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와 사람과 이야기 02
: 야은 길재 冶隱 吉再
회오리바람 불지 않으니 단칸방도 편안하고
飄風不起 容膝易安
밝은 달 뜰에 차면 천천히 혼자 거닐고
明月臨庭 獨步徐行
주룩주룩 낙숫물 지면 목침 높여 꿈도 꾸다가
簷雨浪浪 或高枕而成夢
펄펄 산중 눈 흩날리면 차 달여 홀로 마신다네
山雪飄飄 或烹茶而自酌
<산중의 집에서 山家序> 中, 야은 길재 冶隱 吉再
길재는 고려 말과 조선 초를 살았던 은둔 인사다. 그는 성정이 어질고 귀가 밝아 행동에 무리함이 없었다. 그는 저무는 나라를 바라보고 떠오르는 새 나라를 등지며 살았는데 아마도 그런 마음가짐 때문에 같은 시대를 살았던 세 명의 은(隱) 중에서 그 이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는 젊은 시절 이방원과도 교우가 두터웠는데 후에 임금이 된 후 길재를 간곡히 청했지만,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그가 살던 터가 외지고 척박한 까닭에 생활고를 겪자 그를 아낀 태종은 사람을 시켜 땅을 내렸다. 하지만 그는 꼭 필요한 만큼만 남겨두고 나머지를 모두 돌려보냈다. 그마저도 받은 것은 자기에게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가 제자를 여럿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에야 누군가에게 배움을 청할 때 강의료를 내겠지만 길재는 먼 곳에서 자신을 흠모해 모인 학생들을 먹이고 재우며 토론하고 강론했다.
그는 <후산가서 後山家序>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제 불행히도 하늘의 슬픔을 만나 십 년의 공부가 사라지고 말았다 … 시대의 책임을 떠맡지 않고 하늘이 주신 나의 올바른 본성을 길이 보존한다면 과연 하늘을 박차고 우주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 공부한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공자의 말씀 따라 올바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治世 자신을 닦는 일修己이 그것이니, 모시는 나라가 사라져 그 세상 역시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다스릴 세상이 존재하지 않으니, 수양은 의미가 있는가? 이에 길재는 고민했다. 정말로 공부는 사라지는 것일까?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길재는 꽉 막힌 구석도, 지나치게 보수적인 사람이기도 했지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존경할 만하다. 그가 깨달은 진짜 공부란 무언가를 다스리기 위함이고, 반드시 나라이거나 세상일 필요는 없었다. 나를 다스릴 수 있다면 이 조그만 세상 따위가 아니라 우주로 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제자들에게 <소학>을 가르친 것으로 유명하다. <소학>은 말 그대로 <대학>을 배우기 전의 아이들을 위한 삶의 지침서다. 주희는 <소학제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소학의 방법은 물 뿌리고, 청소하고, 응대하며, 집에서는 효도하고 밖에서는 공경하며, 행동에 어긋남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뒤에 여력이 있으면 시를 외고 글을 읽으며 생각에 지나침이 없도록 한다.” 길재는 <소학>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제자들에게 <소학>을 절대 품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가르쳤다. 당대 최고의 학자가 교육용 입문서를 이토록 강조한 것은 배움이란 곧 실천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안과 겉이 다르지 않은 인간이어야 비로소 남을 가르치기도, 누군가를 다스리기도 할 수 있는 깜냥이 생긴다고 생각한 까닭이 아닐까.
두 무릎이 겨우 들여놓을 만한 좁은 방도 편한 이유는 만족하기 때문이고, 만족한다는 것은 물질의 문제라기보다 마음에 여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선종 승려들은 단칸방에 의지해 수행하고 차 마시고 잠을 잤다. 당나라 노동의 행적을 존경해 마지않았던 소동파는 아무것도 없는 네 벽에 지붕으로 행복을 노래했다. 그 안에서 달과 함께 걷고, 비와 함께 꿈꾸며, 눈과 함께 차 마시는 삶에서 나는 올바름을 먹고 자라는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훌륭함은 결국 안에서 겉으로 펴 나아가는 것이구나 하고.
정 다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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