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然으로 가는 길의 안내문 10
일 년 중 낮 길이가 가장 길고 밤은 가장 짧다는 하짓날은 낮 길이가 가장 짧고 밤은 가장 길다는 동짓날로부터 여섯 달 뒤에 든다. 낮과 밤의 길이와 빛과 어둠의 일이 조화와 균형을 잃지 않아서 또 오늘을 만나고 시간과 공간을 누린다.
이맘때는 우리나라 산천 어디를 가도 개망초만 한 물건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개망초는 망초, 실망초라고도 부른다. ‘개’는 참것이나 좋은 것이 아니라 경멸한다는 뜻으로 명사 앞에 붙여 쓰는 말이다. ‘망’은 한자 ‘亡’이 지닌 의미대로 ‘~을 막론하고’, 또는 ‘~든지 가리지 않고’라는 뜻이다. 꽃 이름에 가져다 쓰기에는 너무하다 싶은 글자들이다. 그 이름에는 이런 역사가가 있다.
개망초는 일본 강점기에 무역선을 타고 캐나다에서 한반도에 이민 온 귀화 식물이다. 귀화 식물들은 무섭게 강인한 번식력이 특징이다. 토양의 성질과 계절의 특성에 민감한 우리나라 토종 식물들의 생태를 지나치게 고상한 취미라고 비웃듯이 귀화 식물들은 대체로 어디든 가리지 않고 잘 자란다. 개망초도 그중 하나다.
어디서든 한번 뿌리 내리고 꽃을 피웠다 하면 이듬해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넓은 지역에 걸쳐 무리 지어 피어난다. 개망초 꽃씨는 미풍에도 멀리 날아갈 수 있는 가벼움과 불 속만 아니라면 어디서든 번식할 수 있는 생명력을 지녔다. 거친 황무지, 바닷가, 습지대, 음습한 곳, 모래밭, 바위 절벽을 가리지 않고 왕성하게 번식하면서 토종 식물들의 생태를 위협한다.
옛사람들은 이 땅의 산과 들에 나는 거의 모든 풀과 꽃과 그 뿌리를 먹을거리로 삼았고, 독이 있으면 그 독을 다스려 약으로 써왔다. 반면, 개망초는 이렇다 할 쓰임새가 없다. 옛사람들이 보기에 개망초는 제 잘난 맛으로 창궐해 논밭 작물들을 위협하는 것은 물론이고, 초봄부터 초겨울까지 설쳐대었다. 그러다 보니 근대의 조선 식자들이 ‘개’ 다음에 ‘亡’까지 붙여서 개망초라고 이름 지어 천시했다.
개망초는 온갖 천대를 거름처럼 여기면서 그의 뒤를 따라 귀화한 수많은 식물에 조선 점령법을 대놓고 외쳐댄다. ‘그저 바람 부는 대로 종을 뿌려서 너희의 제국을 건설하라’라고. 다행스러운 것은 토종 식물 중에도 개망초와 겨룰 만한 것도 몇 종류가 있기는 하다. 습지를 좋아하는 미역취, 약간의 그늘만 있으면 번식력이 좋은 붉은 초롱꽃, 그리고 북쪽 발해 땅인 지금의 러시아 포시에트 지역에서 온 발해 원추리도 그중 하나다.
어느새 한반도를 거느리기 시작한 중국차의 위세가 개망초를 떠올리게 한다. 이런 하짓날 동장윤다 한 잔 마시면서 내일을 걱정한다.
하짓날,
정 동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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