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원청규 차법의 미학 56
侍者報訖引見堂頭問訊訖云請和尙坐
시자보글인견당두문신글운청화상좌
先大展三拜近前躬身云今晨齋退欲就方丈點茶
선대전삼배근전궁신운금신재퇴욕취방장점다
伏望慈悲俯賜開允
복망자비부사개윤
躬 몸소 행하다.
躬身 낮은 몸가짐으로 행하다. 무릎걸음으로 나아가다.
俯賜 ~을 베풀다.
(스승을 모시는) 시자가 (제자들이 찾아온 뜻을 스승께) 사뢰고 나서 (즉, 스승이시여, 아무개가 차회 일로 뵙기를 청합니다. 스승께서 허락하시면,) 제자를 스승께 안내한다. (제자는) 문신하고, (큰절을 올리기 위해) “스승이시여, 앉으십시오” 한다. …… 스승께 대전 삼배 하고 나서 (스승 쪽으로) 무릎걸음으로 가까이 다가가서 사뢴다. “오늘 점심 공양 뒤에 방장에서 스승님 모시고 차를 끓이려고 합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자비를 베풀어 윤허하여 주십시오.”
참선 수행하는 제자가 스승을 모셔서 찻자리를 펴는 일은 모든 찻자리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고 법(法)답다. 선원에서 찻자리를 펴는 일은 대부분 윗사람의 몫이다. 법문하는 것 자체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전하는 일이고, 찻자리의 법문은 말 없는 말로 이루어지므로, 아랫사람이 어른을 모시고 펴는 찻자리는 흔하지 않다.
선종 사원의 큰스님은 시자를 두어 여러 가지 일을 돕게 하는데, 같은 사원에서 수행 중이라도 제자가 큰스님을 뵈려면 시자를 통해 정해진 절차대로 여쭈도록 규정되어 있다. 제자는 스승께 대전 삼배한 뒤 스승이 앉아 계신 자리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데, 반드시 무릎걸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너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아야 한다. 시자를 거쳐 여쭈는 일이나 무릎을 꿇은 채 걸음 하여 인사를 드리는 일은 결코 편한 일이 아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가?
행동이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 아니라 형식에 그칠 때는 스승을 마주한 행위조차도 겉치레이기 쉽다. 삶은 마음이 짓고 허물기도 하는데, 마음은 형상이 없으니 늘 몸과 물건에 의지해 존재하기 마련이다. 몸이라는 물건을 잘 다스리고 부려야만 마음이 온전히 담긴다. 굳이 어렵게 무릎을 꿇고 나아가는 일은 마음을 몸에 깃들게 하는 수행이다. 스승, 나아가서는 부처의 가르침에 존경을 담아 몸을 낮추고 귀의하는 수행이다.
쉬이 보이지 않는 큰 깨달음에 단번 이르기는 어렵다. 다만 진리로 이끄는 작고 엄정한 규칙을 새기고 몸으로 익히기를 거듭할 뿐이다. 부처님께 귀의하는 일은 막막하다. 다만 곁의 스승과 바른 수행자를 존경하고 닮고자 애쓸 뿐이다.
정 동 주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