 하얗고, 푸른 그릇으로 알고 있겠지만 백자는 외부에서의 침략을, 청자는 내부로부터의 두려움을 이겨내는 그릇이었다.
우리는 정작 두려운 것이 따로 있었다. 가깝지만 먼 두 나라 중국과 일본은 여러 방면에서 애증의 관계였다. 중국은 우리가 그 등 뒤를 보며 쫓았던 넓은 등을 가진 형이었다면, 일본은 오랜 세월 우리에게 작지만 재빠르고, 아직 여물지 않았지만 영민한 동생이었다. 우리는 형을 바라보며 언제 혼날지 모르는 동생이 되어 무서웠고, 동생을 바라보며 언제 따라잡힐지 모른다는 초조함이 있었다. 무서운 마음도, 초조함도 모두 두려움이다.
일본에 한반도의 도래인이 여러 차례 찾아와 고대사를 건설하고, 불교를 배우기 위해 삼국의 승려들을 모셔다 남도 6종을 건립할 당시만 해도 우리는 그저 왜국을 향한 압도적인 우월감에 젖어 있었다. 일본인들은 자신을 낮추며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재미있는 점은 그들의 열등감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열등감에 시달리는 이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 질투심에 불타 크거나 작은 인생의 오점을 남기거나, 아니면 극복할 수단을 찾아 칼을 갈거나. 일본은 후자였던 듯하다. 그들은 한반도를 거쳐 중국을 넘나들며 무조건적인 배움을 갈구했다. 현대 시대 세계 최고 수준의 문헌학과 아카이브를 자랑하는 일본의 학문에 대한 순수한 갈망은 그러고 보면 천 년이 훌쩍 넘는 동안 각인된 유전자라고 봐도 될까.
그들은 차문화에 대해서도 동일한 입장이었다. 차와 깨달음을 동일 선상의 것으로 보았던 남송 시대의 선종 불교의 전통에 따라 일본도 종교와 미학, 그리고 차를 한 줄기의 것으로 보았다. 그렇게 천 년에 가까운 시간을 중국과 한반도를 뒤져가며 외부의 온갖 것들을 배우는 세월 동안 쌓아 온 자료를 바탕으로 내적 다지기를 한 시간이 다시 사백 년이다. 그렇게 그들은 차문화에서 중국의 그늘을 벗어나 완전한 독립을 이루었다. 그 시대가 찾아왔을 때 그들이 이렇게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이제 누가 우월하고, 누가 열등하지?
그런 생각 해본 적 없는가? 본격적인 차문화사 1500년을 두고 되짚어 보자. 지난 1400년 간의 사회 변화가 더 거대할까? 아니면 최근의 100년 사이 더 큰 변화가 일어났을까? 여러 강의에서 몇 차례에 걸쳐 사람들에게 물어본 결과 백 명 중 아흔아홉 명은 최근의 한 세기를 더 큰 변화로 꼽았다. 이유는 다양했지만, 공통된 의견은 하나였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된 사실의 여부였다. 그렇다. 지난 14세기 간 인류의 기술과 제도는 조금씩 진일보 했을지언정 현대와 같은 권리와 의무의 균형 잡힌 삶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런데 재미있지 않은가? 그 오랜 세월 동안 왕조가 바뀌고 그 왕조의 주된 가치관에 따라 차문화도 바뀌어 왔는데 어째서 그렇게 거대한 변화가 일어난 한 세기 동안은 완전히 새로운 찻그릇 하나가 등장하지 않았을까? 청자와 백자가 지배했던 수백 년의 일방적인 구도를 깨뜨린 라쿠의 등장보다 시대적인 면에서 더 혁명적인 무언가가 등장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릇은 시대의 얼굴을 담는다는데 이 시대의 얼굴은 대체 어떻게 생겼길래 담기지 않은 것일까?
여기에 대한 대답으로 세상에 난 그릇이 보듬이다. 인류사 오천 년간 처음 등장하는 굽이 없는 그릇. 앞서 설명했던바 굽이란 힘과 권력의 크기를 상징하니, 더 이상 위계와 신분으로 삶을 무조건적인 종속의 굴레에 가두지 못하게 된 이 시대를 이야기하기에 나쁘지 않은 시작일 것이다. 저 먼 옛날 우리의 조상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나누어 사는 데 급급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강제하는 위압이 사라졌으니, 둘의 경계가 모호해진 삶을 산다. 그러다 보니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는 일이 어떨 때는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머리로 이해하는 삶과 정작 내 몸이 사는 삶 사이는 점점 멀어져 간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렇게 넘치는 자유로움을 슬기롭게 이용하는 지혜와 그러지 못한 과거가 만들어 놓은 불필요한 찌꺼기들을 정리하려는 마음가짐이다.
저 보듬이의 표면은 급격한 경사없이 부드럽게 떨어져 오르고 내리는 곡선면이다. 한 손으로 들기에는 크니 두 손을 나란히 펴서 그 위에 곱게 올려놓자. 두 손을 사용한다는 것은 예로부터 삿되지 않은 태도,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음을 증명하는 의식이었다. 신에게 기도하는 두 손, 님에게 바치는 마음의 공양, 사랑과 존경을 표하는 두 손의 마주 잡음, 그리고 나의 경계를 허물고 상대를 내 품 안에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완전한 허용.
두 사람이 모이면 반드시 그 사이에는 층위가 생긴다. 부모와 자식, 선생과 스승, 선배와 후배가 아니더라도 그렇다. 친구 사이에도 반드시 층위는 생긴다. 네가 나보다 더 잘생겼고, 반대로 내가 너보다 돈을 조금 더 잘 번다는 생각과 기꺼이 인정하는 마음 역시 층위의 증거다. 시기와 질투뿐 아니라 존중과 응원의 마음에도 층위는 자리한다. 뒤집어 말한다면 너와 나는 그래서 다른 것이다. 절대로 같은 층에서 같은 높이고 세상을 바라볼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외롭지 않기 위해서는 이해하는 삶을 지향해야 하고, 나의 이해하려는 마음이 누군가에게 가 닿아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비로소 나 또한 누군가의 품속에 자리 잡게 되니까. 삶을 살 줄 아는 것은 쉽다. 누구나 삶은 사니까. 하지만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심리학자 아들러가 그런 말을 했던가. 외롭지 않고 싶다면 공동체에 헌신하라고. 생각 없이 기분에 따라 누군가를 대하는 삶을 버릴 때도 되지 않았나. 현재 내 삶을 바로 마주하고 상대를 보듬을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 오늘도 차를 마시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정 다 인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