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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RollingTea 구르다

동장윤다 2023, 단단한 작은 점









南人不會怕髬鬁 冒險衝深捫葛虆

辛勤採摘焙成團 要趁頭番獻天子

摘將萬粒成一餠 一餠千金那易致

因論花溪採茶時 官督家丁無老稚

瘴領千重眩手收 玉京萬里頳肩致

此時蒼生膏與肉 臠割萬人方得至



남쪽 사람들은 일찍이 맹수도 두려워하지 않아

위험을 무릅쓰고 칡넝쿨을 헤치며 산속 깊이 헤매누나.

간신히 채취하여 불에 말려

남보다 앞서 임금님께 드리려 하네.

일만 잎을 따서 떡 차 한 개를 만드니

떡 차 한 개 값 천금으로도 바꾸기 어렵네.

화계에서 차 딸 때를 말해 볼거나

관리들의 성화에 모든 집의 늙은이 어린애가 몰려나오네.

독기 서린 고개를 넘고 또 넘어 정신없이 차를 따고 또 따면

차를 메고 떠나는 서울길 만 리 어깨가 벗겨져도 가야만 하네.

이것이야말로 백성의 기름과 살,

만 사람을 저미고 베어 얻게 되나니.



이규보는 소문난 차 애호가였다. 그는 스스로 마시고 즐기는 모든 차생활을 유다(儒茶)라 부르며 평생을 곁에 두고 좋아했다. 옛사람들답게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이를 글로 써서 남겼는데 수많은 차시 중에서 저 글귀가 오늘 유달리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는 천재적이고 즉흥적인 인물이어서 같은 소재도 쓰는 때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곤 했다. 천 년 학이 언제는 지고한 존재였다가 언제는 세속적인 존재가 되기도 하고, 자신이 얻은 귀한 차가 언제는 법희(法喜)의 산물이었다가 언제는 고통의 증명이 되기도 했다. 저 시는 후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까.


옛날에는 산중에 호랑이나 늑대가 많았다. 여우도 많았다고 한다. 멧돼지도 흔했기에 그만큼 산군(山君)님도 많이 사셨겠지. 남쪽 사람들은 용맹해서 찻잎을 따기 위해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길 꺼리지 않았다. 이규보가 운봉(雲峯)의 노규선사(老珪禪師)에게 선물 받았다는 조아차(早芽茶)는 한식이 되기 전에 만들었다는 새싹 차다. 새싹은 볕이 잘 들고 따듯한 곳에서 먼저 피고 그 잎을 다 따고 나면 조금씩 산속으로 올라가야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식이라면 4월 초고 지금으로 치면 우전 중에서도 가장 이른 것이어야 할 것이다. 사실 절기는 중국 한족의 생활문화 기준이라 우리 실정에 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조그만 새싹이라 보면 될 것이다. 찻잎을 채취해 본 적 없는 대부분 사람에게는 생소하겠지만 이러한 작은 잎은 아무리 많이 따도 한 바구니를 채우기 어렵다. 그러니 내일은 조금 더 높은 곳으로, 그리고 그다음 날은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만 한다. 깊은 산속은 날씨가 추우니 일, 이주는 더 지나야 산 아랫마을 차나무와 크기가 비슷해진다. 사람들은 마을 뒤의 차나무밭만으로는 요구 수량을 다 채우지 못하니 더 깊은 산으로 올라간다. 산은 점점 가팔라지고, 가만히 서서 따기도 어려운 벼랑이나 험난한 바위 틈새까지 넘본다. 그러니 칡덩굴을 휘어잡고 찻잎을 따고, 산짐승도 피해 가며 찻잎을 딴다. 무엇을 위해서인가. 차가 너무 좋아서? 너무 마시고 싶어서? 부처님의 법을 알고 싶어서? 아니면 세속적인 이유로 부자가 되고 싶어서? 모두가 아니다. 왕에게 바치기 위해서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세금이라고 부른다.


이규보는 이렇게 딴 차가 얼마나 슬프고 한 맺힌 것인지 잘 알고 있고, 동시에 귀해서 좋은 선물임이 틀림없다고도 말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餉名孺茶可無謝,

勸公早釀春酒旨.

喫茶飮酒遣一生,

來往風流從此始


이름난 유다를 대접하니 어찌 사례 없을까?

공에게 맛있는 봄 술을 빚기 권하노라.

차를 먹고 술 마시며 일생을 보낸다면,

풍류를 즐기는 삶이 지금부터 시작된다네.



스님에게 술 빚기를 권함이 어떻게 답례가 되는지는 다음 기회에 따로 알아보도록 하자. 다만 이규보가 스님께 받은 이 차(孺茶)를 아주 잘 마셨다는 것은 알겠다. 백성들이 진실로 죽음을 무릅쓰고 만들었으니, 맛이 없을 수가 있겠는가.




동장윤다, 동장윤다 2023
Paul Brach, New Day, 1967



올해는 윤달이 끼어 있었다. 매번 이런 연차에는 차를 수확하고 만드는 데 평소보다 늦어지곤 했다. 하지만 웬걸. 평소와 다름없이 시작한 올해의 차는 이변도 많았다. 아니, 이변투성이였다고 말해야 옳을까. 윤달이 끼어 있음에도 예상보다 1~2주는 일찍 시작했고, 우전의 기간이 역대급으로 짧았으며, 세작은 편차가 심했다. 중간중간 비가 오고 쉬기를 반복하면서 잎의 형상과 고르기도 종잡기 어려웠고, 가격대도 천차만별이었다. 차나무 잎 하루 치 수확량이 들쭉날쭉해지면서 자연스레 수요와 공급 맞추기가 어려웠다. 하필이면 하동 지역 차 엑스포 준비로 차밭 일 하던 사람들도 평소보다 분주했다. 무엇보다 지난 해 강수량이 극히 모자라 차나무가 새 잎을 틔우고 키워낸 양이 전체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었다. 차밭 마을 노령화로 노동력이 줄어든 것은 이제 차라리 미리 고려할 수 있는 고정변수다.


아무래도 기후가 변한 것 같다. 변한 것이 틀림없다. 옛날 사람들은 범보다 세금이 무서워 산벼랑을 두려움 없이 타고 다녔고, 이제 우리는 기후변화가 무서워 머리가 복잡해진다. 산짐승이 무서운 것은 자연의 이치 그대로이나, 세금을 겁내야만 하는 일은 부조리하다. 차나무 잎 수확이 점점 만만찮아지는 것은 겉으로는 자연이 그리 변한 탓이나, 그 변화를 재촉한 것은 사람의 과오라 하소연할 데가 없다. 자연의 이치를 우습게 거스르며 달리는 인간의 역사가 저절로 떠오르는 탓이다.


궂은 형편이라 오히려 더 마음을 모으고 정성을 다해 차를 빚었다. 몹시 추운 어느 해인가 차나무 잎이 더디 피던 때의 경험을 되새기고, 비가 잦았던 해의 일도 챙겨 보고, 그 모든 크고 작은 변화에서 배우고 익힌 어느 한 부분도 잊지 않고 손끝에 녹여내었다. 어지러이 흩어지고 흔들리는 먼지 같은 마음이 작은 점으로 옮아 들어 천천히, 단단히 야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차를 빚었다. 차를 마주한 이에게 그 마음 전해지길.




동장윤다, 동장윤다 2023
Ellsworth Kelly, High Yellow, 1960




이규보처럼 어려움을 알아주는 이도 있고, 또 이규보처럼 좋은 차를 알아봐 주는 이도 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2023년 동장윤다는 구약실(九藥室)에서 익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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