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장윤다 차살림법 : 찻자리 위로 이야기를 펼치다 : 2부_34장
구석기 시대에서 신석기 시대로 넘어오며 한반도의 인류는 새로운 삶의 양식을 발견했다. 마냥 떠돌아다니기만 했던 삶에서 조금씩 머무름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뇌가 커지고 발달하며 자연현상을 이해하기 시작하고, 사물의 도구화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필요에 따라 도구를 제작하는 법을 익히기 시작했고 본격적인 수렵과 채집의 효율성이 높아졌다. 집단의 존속 여부는 항상 의식주의 해결에 끌려갈 수밖에 없었고, 이때 그릇의 발명이 문명의 특이점에 속했다.
그릇이 등장하기 전과 등장한 이후의 삶은 완전히 달랐다. 상상해 보면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다. 당신이 무리를 위해 발견한 맛있는 열매 덤불이 있다. 탐스럽게 익은 빨갛고 노란 열매는 갈증과 허기를 동시에 해소할 수 있는 좋은 식재료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그릇이 없다. 여기서 당신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단순하다. 일단 내가 먹고, 집단에 돌아와서 그 위치를 공유하는 것이다. 무리는 번거롭지만 모두 나서서 해당 위치까지 이동해야 하고, 모종의 이유로 움직일 수 없는 이들은 굶거나 상대적으로 적은 양을 나누게 된다. 왜냐하면 열매를 옮길 수단이 없으니까. 하지만 그릇이 있다면 얘기가 다르다. 당신은 그릇을 가져와 가득 담아 집단으로 옮길 수 있다. 두 손 가득 해봐야 몇 알에 불과하지만, 그릇이 있다면 그 몇 배는 손쉽다.
그뿐만 아니다. 모처럼 기분 좋게 사냥에 성공했다. 몇 날 며칠 수렵을 위해 집단을 떠나는 일은 다반사다. 그렇게 고생해서 잡은 고기를 열심히 짊어지고 와서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자리에서 모두가 덤벼들어 다 먹어 치우는 것뿐이다. 그릇이 없다면 고기는 장시간 보관할 수 없다. 내일도 모레도 나눠 먹을 수 있다면 집단은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쉽다. 영양학적으로도, 위생적으로도 그릇이 있고 없고는 집단의 존속 기간을 비약적으로 늘려준다. 저장 기능의 중요성이다.
저 먼 신석기 시대 우리 조상들은 그 이유로 그릇을 다루는 사람을 경외의 존재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신의 비밀을 엿보는 자고, 신의 지혜를 인간의 몸으로 빌린 사람들이었다. 그릇의 탄생은 인간의 머리로는 상상해 낼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에서 끄집어낸 일종의 신성 유출이었다. 그릇의 사전적인 정의는 ‘음식이나 물건 따위를 담는 기구를 통틀어 이르는 말’도 있지만 그러므로 ‘어떤 일을 해 나갈 만한 능력이나 도량 또는 그런 능력이나 도량을 가진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그릇은 그 자체로 능력이고, 지혜고, 미래였다.
이러한 그릇에 선조들은 무늬를 그려 넣었다. 그것은 단순한 유희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조금 더 주술적인 의미가 녹아 있었다. 신의 지혜를 빌린 것이 곧 그릇이기에 여기에 본인들이 이해한 자연 세계의 비밀을 상징으로 새겨 넣었다. 말은 인간끼리 소통하기 위한 것일 뿐, 신과 접촉할 수단은 아니었기에 상징이 필요했다. 물과 불, 바람과 번개에 관한 인간의 이해를 무늬로 새겨 그릇에 담아 신에게 빌고 또 빌었다. 그릇 문양의 탄생이다.
우리는 보듬이의 탄생에 얽힌 몇 가지 힌트를 저 먼 조상들의 그릇 무늬를 통해서 얻었다. 창조는 오롯이 혼자 저절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에 구체적인 영감과 힌트가 존재한다. 보듬이의 이론적인 배경 안에는 우리나라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역사적 사건들이 구체적으로 녹아 있고 우리는 이를 지난 시간을 통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보듬이는 현실의 물건이고, 도자기이며 미술사적으로도 조소의 영역이기도 하다. 따라서 눈에 뵈지 않는 이론의 영역뿐 아니라 현실의 사물 영역에도 영향을 받는다. 그 시작은 신석기 시대부터 출발하는 무늬와 토기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거기에 닿은 이야기를 늘어놓아 보고자 한다.
정 다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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