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다헌 밥상_먹는 대로 삶이 흐른다 05
사월이다. 입춘 무렵 언 땅 위로 싹을 밀어 올리던 봄이 바야흐로 활짝 피었다. 청청靑靑 명명明明. 들에 나가 고개를 돌리면 어디나 파릇파릇 기운차다.
이맘때 동다헌 밥상은 싱그럽기 그지없다. 매 끼니 부지깽이나물, 참나물 무침이 번갈아 오른다. 부지깽이나물로 먹는 섬쑥부쟁이는 볕 바른 데, 그늘진 데 가리지 않고 어디서나 잘 자란다. 꺾어 먹고 또 꺾어 먹어도 힘차게 순을 밀어 올린다. 반면, 참나물은 반그늘에서만 자란다. 한낮 쨍한 햇볕이 드는 듯 마는 듯해서 뿌리 내린 땅이 촉촉한 데를 좋아한다. 산나물답다. 아버지는 십 년 가까이 애정을 듬뿍 담아 편백을 심고 키우셨는데, 이제는 얼추 숲을 이루었다. 참나물은 그 숲에 산다. 쑥부쟁이가 벌써 무릎 높이까지 키를 키운 경칩 무렵에는 자취도 없더니, 산벚나무 꽃 피는 철이 되자 야들야들 풀빛 이파리를 내민다.
봄나물 무침으로 맛있기로는 부지깽이나물이 으뜸이지만, 참나물도 그 못지않다. 미나릿과 식물이라 씹으면 아삭하고 미나리 비슷한 풋풋한 향도 난다. 참나물은 나물로 무쳐 먹는 것이 보통인데, 그 식감을 살려 부침으로 먹어도 좋다. 어머니는 터앝에 흙 깊이 갈아엎기 중이신 아버지를 위해 새때 중참으로 참나물 부침을 내어오신다. 우선 뜨겁게 우린 차 한 잔 마시며 가쁜 숨을 찬찬히 가라앉힌다. 그사이 구수한 부침 냄새에 군침이 한껏 돈다. 군입거리로 먹는 부침은 젓가락으로 죽죽 찢어 먹어야 더 맛있는 법. 동그란 전을 크게 한 입 조그맣게 또 한 입 먹으며 사월 중에 심을 가지며 땡고추에 관해 얘기를 나눈다. 일부러 비료나 퇴비를 더하지 않고 땅이 그 스스로 힘을 키우게 하는 일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철마다 제 힘껏 자란 채소를 먹으며 사는 일은 행복하다. 그런 채소를 길러내는 땅에 발을 굳건히 딛고 산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다. 특히나 이런 봄날에 흙일하고 중참으로 참나물 부침을 먹고 있다 보면 그 외 것은 다 덤으로 받은 게 아닌가 싶다. 숨 쉬듯이 늘 음악을 틀어 놓는 일이나,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 소설을 읽는 일, 탁 트인 풍광을 보러 여행을 가는 일이나, 고양이와 달콤한 낮잠을 자는 일조차도 덤 같다. 그 행복이 거저 주어지는 거라면, 삶은 퍽 남는 장사가 되겠는데! 그러나 달리 말하자면, 흙을 떠나 잊고 산다는 것은 덤으로 주어지는 달콤한 것을 즐기느라 알맹이는 놓치고 산다는 얘기다. 알맹이. 삶의 본질. 그것은 갓 돋은 참나물 이파리 위로 하늘거린다. 풀냄새가 실린 바람과 밝은 하늘과 파란 그림자, 나무 그늘 아래 물 먹은 흙 사이로 씨실 날실 엮이어 있다.
봄기운에 취해 살짝 허풍스레 떠들어보고 싶어진 걸까. 감히 본질에 관해, 그것도 무려 삶의 본질에 관해 말을 하는 내가 스스로 낯설다. 그러나 역시 바꿔 말하자면, 의심덩어리인 나조차 제대로 ‘살아가는’ 일, 알맹이를 놓치지 않는 삶에 관해 확신하게 만드는 것이 봄, 이 맑고 푸른 봄의 힘이겠다.
