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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의 무늬, 역사의 무늬, 삶의 무늬_셋


동장윤다 차살림법 : 찻자리 위로 이야기를 펼치다 : 2부_36장













어릴 적에는 천둥과 번개는 서로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별개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빛과 소리의 속도가 달라 서로 도달하는 시간이 다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세상은 무지막지하게 신비로운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저 먼 옛날 신석기 후반에서 청동기 시절 무렵 조상들은 이 신비로운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동시에 일어나면서도 서로 다르게 보이고, 물을 뿌리면서 동시에 불길이 일어나기도 하는 이 경외의 존재를 무엇이라 생각했으며 또한 거기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했을까.


우리 조상들은 그릇을 빚는 존재를 신과 세상의 비밀을 엿보는 자라고 생각했다.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는 발견할 수 없을 세상의 비밀을 몰래 훔쳐보고 얻은 지식을 바로 그릇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그릇에 새기는 문양은 신비로운 주술적 힘 그 자체라고 믿었을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신과 소통할 수 있는 비밀번호랄까, 신의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게 할 수 있는 장치랄까. 그릇 빚는 장인은 내가 할 수 없는 신과의 소통수 역할을 맡은 자였고, 거기에 무엇을 그려 넣느냐에 따라 하늘의 응답이 달라질 수 있으리라 믿었다.



뇌문(雷紋)이란 천둥, 우레, 번개 모두를 일컫는다. 우리말로는 번개무늬라고 하면 좋다. 그 기원은 오래되어 빗살무늬 다음으로 오래되었고, 전 세계에 걸쳐 비슷한 모양으로 음각되어 전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1933년 함경북도 청진에 있던 후기 신석기시대 패총에서 처음 발굴되어 알려지게 되었다. 전 세계가 번개무늬를 다루는 방식이나 그 모양새가 비슷하다는 점이 흥미로운데, 결국 인종과 문화를 넘어 사람의 시각이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도 들면서 어쩌면 이 문양을 처음 새기기 시작한 누군가의 지혜가 너무 신비로워서 후대가 이를 그대로 전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볼 수 있다. 마치 오늘날의 학문의 영역처럼 최초의 발견자에 대한 존중을 넘어 번개무늬가 인류에게 전달하는 메시지의 거대함이 생각보다 더 컸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불러일으키지 않는가.


당신이 생각하는 번개무늬는 오늘날 전기 모양을 나타내는 ⌁나 ⌇ 같은 모양이겠지만 옛날에는 달랐다. 전기라는 존재를 이해하지도 못했을뿐더러 그 생김새도 달랐다. 굳이 비교하자면 오늘날의 알파벳 ''에 해당하는 ✘자 모양의 선을 여러 차례 교차해서 그었다. # 같은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가로 평행선과 세로 평행선 사이에 만들어지는 칸 안에 다채로운 선을 배치하여 이를 번개무늬라고 불렀다. 특히 그 내용물의 모양이나 디테일이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중국 헤이룽장, 한반도까지 유사한 것으로 보아 같은 문화권으로 볼 수 있다. 재미난 점은 이 교차하는 평행선이 만들어내는 의미다.









우리가 흔히 씨줄과 날줄이라고 부르는 이 교차선들의 집합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다양한 문화권에서 공통된 의미로 사용되었다. 바로 풍요와 번영이다. 서양 문화권뿐만 아니라 우리 조상들도 두 선의 교차를 남녀가 한데 포개지고 사랑하는 형태로 해석했다. 옛 신화 중에는 하늘신을 여성으로 묘사한 것들이 있다. 그리고 남편은 지옥신이었는데 그 모양새가 불뱀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가 하늘신을 만나기 위해 지옥에서 하늘로 올라가 사랑에 빠질 때 천둥과 번개를 일으킨다고 믿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하늘신 우라노스가 대지의 여신 가이아를 품기 위해 내려왔을 때 일어나는 운우지정(雲雨之情)을 안개로 표현한 것에 비해 우리네 신들은 보다 화끈하고 정열적인 분들이 아니었을까.


번개무늬는 불길 같은 사랑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촉촉하게 내리는 비를 상징했고, 이 상반된 두 가지가 융합된 이질적이고 초자연적인 성격의 무언가가 되어 조상들에게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번개무늬를 상징하는 두 교차선의 한 쪽은 불인 셈이고, 나머지 한 쪽은 물인 셈이다. 빗살무늬에서 이미 우리가 알아보았듯 물은 세상의 풍요를 책임지는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불의 의미 역시 이에 못지않다. 조상들은 아궁이의 불씨를 소중하게 여겨서 자식들이 분가할 때 반드시 종갓집 아궁이 불씨를 나눠 받아서 나갔다. 화로에 담은 불씨가 꺼지면 그 집안 살림이 망한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양반들은 갓 결혼한 신혼집에 화로에서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불씨를 수묵으로 그려 선물로 주기도 했다. 양반은 아니지만 나 역시 신구(서예가 윤효석) 선생이 그려주신 그 불씨 덕분에 첫째 아이를 수월히 얻지 않았나 싶다.



고대인들은 우렛소리를 신들이 싸우는 소리라고 여기기도 했다. 실제로 민담에서는 신과 신의 아내가 다투면 우렛소리가 난다고 믿었다. 삼신할미와 그녀의 남편이 싸우는 소리라는 전설이 있고, 여신이 울면 그 눈물이 비가 된다는 전설도 있다. 그러고 보면 우레와 번개는 부부의 사랑을 뜻한다. 쿵 하고 울리는 거대한 소리가 대지로 퍼져 울리면 곧 흡족할 만큼의 비가 내리고 대지의 초목과 뭇 생명들은 번식하고 풍요의 길로 접어든다. 신들이 우리의 어버이라면 그것이 곧 가정의 화목이고,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일이 아니겠나. 사랑의 여러 가지 형태를 몸과 마음으로 깊숙이 받아들이며 전쟁과도 같은 삶 속에서 화목과 번영을 기원하는 차 한 잔을 오늘도 당신께 권하는 바이다.










정 다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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