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장선원청규 차법의 미학 27
우리가 지구의 한 생물 종으로 살아남을 가능성이 자꾸 줄어들고 있다.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낸 사회적 위기들과 생태계 파괴가 기후 변화로 구체화하여 정치적, 경제, 과학, 의학 등 인간의 문명으로는 막아낼 수 없는 극한 상황이 우리 앞에 끔찍한 예고를 보내고 있다. 그냥 파멸할 것인가 아니면 살아남을 지혜를 구할 것인가? 그 지혜는 정신으로만 구할 수 있다. “나는 무엇 하러 여기 왔는가?” 캐묻고 또 묻는 정신을 일으켜 밝히면 가능할 것이다. 그 질문은 침묵이다.
선종(禪宗) 수행법 중에 차 마시는 의식은 시작, 진행, 끝마치는 모든 과정이 묵언으로만 이루어진다. 차를 선(禪)으로 보기 때문이다. 중국 송나라 때 수단(守端, 1025~1072) 선사의 제자 법연(法演, ?~1104)이 편집한 『백운수단선사어록(白雲守端禪師語錄)』에 ‘다선일미(茶禪一味)’라는 말이 있다. 선(禪)은 마음을 챙겨 깨닫는 수행법인데, 문자나 언어에 의지하지 않는다. 마음은 문자나 언어 이전이고 이후이기 때문이다. 차 또한 다른 어느 물질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온전한 다섯 맛(五味)을 지녔기 때문에, 선의 바탕과 하나임을 깨달아 그렇게 법문하신 것이다.
선종 수행자가 수행공동체의 집단의식으로 차를 마실 때 온전한 묵언으로 시작하고 끝낸다. 이때 차회 진행을 돕는 시자들의 모든 행위와 차를 대접하는 수행자 사이에는 오직 ‘문신(問訊)’이라는 마음과 마음의 질문과 대답이 끊임없이 오간다.
지금 우리는 너무 많은 말의 혼란으로 진리, 진실, 정의, 공정, 평등, 그리고 자유가 사람을 죽이고, 생태계 파괴를 부추기는 욕망의 칼이 되고 독이 되고, 마침내 죽임의 문화가 종교의 탈을 쓰고 정신을 자본화하고 있다.
정 동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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