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장선원청규 차법의 미학 24
茶罷收盞若自下茶者須自收盞良久伺候盞 辦依前燒香
(시자는) 차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스승의 잔을 먼저 거둔다. 만일 제자가 손수 차를 내려 넣었으면 반드시 제자가 직접 찻잔을 거두어야 한다. (시자에게 시키면 안 된다) 조금 뒤 잔탁이 비게 되면 (시자는) 스승 곁에 서 있다가 (두 번째 차를 내기 위해서) 왼손으로 향을 살라 올린다.
스승이 차를 마시고 나서 내려놓은 ‘찻잔 거두는 법’에 관한 미학적 살핌이다. ‘스승께서 마실 차를 내는 법’이 살아계신 스승을 모시는 법이라면, ‘스승이 마시고 내려놓은 찻잔 거두는 법’은 스승께서 열반에 드신 뒤 제자가 몸을 어떻게 두어야 마땅한 처신이 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孝’는 부모님 살아계실 때뿐만 아니라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뒤라도 자식 된 자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실천해야 할 도덕이다. 마찬가지로 스승께서 마시고 내려놓은 빈 찻잔을 정성껏 거두어 씻는 일은 곧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않는 수행을 뜻한다. 지금 스승이 살아계시지만 언젠가는 오셨든 곳으로 돌아가시게 마련이다. 미래의 일이다. 미래를 미리 연습하는 수행이다. 스승의 법이 만세토록 전해지게 하는 일은 제자 된 자의 가장 보람 있는 과제이자 자신의 수행을 완성하는 일이다.
스승이 제자 한 명을 들이는 것은 지옥 하나를 더 만드는 것이라 했다. 그 지옥을 소멸시키는 수행을 성취하겠다는 의지 없이 제자를 들이는 것은 욕심일 뿐이다. 제자가 스승을 모시는 일은 열반의 길을 따르겠다는 발원이라 했다. 스승께 열반이 아니라 지옥을 더하는 제자가 되지 않기 위한 발원 수행이 곧 스승께서 드시고 내려놓은 찻잔을 정성껏 씻는 것이다. 스승의 찻잔을 씻는 일은 나 자신의 업장, 번뇌를 씻는 것이다.
정 동 주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