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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RollingTea 구르다

메아리가 되다


선원청규 차법의 미학 63







主持上香三拜不收坐具

주지상향삼배불수좌구

上湯退身三拜

상탕퇴신삼배

再進前問訊揖湯

재진전문신읍탕

復位三拜收坐具

복위삼배수좌구


주지는 향을 올리고 대전삼배하며 좌구는 그대로 펴둔다.

차 올리고 물러나서 대전삼배한다.

다시 나아가 문신하고 정성껏 차를 올린다.

본디 자리로 와서 대전삼배하고 좌구를 거둔다.








『백장청규百丈淸規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달마기達磨忌』에 수록된 구절인데, 보리달마 조사 제사에 차를 올리는 차법이다. 흔히 얼컫는 ‘헌다’의 최초 기록으로서 뒷날 부처와 조사 기일에 차를 올리는 헌다법의 토대가 되었다.


먼저 좌구를 편 다음 헌다를 행할 사람이 차를 올리고 나서 대전삼배한다. 그런 다음 첫 번째 차를 올려놓고 뒤로 물러서서 대전삼배한다. 그 뒤를 이어 다른 사람이 다시 차탁을 들고 들어와 문신한 다음 정성을 다하여 두 번째 차를 올린다. 본디 자리로 돌아와서 대전삼배한 다음 좌구를 거둔다.


참선 수행을 핵심으로 삼는 선종의 역사는 5세기 초엽 보리달마 조사가 인도 좌선법을 중국에 전하면서 시작되었다. 육조 혜능에 이르러 남종선이 확립되고, 칠조 남악회양, 팔조 마조도일에 이르는 약 3백여 년 동안 보리달마 조사 기일에 차 한 잔 올릴 수 있는 형편이 못 되었다. 정치적 탄압과 남종선 지도자를 제거하려는 위험 때문이었다. 겨우 극소수 수행자만 은둔과 도피로 법맥을 잇는 데 집중했다.


마조도일 시대에 와서야 남종선 수행이 자유로워지고, 구조 백장회해가 마침내 남종선의 부흥기를 열었다. 그제야 처음으로 달마조사 기일에 차를 올리는 의식이 갖추어지고 헌다법이 완성된 것이다. 그리하여 백장 선사의 선원청규 차법이 참선 수행자의 길라잡이가 되고, 차가 인류 문화의 정신적 좌표로 자리 잡아 ‘모든 것은 모든 것과 관계’ 있는 화엄 사상의 메아리가 되었다.





























제자는 스승을 모시고 찻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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