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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를 씻을 때 메주콩은 이미 지난가을 추수한 콩이 아니구나_장 담그기, 흰 곰팡이와 느리게 익어가는 맛


동다헌 밥상_먹는 대로 삶이 흐른다 03











겨우 내 천천히 천천히 익은 메주









경칩을 며칠 앞둔 정월달 어느 한낮, 동다헌 앞뜰이 분주하다. 겨우 내 앞뜰 장독대 위로 햇살이 내리고 찬바람이 지나고 비가 왔다 긋기를 거듭했다. 그사이 줄 맞춰 앉아 있는 장독들은 나무나 바위처럼 풍경에 머물러 있었다. 이따금 어머니께서 간장이나 고추장을 뜨러 잠시 들르실 뿐. 봄기운이 숨을 불어 넣은 듯 풍경이 움직이고 달그락 소리가 나고 쿰쿰한 듯 구수한 향기가 퍼진다. 고양이도 신이 났다. 오늘은 장을 담그는 날이다. 





일 년 열두 달, 볕 바른 앞뜰에서 해가 길어졌다 짧아지고 철이 바뀌는 사이, 함께 나이를 먹는 장독들.




동짓달에 좋은 날을 골라 메주콩을 삶고 쑤어 둔 메주는 겨우 내 따뜻한 방에서 짚으로 감싸 띄웠다. 메주는 마르고 뜨는 사이 흰 곰팡이 꽃을 피웠다. 때가 된 것이다. 마침내 잘 익은 메주는 두 달여 만에 마당으로 나와 볕을 쬔다. 메주가 천천히 발효하는 동안 계절은 바뀌고 볕도 바람도 한결 푸근해졌다. 









어머니는 결혼한 이듬해부터 메주를 쑤고 장을 담그셨다. 어릴 적 어깨너머로 보았던 걸 바탕으로 어머니의 어머니께 여쭈어 보탤 것은 보태고 주의할 것을 점검한 다음 그저 혼자 담그기 시작하셨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보아왔던 대로 짚으로 굴레를 해서 메주를 띄웠다. 짚에는 바실러스 서브틸리스라는 미생물이 있는데, 이 미생물이 콩의 발효를 돕는다. 미생물은 메주 속에 살면서 콩 단백질을 분해하고 아미노산과 펩타이드를 내놓는다. 콩에 포함된 단백질은 그 자체로는 맛을 내는 성분이 없지만, 아미노산이나 펩타이드로 바뀌면서 각종 감칠맛을 내게 된다. 메주에 핀 흰 곰팡이는 미생물들이 제대로 발효를 끝냈다는 것을 알려준다. 흰 곰팡이 꽃이 곱게 필수록 장맛이 좋다고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께서 말씀하신다.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의 일이건만 속속들이 아는 이들처럼! 

내가 옛사람들의 지혜에 새삼 감탄하며 쫑알대는 사이, 어머니는 메주에 굴레 매어 둔 새끼를 벗겨내고 물로 깨끗이 씻으신다. 묻은 먼지와 메주 겉에 핀 곰팡이를 벗겨 낸다. 그런 다음 다시 볕에 널어 말린다. 메주가 마르는 동안 아버지는 물에 소금을 푸신다. 장 담그는 물은 아버지와 내가 삼십 분 거리에 있는 산에 가서 떠온 것이다. 소금은 서너 해에 걸쳐 간수를 빼고 묵힌 천일염을 쓴다. 장독대에 있는 항아리 중 가장 큰 것이 소금 항아리다. 









미리 잘 씻고 말려둔 빈 독에 메주를 차곡차곡 잰다. 그 위에 붉은 고추, 표고버섯, 대추, 감초, 다시마를 올린다. 모두 잘 건조한 것을 사용하고 자르지 않고 통째로 넣는다. 충분히 저어 소금을 말끔히 푼 물을 붓는다. 메주와 나머지 재료들이 물 위로 떠 오르지 않게끔 다시마로 잘 덮는다. 다시 그 위에 뜨겁게 달군 숯을 세 덩이 띄운다. 나쁜 기운을 쫓아내는 상징적인 퍼포먼스이자 실제로 살균을 돕는 절차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한지로 장독 입구를 막고 뚜껑을 닫는다. 






벌레나 먼지가 들어가지 않도록 한지로 장독 입구를 꼼꼼히 감싼다. 한지는 질그릇 항아리처럼 적당한 습기 조절과 통풍을 돕는다.




이제 백일쯤 기다린 다음 뚜껑을 열고 메주와 나머지 건더기를 건져내어 된장을 담글 것이다. 건더기를 건져 내고 남은 간장은 다시 입구를 잘 봉해 두고 햇볕을 쬐며 해를 거듭해 익힌다. 그렇게 익어가는 간장 항아리가 서로 이웃하여 있다. 












음식 재료 손질과 조리, 그릇에 담기 _ 조 정 연 글과 사진 _ 정 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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