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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RollingTea 구르다

프롤로그 : 채식 떡국과 채소로 우리는 맛국물


동다헌 밥상_먹는 대로 삶이 흐른다 01





설날 차례상에 올리고 가족과 함께 나눠 먹는 채소 떡국

올해 입춘은 설날 하루 전이다. 한 해 절기의 시작으로 삼는 입춘 날과 음력으로 꼽는 새해 첫날이 맞닿아 있는 셈이다. 그렇다 보니 입춘을 맞는 동다헌의 부엌 풍경은 설맞이와 겹친다. 하루 치, 세 끼니 음식을 손수 만들고 먹고 치우는 여느 때보다는 확실히 분주하다. 일주일 전부터 나물거리를 챙긴다. 정갈히 씻고 여러 날 불린 쌀로 떡국떡도 만든다. 평소보다 조금 멀리 나가 여러 가지 색다른 버섯이나 과일 몇 가지를 사기도 한다. 그렇기는 해도 정작 설 아침 차례상에 오르는 음식은 세 가지뿐이다. 정성껏 우린 차 한 잔, 나물 한 접시, 떡국 한 그릇.

이 세 가지 음식은 오롯이 동다헌 텃밭과 부엌에서 키우고 만든 것이다. 차는 매년 봄에 동다헌 가족이 함께 모여 만든다. 음식의 재료가 되는 곡식이나 채소는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앞뜰과 뒤뜰 텃밭에서 손수 키우고 거두신다. 그러니 고작 세 그릇의 음식이지만, 사실은 그야말로 세 그릇의 음식이다. 한 해를 열심히 일하고 먹고 나눈 결과가 한 그릇, 한 그릇, 한 그릇에 담겼기 때문이다. 설날 아침 동다헌 차례상은 소박하지만 풍성하다.

설날 차례상의 꾸밈새도 특이하지만, 동다헌에서 만들어 먹는 떡국은 좀 더 특별하다. 이 떡국에는 사골 육수나 고명으로 쓰는 소고기 불고기, 달걀지단 등이 들어가지 않는다. 채소로만 만든다. 채소로 우린 맛국물에 시간을 들여 불리고 빻은 쌀로 빚은 떡국떡을 넣어 끓인다. 매년 담그고 해를 더해 익힌 간장으로 간을 한다. 몇 가지 채소와 김이나 감태 같은 마른 해초류, 곱게 간 잣을 웃고명으로 얹는다. 사골 육수 없이도 국물은 깊고 시원한 맛이다. 흰 떡 위에 올린 알록달록한 채소 고명은 보기에도 좋고 떡과 함께 부드럽게 씹히는 느낌도 좋다.

사실, 이 채소 떡국뿐만 아니라, 동다헌 부엌에서 만들고 가족이 먹는 음식에는 어떤 육류나 어류도 들어가지 않는다. 즉 우리는 채식을 한다. 누군가 물을 수 있다. 떡국은 설 명절에 먹고 차례상에 올리는 전통 음식이 아닌가. 전통 음식이라면 그답게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 물음에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동문서답처럼 들리겠지만, 우리는 채식주의자 가족이라고. 혹은 이렇게 되묻고 싶기도 하다. 명절 차례상을 차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절차와 형식에는 마음이 얼마만큼 담기는 것일까. 선조들이 만들던 조리법을 그대로 따라 만든 음식에는 저절로 정성과 마음이 깃드는 것일까. 이 대답을 당신이 충분히 이해하게끔 설명하는 데는 좀 더 긴 이야기가 필요하다. 거칠지만 그 이야기들을 하나로 꿰는 주제는 이것이다.

살면서 주어진 것을 무턱대고 따르기 전에 곰곰이 생각하고, 생각 끝에 답을 찾았다면 진심을 담아 몸으로 실행하는 것.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을 듯이 보이는 이 두 가지 원칙이 동다헌 부엌과 텃밭과 밥상의 원칙이다. 그 결과로 우리는 채식주의자로 살며, 설날 아침에 채소 떡국을 차례상에 올린다.

