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장윤다 차살림법 : 찻자리 위로 이야기를 펼치다 : 2부_22장
차살림 준비
_찻물 上
요즘 차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나면서 차를 선물로 주고받는 경우가 늘어났다고 한다. 우리는 차 선물을 준다고 하면 으레 잘 포장된 찻잎 수십 그램을 주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차 선물은 좋은 물과 함께였다.
松山嚴 細泉
송악산 바위틈 마르지 않는 샘물은
知自松根結處生
솔뿌리 서린 데서 생겨 나오네
紗帽籠頭淸晝永
긴 여름 한낮 머리에 덮어쓴 모자
好從石聽風聲
차솥에서 차 끓는 바람 소리를 들어보시게나
도은 이숭인, 「차 한 봉과 안화사 샘물 한 병을 삼봉에게 보내다 茶一封幷安和寺泉一甁贈三峰」
자신보다 한참 형이었지만 막역한 사이였던 삼총사가 삼봉 정도전, 양촌 권근 그리고 도은 이숭인이었다. 고려 말의 화려하고 비극적인 이야기의 주인공들이지만 정작 젊은 시절에는 정신적으로 서로 의지하며 지냈던 듯하다. 이숭인은 권문세족 출신으로 부유한 청년이었고, 정도전은 별 볼 일 없던 한미한 가문 출신의 신진사대부였으나 자신을 채비하고 단련하기를 게으름피우지 않던 그를 존경하며 차 선물을 보냈다. 그때 개경에서 가장 상징적인 사찰이었던 안화사의 유명한 샘물을 손수 길어 함께 보내는데 여기서 우리는 옛사람들이 차를 대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저 먼 옛날 당나라의 차인 육우(陸羽)가 쓴 《다경(茶經)》은 차를 열렬히 사랑하던 한 탐미주의자가 타인을 위해 쓴 지침서 혹은 안내서였다. 거기에는 차와 관련한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는 법 그리고 그것을 왜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굳은 믿음 같은 것들이 듬뿍 담겨 있다. 그리고 동시에 친절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최대한 쉽고 세세하게 설명하려는 그의 태도는 특히 물을 다루는 부분에서 두드러진다. 그는 중국 전역의 유명한 샘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당나라 곳곳을 여행하며 마셔보고 기록한 그의 경험으로 만든 세계 최초의 찻물 맛집 지도 같은 셈이다. 하지만 21세기도 아니고 8세기에 살던 사람들이 좋은 찻물을 구하겠다고 당나라 여기 끝에서 저기 끝까지 걸어갈 수는 없는 법이다. 이른바 물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으면 좋은 찻물을 영영 구하지 못한다는 절망감에 빠진 이들을 위해 육우는 다음 단계를 소개한다. 그는 좋은 물과 나쁜 물의 조건을 구분하고, 우리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물들 중에서 그나마 가장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자세하게 안내한다. 고인 물보다는 흐르는 물을, 많이 모인 곳에서보다는 졸졸 흐르는 곳에서, 흙보다는 자갈이, 바위 사이와 나무뿌리 사이의 물은 무엇이 다른지, 돌멩이의 색깔에 따라 더 괜찮은 물을 구하는 방법 등등을 알려준다. 육우의 지론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강조하는 것은 항상 같다. 한 잔을 마셔도 최선을 다해서 마셔보려 노력해라.
그런 처지에서 보면 이숭인이 직접 안화사까지 가서 길어 온 샘물을 좋은 찻잎과 함께 선물한 이야기는 좋은 차란 무엇인가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게 한다. 좋은 선물이란 무엇인지, 상대방을 위로할 때는 어떤 마음가짐이어야 올바른 것인지 등도 생각해 보게 된다. 당신이 어느 차가게 가서 차를 배웠다면 곰곰이 떠올려 보길 바란다. 그 사람은 나에게 차에 있어 물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얼마나 많은 가르침을 주었던가? 옛사람들은 차와 물의 관계를 마치 몸과 정신의 그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해도 온전하고 건강한 결과에 이르지 못한다는 뜻이니 당신이 마시려는 차 한 모금이 최선이 되는 데 필요한 물은 무엇일지 한 번 고민해 보는 경험도 재밌지 않을까 싶다.
정 다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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