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장윤다 차살림법 : 찻자리 위로 이야기를 펼치다 : 2부_15장
차살림 준비
_꽃
《백장선원청규》 중 <달마기>에는 선종의 초조(初祖) 보리달마의 제사에 관한 기록이 있다. 여러 법물(法物)을 올리게 되어 있는데 그중에 꽃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꽃은 한 송이여야 한다는 점이다.
“…엎드려 바라옵나니, 물려 주신 가사는 부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어, 그 힘이 수천 근의 고통을 감당하고, 한 송이 꽃에서 천지의 봄을 열어 그 향기가 만세토록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정확히 언제부터 차를 마실 때 꽃을 곁에 두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한·중·일을 관통하는 꽃에 관한 이야기는 대부분 불교의 유명한 이야기 하나에서 출발한다. ‘염화미소(拈花微笑)’가 그것이다.
석가모니가 영산회상에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법문을 하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수많은 군중이 모여 생불(生佛)의 입에서 흐르는 진리의 샘물을 갈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석가모니는 여느 때와는 달리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어디에서 가져왔는지 갑자기 수줍게 핀 꽃 한 송이를 손에 들고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사람들은 숨죽여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고, 그 이후에 있을 어떤 말씀이라도 듣기 위해 기다렸지만, 석가모니는 다른 어떤 말도 입 밖에 담지 않았다. 석가모니는 좌중을 둘러보며 자신의 이 기이한 행동에 반응하는 자가 있는지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오직 제자 중 마하가섭만이 빙그레 웃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사자성어로 표현한 것이 이 염화미소라는 단어다.
나는 불법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라 깨달음의 근거로 이 꽃이 어떻게 쓰였는지는 말로 설명할 길이 없으나, 언어학과 문학의 도구를 사용하면 의미의 조각을 조금이나마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언어학에서는 세상 모든 의미의 총합에서 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을 대단히 크게 보지 않는다. 몇 퍼센트인가요? 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만큼 오만한 학자는 없겠지만 그래도 대다수 석학이 동의하는 바는 절반을 채 넘지 못할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우리의 언어체계는 문자와 비문자로 크게 구분할 수 있지만, 지금 당신이 읽고 있는 이 글자나 사랑을 속삭이는 말도 모두 문자를 기반으로 한 문자언어 혹은 비문자 언어다. 언어를 쓰거나, 읽어서 대다수 사람이 소통하고 정보를 전달하고, 창작의 바탕으로 삼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언어가 담을 수 없는 세상의 많은 의미가 답답해서 작가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내고, 느낌이나 심상을 표현할 다른 방식을 찾아 헤맨다. 뉘앙스라는 것, 문맥이라는 말도, 답답한 누군가가 당신을 향해 ‘사이를 읽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 역시 언어가 명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한계를 말하고 있다. 우리는 말로는 설명할 길 없는 수많은 의미의 표류 속에 살고 그것은 아주 오래된 인류의 숙제였다. 그래서였을까. 많은 성인들, 깨달은 자들은 자신의 깨달음을 책으로 기록하지 않았다. 일본이나 중국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하지만 학창 시절 우리가 배웠던 4대 성인이라는 사람들도 모두 자신의 이야기나 믿음을 문자로 남기지 않았다. 그들은 아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깨달음은 문자와 언어 너머에 있는 것임을 말이다. 모두 담을 수 없기에 오해가 생기고, 해석이 생기니 인간은 이를 두고 싸우니 말 그대로 역설이 되고 본말전도(本末顚倒)가 아니겠는가.
답답하고 두려운 것은 제자들이었다.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 때 제자들의 울음바다를 건너며 그가 이렇게 말했다.
