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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RollingTea 구르다

느림과 기다림


백장선원청규 차법의 미학 05  


"常宜恭謹待之"

(손님은) 언제나 느긋하고 겸손하게 기다린다.



찻자리에 앉은 손님은 기다림을 완성하기 위해 거기 있다. 기다림(待之)이란, 정해진 길 위에서 과거, 현재, 미래를 담은 인연 그릇을 마음으로 모은 것이다.


선원(禪苑) 차회에는 존경받아 마땅한 큰 스님과 갓 출가한 새내기에 이르기까지 모두 참석하고 있어서 진행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린다. 찻그릇 다루는 시자의 자잘한 몸짓들은 고요하고 섬세하며 규칙적이지만 느리고 법답다. 시자의 거듭되는 문신은 차회가 익숙지 않은 사람들한테는 지루하고 갑갑하게 여기는 마음이 생기게도 한다. 그런 마음이 곧 탐(貪), 진(瞋), 치(癡)다. 차회란 맛있는 음식 배불리 즐기면서 떠들고 웃는 자리가 아니다.


차의 본바탕은 느림이다. 느림은 자연의 맥박대로 숨 쉬고 하나 되는 것이다.

사람은 어머니 자궁에 생명으로 귀의하여 태어나기까지 열 달 걸린다. 태어나 걷고 말하는 데도 여러 해가 걸리며, 어른 되기까지 수십 년 걸리는 느림의 시곗바늘이다. 차는 미묘한 삶의 복잡한 관계가 이뤄지는, 생명의 씨줄 날줄로 짠 은혜의 피륙을 재단하여 깨달음을 짓는 수행이다. 그리하여 참선 수행자의 차회는 또 하나의 우주인 정신과 깨달음을 기다리는 정거장이며, 빠른 속도, 편리함과 이익, 포만과 소유의 반대편으로 난 길을 천천히 걷고 또 걷는 연습이다.



이 맑고 밝은 세상에서 사람으로 만난 일을 기리며, 향기로운 햇차 한 잔 나누십시오.





정 동 주






Friedel Dzubas, Stone Flower,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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