[동다헌 밥상 네 번째 레시피 _ 참나물 부침]
맛있는 채식 음식을 먹어볼 기회는 흔하지 않다. 경험이 없는 이에게 해산물이나 고기, 달걀 없이 부침을 부쳐보라고 한다면, 대게는 그게 맛있을까 걱정이 앞설 거다. 자, 봄이다. 기운 넘치는 봄이니 일단 의심은 접어 두고 채소 부침을 부쳐 먹어 보자.
우선, 냉장고를 열고 야채 저장 칸에 넣어둔 채소를 죄다 꺼내자. 애석하게도 별 부침 거리가 없다면 간단히 장을 보자. 이왕 장을 보러 간다면, 동다헌 레시피를 참고하면 더 좋겠다. 어머니는 양파, 당근, 애호박, 아스파라거스, 파프리카, 버섯 두 가지, 토마토, 땡고추, 참나물을 넣으셨다. 이것을 모두 넣지 않아도 괜찮다. 단, 양파, 버섯, 땡고추는 필수다. 이 세 가지가 빠지면 밍밍한 맛의 채소 부침개가 되기 쉽다. 여기에 참나물이든 미나리든 부지깽이나물이든 주인공 채소를 한 가지만 더해도 근사해질 것이다.
그게 뭐든 냉장고에서 꺼냈거나 장을 봐 온 채소를 깨끗이 씻고, 손가락 두 마디 길이 정도로 채 썰어 둔다.
부침 반죽은 이렇게 만든다. 밀가루 한 컵, 물이나 채소 맛국물(동다헌 첫 번째 레시피를 참고하시라) 한 컵, 전분, 간장, 들깻가루, 울금 가루가 조금씩 필요하다. 밥그릇 한가득 푼 밀가루를 기준으로 말하자면, 전분과 들깻가루는 각각 크게 두 숟갈씩, 울금 가루는 한 숟갈 넣는다. 네 가지 가루를 그릇에 담은 다음, 간장을 크게 네 숟갈, 물이나 맛국물을 밀가루만큼, 즉 밥그릇 한가득 만큼 붓는다. 휘휘 저어 가루를 곱게 푼다. 넣을 밀가루 양에 맞춰 다른 재료 양은 적당히 조절하면 된다.
노르께하게 묽은 반죽에 채 썰어 둔 알록달록한 채소를 넣고 꼼꼼히 무친다. 이제 거의 다 되었다.
달군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봄 빛깔이 어우러진 반죽을 손바닥 크기로 펴서 부친다. 밀가루를 넉넉히 넣은 반죽은 부침 거리를 단단히 붙잡아주어 부치기는 쉽지만, 맛은 덜하다. 채소 부침 거리가 넉넉하고 밀가루는 좀 적은가 싶게 넣는 동다헌 식 부침은 부칠 때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여러 번 뒤집기보다는 한 면이 충분히 부쳐졌다 싶을 때 한 번만 뒤집어야 예쁜 모양의 부침개가 된다.
뜻을 세우고, 똑 부러지게 계획도 세우고, 전문가에게 가르침도 받은 다음 제대로 된 채식을 해보리라. 그렇게 마음먹고 시작하려 한다면,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지치기 쉽다. 달콤하고 짭짤하게 입맛 당기는 먹을거리가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그냥 한 번 해보자. 채소만 넣은 부침개를 한 장 부쳐 먹는 것. 당신이 여태 어떤 채소 음식을 먹어 왔건, 생각하는 것보다 맛있어서 깜짝 놀라게 되리라 장담한다.
음식 재료 손질과 조리, 그릇에 담기 _ 조 정 연
글과 사진 _ 정 다 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