“아난다여, 이제 나는 늙어서 노후하고 긴 세월을 보냈고 노쇠하여 내 나이가 여든이 되었다. 마치 낡은 수레가 가죽끈에 묶여서 겨우 움직이는 것처럼 나의 몸도 가죽끈에 묶여서 겨우 살아간다고 여겨진다. 그만하여라, 아난다여. 슬퍼하지 말고, 탄식하지 말아라 아난다여.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헤어지기 마련이고, 없어지기 마련이고, 달라지기 마련이라고 그처럼 말하지 않았는가. 아난다여, 태어났고 존재했고 형성된 것은 모두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거늘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것을 두고 ‘절대로 부서지지 말라’고 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난다여, 그런데 아마 그대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제 스승은 계시지 않는다. 스승의 가르침은 이제 끝나버렸다.’ 아난다여, 내가 가고 난 후에는 내가 그대들에게 가르치고 천명한 법과 율법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아난다여, 그대들은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의지하여 머물고, 남을 의지하여 머물지 말라. 진리를 섬으로 삼고 진리에 의지하여 머물고 다른 것에 의지하여 머물지 말라. 내가 설명한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괴로움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원인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방법이다. 참으로 이제 그대들에게 당부하노니, 형성된 것들은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 게으르지 말고 해야 할 바를 모두 성취하라. 이것이 여래의 마지막 유훈이다.”
읽을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말씀이니 제자들이 이를 기록하지 않고 어찌했겠는가. 석가모니 사후 아난다를 중심으로 오백 명의 아라한들이 모여 석가모니의 말씀을 모두 기록했고, 그래서 중요 불경들의 시작은 모두 ‘여시아문(如是我聞)’으로 출발한다. 이는 ‘나는 석가의 말씀을 이렇게 들었다.’라는 뜻이다. 그들은 석가가 당부한 진리를 섬으로 삼기 위해 생전 남기신 모든 말씀을 한 톨의 먼지도 남김없이 외우고 되풀이하며 읽어 가슴에 담아둘 필요가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진리란 휘발성이 강하다고 믿었나 보다. 기록하지 않으면 읽을 수 없고, 인간은 잊기 마련이니 전승할 수 없었을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진리를 섬으로 삼은 제자들이 시간이 지나며 그 섬을 하나둘 자신만의 왕국으로 만들어버렸기에 문제가 된 것이다.
달마가 왜 동쪽으로 떠났는가를 두고 설명하는 가장 유력한 역사학적 설명은 인도 불교가 이후에 등장하는 힌두교와 이슬람교에 크게 밀리며 그 세력이 크게 줄었고, 이에 석가의 말씀이 덩달아 소멸할지 모른다는 실제의 위협이 작용했으리라는 것이다. 실제로 제자들이 적은 이 불교 경전은 후대에 이르러 불교가 종교로서 정치, 사회적인 권력을 장악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글자는 아무나 읽을 수 없는 일종의 권력 상징이자 도구다. 그렇기에 석가모니의 진짜 말씀을 설명할 수 있고 전달할 수 있는 성직자로서의 승려는 권력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승려들은 이러한 권력을 사용해 자신들만의 성을 지었다. 대중의 곁에 섞여 잠을 자고, 먹고, 설교하며 동시에 수행하던 불교는 사라지고 돈과 권력으로 줄을 세워 문을 열어주고 닫아 버리는 폐쇄적인 불교만 남게 되었다. 힌두교는 반대로 이해하기 쉽고 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점차 대중 세력을 확대하던 힌두교는 석가모니를 힌두의 신 중 하나로 받아들였고, 사람들은 힌두교를 믿으면 불교도 같이 믿는 것이란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인도의 왕국들은 점차 불교에 대한 지원을 줄이고 힌두교로 갈아타게 되는데, 이에 불교는 대악수를 두게 된다. 그들은 힌두교처럼 여러 신들을 한꺼번에 받아들이게 되고, 석가모니가 살아생전에 비판했던 주술 주의와 기복신앙(신에게 복을 비는 행위)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이제 불교는 힌두교와 다른 점이 없게 되어버렸다. 카스트라는 신분제도를 부정하며 인간의 평등을 가르쳐 큰 인기를 얻었던 불교는 이제 자신만의 섬에 갇혀 소멸해 버릴 위기에 처했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정 다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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