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장윤다 차살림법 : 찻자리 위로 이야기를 펼치다 : 2부_35장
빗살무늬의 빗살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머리카락을 곱게 빗어 넘기는 빗을 뜻하는 것일까. 독일어로 ‘kamm keramik’, 영어로 ‘combpottery’라 부르는 것을 보면 머리카락에 쓰는 치장 도구 ‘빗’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빗의 뜻은 동시에 하늘에서 내리는 비의 모양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 무늬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앞에 선 문양이기도 하다. 인류가 본격적인 현생 인류로 진화하기 시작하는 구석기 후기부터 이 빗살무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원전 8천 년부터 기원전 4천 년에 이르는 신석기 시대에 널리 제작되었다. 한반도 전역에서 출토되는 이 무늬는 재미있게도 전 지구적 관점에서 보면 골고루 등장하지 않는다. 빗살무늬 토기의 출토 지점들을 점으로 찍어 서로 그 선을 이어보면 재미있는 모양이다. 핀란드와 스웨덴 등의 스칸디나비아반도 남부, 독일 북부, 러시아의 볼가강 상류, 만주 벌판과 한반도까지 유라시아 반도의 전체적인 북부 시대를 관통하며 가로로 길게 늘어선 모양이다. 이를 두고 고고학자들은 한반도와 북유럽의 신석기 문화가 같은 계통이며, 신석기 문화는 세계적으로 어떠한 공통점이 있다는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20세기 중반 무렵 국내의 몇몇 소수의 민족사관을 고수하는 학자들은 일본에서 출발한 한반도 토기 연구를 무조건 거부하며 빗살이 아닌 ‘빛살’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지만, 세계적인 신석기 연구의 공통점들을 나열해 볼 때 태양 숭배의 ‘빛’보다는 하늘 여신 숭배의 ‘빗’이 옳다.
유럽의 동부와 서아시아에 살던 초기 농경민족들 사이에서는 빗살무늬를 종교적 상징물로 널리 사용했다. 빗살무늬를 새긴 유물들과 갈지자 무늬로 새긴 유물들은 일종의 기도문을 적은 종이와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러던 것이 본격적인 신석기시대로 접어들면서 수렵채집에 대한 의존은 점점 더 줄어들고, 정착과 농사가 보편화되었다. 그럼으로써 빗살무늬는 비를 다스리는 ‘하늘 여신(The great goddess)’를 상징하게 되었다. 그녀는 비 뿐 아니라 물, 습기, 수분 그 자체이기도 해서 비를 머금은 구름 그 자체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언제 굶주리고, 언제 배부를지 알 수 없는 유랑과 유목보다 안정적인 정착 생활을 바탕으로 농사를 지어 삶을 꾸리는데 큰 매력을 느끼게 되었고 여기에는 자연을 바라보고 이해하며 진화한 인간의 통찰력뿐 아니라 하늘의 적극적인 도움도 필요했다. 인간은 사계절을 이해하고, 그것이 순환한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봄이면 싹이 나고, 여름이 키워 가을에는 거둬들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러한 축복만큼 겨울이라는 시련은 공평한 것이고 이를 잘 이겨내면 다시 축복의 시간이 도래함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그릇을 만들어 저장하는 방법을 깨쳤다. 그릇은 변동성을 줄이고 위험을 대비하는 획기적인 도구였다. 그런데도 인간은 자연 앞에서 얼마나 왜소하고 보잘것없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하늘이 빛을 내리고, 비를 내려주지 않으면 그 모든 진화와 발명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 그릇 표면에 빗살무늬를 새겼다. 하늘 여신을 숭배하고, 인류의 앞날을 도모할 힘과 희망을 그렸다.
당시 여름 기온이 20세기 후반보다 평균 2도 이상 높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무더위와 고온은 가뭄을 불러일으켰고, 같은 위도의 유라시아 대륙 곳곳에서 동일한 현상이 지속되었다. 사람들은 농사와 목축에 큰 타격을 입었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하늘 여신에게 기도를 올리고 축복을 기원하는 것뿐이었을 것이다. 당시 신석기 시대 토기에서 태양 숭배의 상징은 드물지만, 비를 상징하는 표현은 흔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유라시아 대륙뿐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 역시 같은 상황이었던 것을 보면 전 지구적인 고온 현상이 가뭄을 불러일으켰던 것으로 보인다.
토기에 새긴 빗살무늬는 인류의 첫 번째 문양 중 하나면서 동시에 생존을 위한 눈물겨운 기록이라 보아도 틀림이 없다. 그러니 보듬이에 새길 자유분방한 아름다움의 기록 중에 첫 번째로 다루어도 모자람이 없다. 왜냐하면 보듬이는 물을 담는 그릇이고, 마음과 정신의 풍요를 바라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이름처럼 우리가 누군가를 보듬기 위해서는 경계를 풀고, 울타리를 차츰 지워나가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리는 빗방울에 온몸이 서서히 젖어 들어가듯, 리트머스 종이 위로 번지는 액체의 무늬가 전신으로 스며들 듯이 그렇게 아름답고 좋은 것은 우리 안으로 들어온다. 좋은 물은 차문화에서 핵심이다. 차를 말하면 찻잎을 떠올리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차는 결국 찻잎과 물의 합이다. 그리고 좋은 물이 없다면 그 어떤 찻잎도 자체의 훌륭함을 드러낼 수 없다. 물과 풍요, 번영과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물의 무늬를 몸에 아로새기며 오늘도 차 한 잔을 당신에게 권한다.
정 다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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