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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레 같은 침묵


自然으로 가는 길의 안내문 03






동다헌 마당 모든 나무 중에 가장 일찍 꽃을 피운 풍년화. 소담스러운 꽃과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한 하늘.

경칩(驚蟄)은 겨울잠 자던 벌레들이 깨어나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절기입니다. 잠에서 깨어날 때가 되었다는 자연 속 신비스러운 신호가 땅속, 땅 위로 울립니다. 그 신호를 뜻하는 말이 칩뢰(蟄雷) 즉 만물의 잠을 깨우는 우렛소리입니다. 칩뢰는 그해에 처음 울리는 우레인데, 산들의 온갖 초목, 짐승은 이 우렛소리를 자연의 계시로 여겨 봄의 신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이지요.

옛 차문화사에는 ‘뇌명차(雷鳴茶)’라는 차 이름이 남아 있습니다. 경칩 무렵 첫 우레가 울리는 날 찻잎을 따서 만든 차를 말합니다. 이 차는 오래된 병을 치료하는 명약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뇌명차 한 냥을 먹으면 고질병이 낫고, 두 냥을 먹으면 눈병이 낫고, 석 냥을 먹으면 뼈를 튼튼하게 하고, 넉 냥을 먹으면 지선(地仙) 즉 인간 세계에 머물러 사는 신선이 된다고 했습니다. 이런 차는 중국 남부 광둥, 푸젠 지역에서나 만들 수 있었다는데, 봄의 신이 축복이 우렛소리로 찻잎에 깃들었나 봅니다. 경칩 절기와 우렛소리의 아름다운 상징 세계를 보여주는 역사 이야기 한 토막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경칩 지난 게로군.” 하는 말이 있습니다. 벌레들이 경칩이 되면 입을 떼고 울기 시작하듯, 입을 다물고 있던 사람이 말문을 여는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이 온갖 유혹이나 위협 앞에서도 묵묵히 견디다가 때가 되자 말문을 열고 진실을 밝혀 세상의 혼란을 바로 잡는 일을 비유한 것입니다.

때때로 침묵이 말보다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줍니다.

경칩 날 차 한 잔은 우레 같은 침묵의 향기를 느끼게 합니다. 

풍년화 흐드러진 꽃밭 옆 텃밭. 경칩 맞이 밭갈이 중이신 아버지.



봄볕 쬐고 비도 마시고 마침내 겨울잠을 깬 보슬보슬 흙.

글 _ 정 동 주

사진 _ 정 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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