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장윤다 차살림법 : 찻자리 위로 이야기를 펼치다 : 2부_27장
“국이라면 이윤이요, 차는 육우로다(李公羹 陸氏茶).”라는 여섯 글자에서 국(羹)이 지닌 다섯 가지 맛과 정치와의 관계를 엿볼 수 있었다. 국이 비로소 훌륭한 국이 되기 위해서는 주재료와 보조재료 그리고 이들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양념이 한데 섞여 간을 완성해야 한다. 간간한 듯하면서도 약간 짠 듯한 이 미묘한 간 맞추기는 요리의 화룡정점인데, 이것이 그저 단순한 일이 아니다. 맹물이 간이 될 수 없듯이 재료를 단순하게 다루어서도 간이 맞지 않다.
주재료가 있어야 하고, 이를 다루는 방식이 의도에 맞게 올바를 필요가 있다. 삶을 때는 때에 맞추어 시간을 들여야 하고, 데쳐 낼때에는 필요 이상으로 뜸을 들여서는 안 된다. 때로는 뜸을 넉넉히 들여야 할 때도 있다. 이 모든 것은 필요한 목적과 의도에 따라 시의적절하게 다루어야 한다. 그것이 주재료가 가진 몫을 이끌어내는 능력이니 이를 덕(德)이라 한다.
요리는 주재료 한 가지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의도하는 맛에 이르기 위해 다양한 보조재료들이 필요하다. 육수나 채수물을 위한 다양한 재료에 더해 양파, 파, 마늘 등등이 필요하다. 필요에 따라서는 손질하고 남은 동식물의 껍데기도 국물을 위한 좋은 재료가 된다. 이들은 자신의 맡은 소임에 따라 주재료의 덕을 살리기 위한 훌륭한 역할을 한다. 의(義)란 사람으로 태어나 맡은 도리를 다해야 함을 뜻하니 여기에 걸맞다.
주재료와 보조재료를 올바르게 사용했다 할지라도 한 그릇의 맛있는 국은 완성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간을 위한 필수적인 양념이 필요하다. 제아무리 훌륭한 재료로 끓여낸 국도 양념 하나로 성공과 실패가 갈린다. 한 번쯤은 있었을 그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맛있게 끓여낸 요리에 간장이나 소금통을 엎어 망쳐버린 그 때 그 시간을 떠올려 보라. 마치 라면을 끓여 옮기다 문지방에 발가락을 찧어 바닥에 쏟아버렸던 그 힘든 시간만큼 당신을 좌절하게 만드는 그 실패의 순간도 모두 이 양념 때문이다. 양념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당신을 치우치지 않게 인도하는 깃발과도 같다. 그러니 충(忠)이다. 충이란 우리 집 딸내미가 말하는 충성하는 아저씨들에게만 해당하는 단어는 아니다. 본래 이 글자는 마음 심(心)자에 가운데 중(中)자가 얹힌 것이니 당신의 마음이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야 함을 일깨우는 글자다. 사람의 마음은 약하고 깨지기 쉬워 언제든 기울어지기 마련이니 충이 있는 사람은 귀가 얇지도, 심장이 얕지도, 머리가 약지도 않다.
이렇게 주재료와 보조재료, 양념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낸 맛있는 국이 곧 훌륭한 정치라 했으니 차도 이와 같다고 육우는 생각했다. 차 한 잔을 끓여내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 과정과 재물이 필요했다. 그 모든 번거로움이 의미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이들을 한데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가 필요했다. 육우가 떠올렸던 것은 인간의 본성과 한계였다.
우리는 이상적인 환경과 결과에 대한 끝없는 추구를 욕망하면서도 이를 실천하는 과정에는 소원하기 일쑤다. 마치 머리는 고매하되 몸은 천박하니 그 아이러니 사이를 방황하며 떠도는 것이 곧 우리다. 차가 번거로운 것은 마치 주공(周公)이 예(禮)를 만들어 인간이 짐승과 다름을 가르쳤듯이, 석가모니와 예수가 올바름에 이르기 위해서는 선함을 가까이하고 악한 것을 적극적으로 멀리하라 가르쳤듯이, 우리는 복잡하고 번거로운 과정에서 비교적 편하고 안정적으로 집중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간편하고 쉬울수록 우리는 효율을 찾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쉬고자 한다.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고, 자고 나면 먹고 싶고, 먹고 나면 다시 앉고 싶은 본능의 순환고리 사이에 일부러 번거롭고, 귀찮고, 어려운 시간과 과정을 넣었다. 본능을 파괴할 수는 없지만 잠시간의 거리두기를 통해 우리는 짐승의 시간에서 보지 못했던 조금 더 다양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발견한다. 참선하는 수행자처럼 벽만 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는 그것이 힘들기에 사물에 기댈 수밖에 없고, 그 사물 중에서 꽤 훌륭한 도구가 차였던 것뿐이다.
한 잔을 차를 완성하기 위해서 좋은 물을 멀리서 길어오는 수고로움으로 시작한다. 스물 네 가지의 다기(茶器)의 사용법을 익히고 각각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그 본래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올바른 시간과 힘의 세기의 조합을 찾아내고, 적절한 때에 맞춰 물과 차를 끓여 내야 하며 동시에 물을 더하고, 아쉬움을 끊어내고 내려놓는 결단도 해내야 한다. 모든 도구는 준비하는 시간 만큼의 공을 들여 정리해야 하니 도대체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해서 왜 차 따위를 마셔야 했는지 21세기를 사는 당신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세상에는 똑같은 일을 두고 나의 불호를 옹호하기 위해 일을 부정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숨은 의미를 찾아보기 위해 의심해보는 사람도 있다. 전자는 그저 그런대로 살겠지만 후자는 회의주의자에 가까우니 아름다움의 자기 완성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내딛는 사람일 것이다.
차가 즐겁고 아름다운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수많은 도구와 이를 둘러싼 적절함의 태도가 복잡한 과정과 만나 이질적이지만 동시에 한데 어우러지는 묘한 미감을 탄생시키기 때문이다. 한 자리에 모인 복잡한 것들이 세상에 여럿 있지만 그것이 훌륭하고, 아름다우면서, 유익한 것은 흔치 않을 것이다. 이 멋짐을 모르는 당신은 얼마나 불쌍한가.
정 다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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