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원청규 차법의 미학 38
如先放盞 者盤後安之以次埃排不得錯亂
만일 찻잔을 (다른 사람보다) 먼저 내려놓게 되면 쟁반 뒤편에 안전하게 내려놓아라. (찻잔 내려놓는) 순서가 잘못되어 (먼저 내려놓은 찻잔이 쟁반 앞쪽에 있으면) 찻잔을 밀쳐 부딪치는 혼란을 만들지 마라.
‘先放’은 ~을 먼저 내려놓다, ‘盤’은 (찻잔을 담아 나르는) 쟁반, ‘安之’는 ~을 안전하게 두다, ‘以次’는 차례나 순서, ‘埃排’는 ~으로 등을 밀치다로 풀이할 수 있다. 좀처럼 잘 쓰지 않는 8세기 중국 문장의 한 예를 볼 수 있는 구절이다.
흔한 일상생활 모습이다. 차 모임에 참석한 손님이 많을 때는 차를 다 마시고 찻잔 내려놓는 시간이 조금씩 차이가 있게 마련이고, 평범한 일이다. 이때 찻잔을 먼저 내려놓는 사람이 자기 편한 생각으로 쟁반 앞쪽에다 두기 쉽다. 뒤에 찻잔 내려놓는 사람은 찻잔 놓을 자리가 멀어지게 되고, 멀리 빈자리에 두기 위해 팔을 앞으로 뻗다 보면 자칫 찻잔의 굽과 먼저 내려놓은 찻잔의 전이 부딪치기 쉽다. 찻잔끼리 부딪쳐 넘어지거나 소리가 나면 차실 안의 고요가 순식간에 흔들리게 된다. 여러 사람이 함께 머무는 자리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것은 곧 자신의 편안과 행복에 도움이 된다.
수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소소한 것들이 모여 삶을 이루고 죽음으로 갈음한다. 일상생활에서 내가 대수롭지 않게 누리는 편리나 이익은 다른 누군가의 배려 덕분이다. 작지만 당연한 일상의 평온은 서로 맞물린 배려 위로 잔잔히 흘러간다.
차 한 잔을 마시고 빈 잔을 내려놓는 일에서 쉬이 보이지 않는 일상의 지혜를 배운다.
정 동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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