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장윤다 차살림법 : 찻자리 위로 이야기를 펼치다 : 2부_18장
차살림 준비
_꽃
이집트 최고신 라(Ra)는 태양신이었다. 그는 온 우주를 창조하고 다스렸다. 고대 이집트를 다스렸던 파라오는 라의 현신 혹은 아들로 여겨졌기에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정통성이 넘쳐흘렀다. 그는 생명과 죽음을 모두 관장하는 신이었는데, 태양을 상징했기에 낮이면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다가 해가 지면 죽음의 세계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 날 해가 뜨면 죽음의 세계에서 되살아나는 영원불멸의 존재였다. 그랬기에 이집트 사람들은 수련(睡蓮)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겼다.
기원전 2천 년 후반 이집트에서 수련은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태양신을 상징하는 꽃이었기에 당연히 종교적으로나 사치품으로서 몫을 다 했다. 수련이 왜 태양신 라를 상징하는 꽃이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 꽃의 이름을 보면 된다. 많은 이들이 수련꽃이라 하면 당연히 물 위에서 피는 꽃이니 물 수(水)자가 부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수련의 수(睡)는 잠을 잔다는 뜻이다. 수련은 잠을 자는 꽃이다. 물 위에서 24시간을 살지만 해가 지면 꽃봉오리를 닫고 휴식에 들어간다. 그러다 해가 동쪽에서 떠오르면 꽃봉오리를 다시 열어 햇빛을 안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이러한 식물의 특징이 경이로워 여타 다른 꽃과는 전혀 다른 대우를 하기 시작했고, 이윽고 태양신을 상징하는 성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여전히 이집트에서는 국화로 삼는다.
그들은 종교적인 성물로서뿐 아니라 귀족들의 정원을 더욱 사치스럽고 풍성하게 가꾸는 데 수련을 이용했고, 장례에도 사용했다. 수련은 하늘에서 내려온 신의 성물이니 사후세계에 마땅히 가져가야 할 부장품이어야 했다. 수련이 하늘신과 관계가 있다는 믿음은 그렇게 조금씩 동쪽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기원전 13~14세기 무렵에는 시리아에서 수련의 신화 속 흔적이 발견된다. 당시 생명과 풍요를 관장했던 여신 아시라(Ashira)는 두 손에 수련을 각각 한 송이씩 들고 서 있다. 소아시아를 거쳐 서쪽으로는 그리스, 동쪽으로는 인도에 전파되었고, 인도에서 융성하던 수련의 하늘신 신화는 중국으로 스며들었다. 고대 중국 은나라 청동 유물에 수련 장식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수련을 천제(天帝)의 상징으로 생각했다. 갑골문으로 천제를 수련 모양으로 새겨 놓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다 춘추전국시대가 되면 목조건물의 천장에 하늘 연못을 새겨 넣기 시작한다. 천정(天井)이란 흔히 천장을 일컫는 말로, 말 그대로 하늘에 찬 연못이다. 그리고 그 연못에는 당연히 수련이 살았다. 수련이나 마름 같은 수생 식물을 장식한 단청(丹靑) 문화가 등장했다. 그리고 이즈음부터 우리나라에도 수련 신앙이 전해졌다.
고구려 사람들은 무덤의 천정에 수련을 그려 넣기 좋아했다. 무용총이나 각서총, 안악 3호분에서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재미있는 것은 고구려 사람들의 세계관이다. 그들은 봄에 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내리고 나면, 지상의 연못이나 호수, 하천에 으레 수련이 피는 것을 보고 매우 신기하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늘이 파란 이유가 하늘에 물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천장, 즉 하늘 연못은 곧 하늘을 의미하고 그곳은 신의 세계기에 수련이 천정에서 살다 용을 타고 아래로 내려온 것이라 믿었다. 물론 여기에서의 용은 천둥과 번개를 의미한다. 하늘에 피어 있는 수련은 지상의 것과 닮았지만 가꾸어 피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거꾸로 피어 있는 모양은 매우 중요했다. 왜냐하면 수련은 아침에 뜨는 태양의 빛을 먼저 받아 두었다가 땅으로 비추어 주는 거울과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늘 연못의 수련이 잠을 자는 밤에는 지상의 세계도 어둠에 빠지고, 하늘 연못의 수련이 햇빛을 받아 뿌려주는 낮에는 땅 위의 세상도 밝았다. 광명은 태양에서 오지만, 그를 받아 지상으로 건네주는 존재는 오로지 수련이었기에, 그 어떤 존재보다 수련이 아름답고 귀했다. 고구려 사람들은 신분이 귀한 사람들이라면 으레 자신이 천상계로 올라가리라 믿었기에 하늘 세계와 이곳을 연결 짓는 수련이 꼭 필요했을 것이다.
이천 년의 세월 넘어 전달된 수련 신화의 모양이 놀랍도록 비슷하고 또 재미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으레 우리는 연꽃이라 하면 불교의 탐스럽고 봉긋한 분홍빛 연꽃을 떠올리지만, 수련은 이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고대 중국과 고구려의 천장 장식 관련한 수련 신앙은 불교가 동아시아에 전해지기 훨씬 앞선 시기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연꽃에 관한 우리네의 믿음은 토속적인 무가(巫歌)의 세계고, 동시에 전 세계가 공유하는 부분이다. 우리에게 연꽃은 불교가 가르치는 철학적인 세계뿐 아니라, 이승에서는 못 누렸을지라도 죽은 뒤에는 빛으로 가득한 영혼의 세계에서 영원히 살 수 있기를 소망하는 열망을 상징했다.
정 다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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