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담다 : 한국·중국·일본의 차 마시는 그릇_특별편
흔히 색깔을 지칭할 때 우리는 명시적인 단어를 사용한다. 흰색, 검은색, 노란색 같은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세상 대부분 일이 그러하듯 온전히 이것이거나 저것이지 못하고 그 사이에서 멀뚱멀뚱 서 있는 것들이 많다. 경상도 사투리에서는 이러한 존재들을 더러 꾸짖는 말도 따로 있다. “기믄 기고, 아이믄 아이지!”라고. 그럴 때 우리는 적절한 형용사를 가져다 붙인다. 밝거나 어둡거나.
그렇다면 그런 것이고, 아니라면 아니라고 주장하는 많은 이들의 생활 면면을 들여다보면 사실 저 말은 잠언에 가깝다. 세상을 그렇게 칼로 무를 썰 듯 명명백백 선택하며 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실상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세상에는 수많은 흑과 백이 존재하지만, 그들 중 상당수는 누군가에 의해 임의로 설정된 기준인 것도 많다. 관습에 의해서, 통념에 의해서, 수치나 통계에 의해서 흑이 백이 되기도 하고 백이 흑이 되기도 한다.
백자는 역사가 길다. 한나라 시대부터 백자는 존재했다. 그 이름이 유세를 떨치게 된 것은 도자기의 전성시대라 말할 수 있는 송나라 시대부터였다. 우리는 조금 다르다. 한반도 도자기의 역사에서 보자면 조선이 곧 백자고 백자가 곧 조선이었다.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작가가 다양한 흰 빛의 백자를 빚고자 애썼다. 어쩌면 지금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색을 분류해 놓았다 해도 좋을 팬톤Pantone의 흰색 가짓수만큼 많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식민시대를 거치고 어물쩍거리며 답보한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 현재에 이르렀고, 백자라는 이름에 묶일 만한 그릇의 범위는 크게 줄었다. 비로소 ‘백자믄 백자고, 아이믄 아인’ 시대가 된 것이다.
누구나 생각하는 ‘흰색’이란 바로 그 흰색, 흰색 염료의 색인지라, 그처럼 하얗지 않은 그릇을 백자라 이름 부르면 어색한 시대가 되었다. 여기에는 기묘한 아이러니가 있다.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 도자에서 백자는 무엇보다 만들기 까다로운 그릇에 속한다. 작가가 전통 방식으로 백자 몸 흙을 만들기 위해 들여야 하는 수고로움이 몹시 크다. 반면 완제품으로 들여오는 흙을 쓰는 것은 비교할 수 없이 편하고 저렴하다. 흔히 생각하듯 백자가 흰색 도자기일 뿐이라면, 백자만큼 만들기 쉬운 그릇도 없을 것이다. 당신도 몇천 원만 들이면 동네 공방에서 뽀얀 빛깔의 백자 하나 구워낼 수 있다. 그렇다면 직접 만든 우리집 고양이 밥그릇은 흰색에 푸른 무늬가 있으니 그건 청화백자인가. 거리를 떠도는 수백 수천 가지의 백자 시리즈를 보다 보면 그 모두가 같은 색이다. 모든 게 같되 만드는 손만 다르니 모양이 조금씩 차이 날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릇이 아닐까. 흰 그릇이니 백白자이되 일률적이니 백百자는 못 된다.
오늘 이곳에 백자 아닌 백자를 모신다. 흰 물감같이 하얀 도자기가 흔한 세상에 겉으로 드러난 색이 하얗지는 않지만 흰 흙 몸을 가져 밝은 빛을 띠는 보듬이를 내놓는다. 흙으로 빚는 찻그릇의 색에 관한 탐구와 백자에 대한 열망 사이에서 태어난 그릇이다. 과거에서 배우고 현재를 돌이켜보는 작업이었다. 그 끝에 이들은 백자보듬이가 아니라 밝은 보듬이가 되었다.
차살림은 차수건 위에 서로 다른 질감과 색깔의 그릇을 한데 올려 어우러짐을 배우게 하는 차법이다. 백토로 빚었으나 일반적인 기준에서 하얗지 않다고 하여 백자가 되지 못한 그릇들은 한 줄기에서 태어났지만 서로 다른 생각과 모습을 한 우리와 닮았다. 동다헌 가족과 보듬이 작가들, 차살림 식구들은 언제나 세상에 없던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가리었거나 가 본 적 없는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다양한 예술에 애정을 갖고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에게 시대를 보듬어 안는 그릇, 보듬이의 매력이 와 닿기를 바란다.
전시 일정 : 2019년 5월 19일 일요일 ~ 5월 25일 토요일
전시 장소 : 갤러리 차와문화, 서울 종로구 계동길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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