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장선원청규 차법의 미학 06
當頭特爲之人專看主人顧揖簸然後揖上下間喫茶
(손님은) 겸손하게 주인을 보면서 정중한 인사를 한 다음 어른과 아랫사람이 서로 인사하고 나서 차를 마신다.
차 한 잔 마시는데 무슨 이렇게도 복잡하고 힘든 인사를 서로에게 하는 것일까?
혼자 편하게 마시면 될 차를 굳이 차회를 마련하여 마시려는 것일까?
차회를 준비하고 함께 차 마시는 것은 맛과 향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의 미묘한 관계, 인연을 살펴 깨닫기 위해서다. 그 관계를 깨닫는 데 언어나 문자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방해받기 쉽고 우환이 될 수 있다. 차회에 참석해 있는 사람끼리 침묵 속에서 진지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나누는 인사는 언어와 문자를 초월한 말 없는 소통이다.
사람은 잠시도 다른 것들로부터 도움받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다. 삶이란 지식만으로는 알 수 없는 많은 존재의 비밀스러운 도움으로 영위된다. 나 자신 또한 그런 방법으로 다른 존재들의 삶을 돕고 있다. 모든 것은 모든 것과 관계하고 있다. 즉 『화엄경』의 인드라망(因陀羅網, 산스크리트어 인드라얄라 indrajala), 관계의 그물처럼 엮이어 있다.
차는 그러한 존재들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체이자 소통 그 자체이기도 하다.
차회에서 주고받는 인사는 상대편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서 자신이 먼저 정성을 기울여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도 저절로 마음의 문을 연다. 열린 마음의 문 안으로 들어가 인드라망의 실체를 서로 보여주어, 서로가 얼마나 필요하고 고마운 존재인지를 깨닫게 한다.
이 좋은 봄날, 정성어린 마음 담아 차 한 잔 권합니다.
정 동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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