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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RollingTea 구르다

프롤로그_여정을 시작하면서

백장선원청규 차법의 미학 01







차는 참선 수행자 공동체 생활에서 말 없는 말로 하는 법문이었다. 무엇 하러 여기 왔는지, 보이고 느껴지는 저것은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를 묻고 또 알아채게 하는 설법이었다. 이렇듯 오묘한 뜻이 응축된 차를 묵언의 소통 수단으로서 참선 수행에 응용한 것은 백장회해(720~814)의 깨달음에서 비롯되었다.



백장회해(百丈懷海: 749~814)는 당나라의 선승이다.백장산(百丈山)에서 살았기 때문에 백장이라고 부르고 이름은 회해(懷海)이다.



참선은 무(無)와 공(空)으로의 마음 여행이다. 이 여행은 불교가 중국에 전해진 뒤 보리달마조사의 은유와 상징으로 질문하고 화답하는 수행에서 시작되었다. 어느 겨울 눈 덮인 소림사 뜰에서 왼팔을 잘라 선혈이 눈 위에 낭자한 행동으로 법을 물었던 혜가에게 쩌렁쩌렁 고함으로 대답했던 그 시간부터였다.

불교는 그지없이 심오한 사상과 인간을 이해하는 데 놀랍도록 풍부한 지혜를 갖추고, 천팔백 년 전 일만 리도 훨씬 넘는 멀고도 험준한 태산준령과 모래 바람, 눈보라를 뚫고 산 넘고 물 건너서 중국까지 도달했다. 그 멀고 긴 여정에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의 시간과 종교적 열정이 가득 채워져 있어서 온갖 위험과 고난 속에서도 약해지거나 변함이 없었다. 그토록 신비스러운 흔적은 윈강(雲岡), 룽먼(龍門), 둔황, 마이지산 석굴 안에 새겨져 있는데, 같은 시대 세계의 모든 인류 문화사에서 으뜸가는 종교 미술로 살아있다.

서기 67년 중국인 마음에 처음 소식을 물은 불교는 육백여 년이 지난 뒤에 백장회해선사에게 다시 물었다. 왜 출가했는지, 어떻게 마음을 볼 것인지를. 백장회해는 답했다.


삶과 죽음이 오직 마음에 달렸으니 목숨 걸어야 할 곳은 마음 찾는 일이며, 마음 찾아가는 여정을 함께 하는 스승과 도반에게 길을 묻고 대답하는 방법은 문자와 언어가 아니라, 차 한 잔에 있다고.




송대에 편찬된 선원청규의 첫 페이지. 고려판본.



차의 오미(五味)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올바름의 원융(圓融, paripurna)이여서, 의식·욕망에 뿌리를 둔 언어, 문자로는 마음을 볼 수 없는 한계를 초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게 이뤄진 백장선원청규 차법은 말 없는 말로 묻고 대답하는 여러 가지 구체적인 방법으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가장 쉽고도 어려운 행동이 문신(問訊)인데, 언어와 문자를 뛰어넘어 나는 무엇 하러 여기 왔는지, 보이고 느껴지는 저것은 무엇이며, 나는 누구인지를 묻고 대답하는 형식이 차의 시작과 끝마치는 모든 과정에서 다양한 몸짓과 분위기로 표현된다.


인류 최초로 제시된 이 차법은 일본 차 문화에 깊은 영향을 주었고, 중국과 우리나라 선종 사찰과 세속의 지성인들에게도 전해져서 정신과 행동의 토대가 되었다. 앞으로 일 년 동안 백장회해의 선원청규 차법에서 핵심 내용을 가려 뽑아 열린 세상으로 내보내려 한다. 


입춘 무렵 내리신 단비가 긴 겨울 가뭄과 목마름을 적시며 산에 들에 사람 마음에 봄소식을 전한다.










정 동 주









'부다탕' 편의 첫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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