이제 시작하는 <동다헌 밥상 : 먹는 대로 삶이 흐른다>에서는 그 이야기들을 맛있고 몸에도 좋은 채식 음식 조리법과 함께 쉽게 풀어나갈 것이다.


호기롭게 시작하기는 하지만 걱정이 앞선다. 동다헌 밥상의 주인인 어머니의 음식과 삶은 나의 투박한 글과 엉성한 사진으로 담아내기에 버겁다. 너무 깊고 사무치게 정직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머니의 음식과 삶을 더 잘 이해하고 배우고 닮아가기 위해 공부하듯이 담아내 보려 한다.



지난 늦가을에 동다헌 텃밭에서 수확한 무. 대부분은 동치미와 김장 김치 담그고, 몇 뿌리는 맛국물 용으로 땅 속에 묻어 보관한다.






[동다헌 밥상 첫 번째 레시피_채소 맛국물]

채소 맛국물을 우릴 때 꼭 넣는 재료 다섯 가지. 여기에 그때그때 마련한 당근이나 감자, 느타리버섯 등을 추가하기도 한다.

국, 탕, 찌개 등 모든 국물 요리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육수라면, 채식에서는 채소로 우린 맛국물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채소 육수라고도 하지만, 엄밀히 따져 보면 육수란 고기나 고기 뼈를 삶은 물을 뜻한다. 물론 다시마나 멸치 등으로 우린 육수도 있다. 동다헌 밥상에서는 ‘맛을 내는 국물’이라는 의미로 맛국물로 이름 부른다.

어머니의 맛국물에는 무, 양파, 다시마, 말린 붉은 고추, 표고버섯이 꼭 들어간다. 무나 양파 같은 뿌리채소는 알맹이와 껍질을 모두 사용한다. 음식을 할 때 양파와 무의 알맹이만 쓰고 뿌리와 겉껍질은 흔히들 버리곤 한다. 어머니는 껍질과 뿌리에서 상한 부분만 도려내고 깨끗이 씻어 말려두었다가 맛국물로 우리신다. 혹은 반대로 통무 하나를 적당히 잘라 알맹이 몇 덩이와 겉껍질을 맛국물 재료로 사용하고, 나머지 무 알맹이는 바람이 들지 않게 잘 싸서 냉장 보관해 두었다가 다른 음식을 할 때 쓰시기도 한다. 양파도 마찬가지다. 그 외에 그때그때 식자재로 마련한 각종 버섯이나 감자, 당근, 양배추나 브로콜리 등의 밑둥치나 겉껍질도 바로 그날 우리는 맛국물에 넣어 함께 우리시곤 한다.


밭에서 뽑아 흙을 털고 씻어낸 무.

껍질과 뿌리째 꼼꼼히 씻은 양파.

시장 단골 가게에서 넉넉히 사 온 다음 하나하나 기둥을 자르고 대청마루에서 말린 표고버섯.

서리 내리기 전에 따서 말린 뒷뜰 텃밭 붉은 고추.

큼지막한 마른 다시마 줄기는 적당히 잘라 살짝만 헹군다.



큰 솥에 물을 담고 마른 다시마를 넣어 한 시간 정도 우려낸다. 불린 다시마 건더기는 건져내고, 나머지 재료를 모두 솥에 넣는다. 한두 시간 뭉근히 끓인다. 지나치게 센 불로 빨리 끓이기만 해서는 깊은 맛이 배어 나오지 않는다. 시간을 들여 충분히 우러난 맛국물은 식힌 다음 유리병에 나눠 담아 보관한다. 채소 맛국물은 국물 요리뿐 아니라, 해물이나 육류, 달걀 없이 부침개를 부친다거나 간단한 조림 반찬을 할 때도 물 대신 넣으면 좋다.







음식 재료 손질과 조리, 그릇에 담기 _ 조 정 연 글과 사진 _ 정 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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