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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꼭 씹을수록 봄은 당신 가까이 깃들고_ 쌉싸래한 머위, 풋풋한 취, 싱그러운 상추 쌈


동다헌 밥상_먹는 대로 삶이 흐른다 06


















밤새 봄비가 내렸다. 해 뜰 무렵 비 그치고 바람은 어찌나 상쾌한지 도 미 솔 솔 음률이 실린 듯하다. 이 무렵 아침 뜰에 서면 발은 보드라운 흙빛이 되고 머리칼은 풀빛으로 물이 들어 나무처럼 오래오래 머물고 싶어진다. 들에 한참 서서 보면 늘 지나치던 풀 이파리마다 어여쁘지 않은 것이 없다.


돌담 아래, 볕 잘 드는 데 크는 머위는 벌써 어른 손바닥보다 크게 자랐다. 초록색이 하도 짙어서 보기만 해도 쌉싸름한 맛이 나는 것 같다. 섬쑥부쟁이가 편백 반그늘에서 키를 키우는 사이, 이웃해 있는 취도 뒤질세라 뻗어 나간다. 두 손 엄지, 검지를 작은 세모꼴로 맞댄 것 같은 취 이파리는 하늘하늘 여리다. 편백 숲 가 텃밭에는 상추가 자라고 있다. 지난 초겨울 씨를 뿌려 싹을 틔운 것인데, 덮어준 벼 겉겨를 이불 삼아 겨울을 났다. 입춘 지나 봄기운이 땅에 스미자 여러 달 웅크리고 있었던 상추 새싹은 춤을 추듯 잎을 펼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나풀나풀 풍성한 꽃다발 같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 송이 한 송이 귀한 꽃이나 다를 바 없이 고운 나물 이파리를 식탁에 올리는 일은 봄에 누리는 호사다. 특히 그 이파리를 쌈으로 반찬 삼는 점심 밥상은 봄의 뜰을 옮겨 온 듯이 싱그럽다. 잘게 다지거나 으깨거나 뭉치지 않고, 이파리 모양 그대로 살짝 데치거나 그저 물로 씻어 접시에 담으면 그것만으로도 밥상이 그득하다. 머위, 취, 상추 이파리 한 장 한 장을 손바닥에 펼치면 보들보들 촉촉한 감촉이 기분 좋다. 밥을 한 숟가락 떠서 올리고 쌈장이나 양념장을 적당히 끼얹는다. 밥과 양념장이 잘 감싸이게끔 쌈을 싸서 한입 가득 채운다. 씹으면 우선 쌈 잎의 향이 물씬 코로 올라올 것이다. 진중한 쓴맛에 버금가는 쌉싸름한 향이 머위의 매력이다. 흔히 잎 폭이 좁아 나물로 먹기 마련인 여느 취와 달리 편백 반그늘에 자란 취는 아이 손바닥만큼은 넓어서 작게 쌈을 싸 먹기 좋다. 여린 듯하지만 은근히 꼭꼭 씹어야 하는데, 씹을수록 감칠맛이 난다. 겨울을 난 텃밭 상추는 봄의 기운 그 자체다. 싱싱한 것은 물론이고 씹으면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동다헌 봄 밥상에 오르는 쌈은 쌈 잎이 주인공이다. 고기나 회, 강한 양념이 밴 건더기를 먹기 좋게 감싸는 용도로 먹는 쌈이 아니라, 이파리 한 장 한 장을 음미하는 쌈이다. 쌈장이나 양념장을 더해 먹기는 하지만, 그 양념 맛이 쌈잎의 맛을 가려서는 안 된다. 쌈에 곁들이는 양념은 짭조름하고 구수하고 달큰한 맛이 나긴 하지만 조금 심심한 듯해야 좋다. 쌈 잎과 밥의 맛을 부드럽게 섞어 하모니를 이루게 해주는 정도로 충분하다. 봄에 나는 나물 이파리를 그 자체로 즐기지 않고 입에 끌리는 다른 것에 곁들여 먹는 일은 마치 맑고 청량한 샘물로 인스턴트라면 국물을 만들어 먹는 격이랄까.


봄의 맛을 즐기기 위해 먹는 쌈은 맛도 좋지만, 밥상 앞에 앉아 맛을 음미하는 것으로 들에 나가 기분 좋은 산책을 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봄맛의 산책로를 찬찬히 걸으며 생각한다. 내가 먹는 것이 내가 삶을 사는 태도를 바꾸거나 굳게 해왔다는 것을. 맛. 맛에 대한 감각은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녔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서는 내 그림자를 알아채지 못하듯 먹는 것과 삶의 관계를 눈여겨보지 않았다는 것을. 머위나 취 이파리를 정갈히 데쳐 한 장 한 장 음미하는 밥상을 마주하기 전에는 그 안에 이처럼 섬세하고 다채로운 맛과 향이 있는 줄 알지 못했다. 그 맛과 향이 주는 생생함과 기쁨이 밥상을 물리고 나서도 큰 여운과 생기를 준다는 것 역시 알지 못했다. 반대로, 인공감미료와 자극적인 맛으로 똘똘 감싸인 뭔가를 대충 먹거나 지나치게 먹는 일이 내 미각을 무디게 하고, ‘生’에 대한 감각을 흐려왔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흔히 더 건강하기 위해, 혹은 덜 불행하기 위해 내 밥상에 오르는 음식을 바꾸려 시도해보곤 한다. 너무 기름진 음식 대신 신선하고 담백한 채소나 과일을 더 자주 더 많이 먹으려 노력하는 것처럼. 그러나 음식을 마주하는 태도나 감정을 변화시키려 노력하는 일은 드물다. 허기가 질 때 음식을 대하는 태도라든지, 단것에 얼마만큼 애착을 느끼는지, 곧장 입으로 들어가기 마련이라 그 음식이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무관심하다든지. 이런 태도의 변화는 자주, 그러나 건성으로 음식을 바꾸려는 시도보다 훨씬 근본적인 변화다. 그리고 그 효과는 크다. 다만, 글로 읽고 머리로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먹는 일, 미각의 습관을 바꾸기 역부족이다. 그야말로 ‘먹는 일’이기 때문이다. 작고 소박한 밥상 위의 변화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오늘 점심에는 상추 한 장에 밥을 싸서 꼭꼭 음미해보는 건 어떨까. 꼭꼭 씹을수록 봄은 당신 가까이 깃들고, 어쩌면 조그맣게 읊조리게 되지 않을까. 삶은 먹는 대로 흐른다고.











음식 재료 손질과 조리, 그릇에 담기 _ 조 정 연

글과 사진 _ 정 다 정












동다헌 뒤뜰 편백 숲, 섬쑥부쟁이, 취, 참나물이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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